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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올리비에 아싸야스 감독이 2년 간격으로 내놓은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2014)와 <퍼스널 쇼퍼>(2016)는 소재는 전혀 다르지만, 주인공이 자신의 내면에 내재된 욕망을 마주하는 과정을 담았다는 점이 닮았습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맞물리다가 자연스럽게 합쳐지는 구성, 페이드아웃의 잦은 사용, 미디어를 통해 보여지는 화려한 삶의 이면, 남성을 배제한 여성의 이야기 등 아싸야스 영화만의 특징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고 완성도도 꽤 높습니다. 또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누군가의 도우미 역할로 등장한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 젊음의 욕망


우선,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의 욕망은 젊음에 관한 것입니다. 중년의 스타 배우인 마리아(줄리엣 비노쉬)는 자신의 데뷔작 연극 ‘말로야 스네이크’를 연출한 감독이 자살한 뒤 클라우스(라즈 에이딩거)라는 촉망받는 감독으로부터 그 작품의 리메이크에 출연해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20년 전 자신을 스타덤에 오르게 했던 시그리드 역할의 상대역인 헬레나 역을 맡아달라는 것입니다. 극중 헬레나는 젊은 비서 시그리드에게 유혹당해 자살하는 상사입니다. 20년 전 연극에서 이 역할을 맡은 선배 배우가 이듬해 사고로 죽었기 때문에 마리아는 헬레나 역을 맡는 것이 썩 내키지 않습니다. 게다가 20년 전 시그리드였던 자신이 헬레나 역을 맡는다는 것은 관객들에게 그녀가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녀는 클라우스의 집요한 설득에 결국 수락합니다. 그리고 비서 발렌틴(크리스틴 스튜어트)과 함께 스위스의 한적한 마을 실스마리아에서 대본 연습을 합니다. 리허설을 위해 시그리드 역할을 맡은 배우인 조앤(클로이 모레츠)과 만난 마리아는 그녀가 젊은 시절의 자신보다 더한 막무가내인데다 스캔들 메이커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리아는 헬레나 배역에 빠져들수록 자신이 더 이상 20년 전의 시그리드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안절부절합니다. 마리아의 불안한 정서를 견디지 못한 발렌틴은 돌연 떠나버립니다.


영화의 제목이자 배경인 실스마리아는 마리아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실스마리아는 니체가 요양하며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집필했던 곳이기도 한데요. 당시 니체는 산 위에서 실스 호수를 내려다보면서 우주와 인생은 영원히 되풀이 된다는 ‘영원 회귀’를 떠올렸다고 하죠.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마리아는 발렌틴에게 자신은 이미 퇴물이라며 젊은 사람들에게 존경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그치듯 묻습니다. 이에 발렌틴은 헬레나 역할을 너무 비극적으로만 받아들이지 말라고 조언하죠. 그동안 마리아는 지나치게 헬레나에 몰입하고 있었거든요. 마리아와 발렌틴은 배우와 비서의 관계지만 마치 친구처럼 지내면서 허물없는 대화를 나눕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관계는 연극 속 헬레나와 시그리드의 관계와 닮았습니다. 두 사람이 대본 연습을 하는 장면은 연극의 한 장면인지 두 사람의 실제 관계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마리아는 헬레나에 몰입하면 할수록 시그리드 대역인 발렌틴이 자신을 위협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발렌틴이 견디지 못하고 마리아를 떠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젊은 시절의 자신을 놓지 못하고 자꾸만 헬레나를 통해 20년 전의 자신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고, 오직 그 연극을 회고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데도 말이죠.


<퍼스널 쇼퍼>


<퍼스널 쇼퍼> -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


이제 <퍼스널 쇼퍼>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영화 속 욕망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입니다. 프랑스 파리에 사는 미국인 모린(크리스틴 스튜어트)은 영매이자 코디(퍼스널 쇼퍼)입니다. 두 개의 직업이 참 이상한 조합이긴 한데 자세히 살펴보면 꽤 닮았습니다. 그녀는 선천적으로 유령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 쌍둥이 오빠가 죽기 전까지 함께 영매로 일했습니다. 또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 유명 모델 키라(노라 폰 발드슈테텐)의 개인 코디라는 직업을 택했는데요. 명품 브랜드 숍을 드나들면서 옷과 액세서리를 빌려오고 반납하는 일을 합니다. 키라의 집을 자주 드나들지만 거의 얼굴은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유령같은 존재입니다. 이처럼 그녀의 두 직업은 서로 다른 '유령'과 소통한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하나는 죽은 사람의 유령, 또 하나는 소비사회의 유령이죠.


<퍼스널 쇼퍼>


모린은 오빠가 죽기 전에 약속을 했습니다. 영혼이 실제 있는지 증명하기 위해 만약 죽게 되면 어떻게든 나타나기로요. 그래서 모린은 죽은 오빠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를 기다립니다. 기차를 타고 런던을 다녀오던 어느 날, 의문의 문자가 모린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문자는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않은 채 모린의 행적을 다 알고 있는 듯한 말을 합니다. 혹시나 오빠가 보내는 게 아닐까 싶어 모린은 대답을 해줍니다. 모바일 시대에는 유령도 모바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이 영화만의 독특한 상상력이죠. 문자는 모린에게 키라가 갖고 있는 비싼 옷들을 입어보고 싶지 않느냐고 물어봅니다. 모린은 그렇다고 대답하고는 키라의 옷방에서 값비싼 옷들을 입어봅니다. 그리고는 그대로 키라의 침대에서 잠이 듭니다.


다음날 저녁 모린은 보석을 배달하기 위해 다시 키라의 집으로 갔다가 방 안에서 키라가 죽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경찰 조사를 받고 오는 길에 그녀는 문자를 받습니다. "혹시 나의 존재를 경찰에게 말했나?" 이제 모린은 보내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는 문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그녀를 쫓는 자는 죽은 사람의 유령과 소비사회의 유령의 콜라보레이션입니다. 실체를 알 수 없고 영화도 누군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습니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 욕망을 내려놓은 마리아


다시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로 돌아가서 영화의 후반부를 살펴보죠. 발렌틴이 떠난 뒤 마리아는 마음을 다잡고 어느 정도 욕망을 극복하고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그녀는 공연을 앞두고 조앤에게 묻습니다.


"클라이막스 장면에서 그냥 가지 말고 헬레나를 한 번 쳐다봐주면 좋지 않을까?"


나이 든 자신에게 연민을 가져달라는 부탁입니다. 젊은 시절 자신이 당시 선배에게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담겨 있죠. 하지만 조앤은 이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 장면에서 헬레나는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는데 쳐다보면 오히려 극에 힘이 빠지죠."


그러자 마리아는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렇지. 내가 그 장면을 오해하고 있었네."


마리아의 체념은 과거의 자신에 대한 이해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녀는 조앤을 통해 20년 전의 자신을 마주하고 스스로를 이해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고, 지금은 또 이렇게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죠. 그 즈음 클라우스가 3개의 신을 추가했다며 가져오지만 마리아는 그 신을 일부러 보지 않습니다. 더 이상 헬레나 역할에 지나치게 몰입해 자신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고, 대본 그 자체로 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젊음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는다고 젊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욕망이 더 이상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겠죠. 뱀처럼 스르륵 다가온 구름이 알프스 산을 휘감은 뒤 어느 순간 걷히듯 말입니다. 마지막 신에서 공연을 앞둔 마리아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입니다.


영화 속 마리아의 욕망이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면 그 이유는 마리아를 연기한 배우가 줄리엣 비노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랑데부> <나쁜 피> 등 초기작에서 앳된 비노쉬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지금의 비노쉬는 참 낯선 모습이니까요. 그녀는 마리아처럼 '엑스맨'에 출연한 것은 아니지만 <고질라> <공각기동대> 등에 출연하며 할리우드 상업영화에서 중년 배우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젊은 시절 <퐁네프의 연인들> <세 가지 색: 블루> <잉글리시 페이션트> 등에서의 비노쉬를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당황스런 모습이었죠. 비노쉬가 곧 마리아와 오버랩되고, 또 이 영화의 감독이 과거 <랑데부>의 각본을 썼던 아싸야스라는 것과 연결되면서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가 남긴 구름 같은 욕망의 실체는 꽤 직설적인 것으로 남았습니다.


<퍼스널 쇼퍼>


<퍼스널 쇼퍼> - 죽음과 소비, 두 욕망의 결합


이에 비해 <퍼스널 쇼퍼>의 마지막 장면은 모호합니다. 키라를 죽인 범인 잉고(라스 에이딘거)가 경찰에 붙잡힌 뒤 모린은 남자친구가 있는 오만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녀는 남자친구가 아니라 유령으로부터 신호를 받습니다. 모린은 혹시 유령이 오빠인지 묻는데 유령은 맞다고 대답합니다. 오빠가 아닌지 묻는데 유령은 이번에도 맞다고 대답합니다. 장난치지 말라며 이번엔 혹시 자신이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유령은 또 그렇다고 대답하죠. 이 선문답 같은 장면은 지금까지의 서사를 완전히 무너뜨리며 관객을 '멘붕'에 빠뜨립니다. 영화 <곡성>의 마지막 장면처럼 어떤 가설도 말이 되는 동시에 또 말이 되지 않는 것이죠.


이 결말에 따라 영화를 다시 해석해보면 문자를 보낸 사람은 오빠일 수도 있고, 잉고일 수도 있으며, 혹은 그녀의 환상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모린이 유령이었다는 가설조차 어느 정도는 말이 됩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있다고 믿는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으면 해석이 불가능한 영화가 되어버린 것이죠. 한 마디로 보는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보는 영화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감독은 왜 이런 식으로 영화의 결말을 만들었을까요?


앞서 이 영화에서 모린의 욕망은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은 욕망이라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죽음에 대한 욕망, 그리고 소비에 대한 욕망이죠. 여기서 죽음의 욕망과 소비의 욕망이 겹치는 것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자는 타나토스, 후자는 시뮬라크르입니다. 타나토스는 죽음을 향한 의지이고, 시뮬라크르는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개념이죠. 즉, 가상 세계의 소비가 유령처럼 떠돌면서 모린을 부추겨 삶의 의지를 배신하고 죽음을 욕망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바일, 화상통화 등은 시뮬라크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장치들입니다. 모린은 이 장치들을 통할 때만 비로소 타인과 제대로 소통합니다.


<퍼스널 쇼퍼>


이제 정리해보겠습니다. <퍼스널 쇼퍼>에서 모린은 발신자를 알 수 없는 문자의 부추김을 받고 더욱 더 명품 브랜드의 소비를 욕망하게 됩니다. 이 문자는 그러나 모린을 죽음의 욕망으로 이끕니다. 키라의 죽음을 본 모린은 낯선 나라로 가는데 이때 거의 삶의 의지를 포기하고 자살을 결심한 상태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그녀가 유령에게 혹시 자신이냐고 물었을 때 그녀의 귀에는 유령이 맞다고 응답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욕망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또다른 삶의 의지로 나아간 <클라우스 오브 실스마리아>와 정반대로 <퍼스널 쇼퍼>는 욕망이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죽음의 의지로 나아가게 합니다. 이처럼 올리비에 아싸야스 감독은 두 영화로 욕망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

젊지 않다는 것은 비극이 아니다.


퍼스널 쇼퍼 ★★★★

소비의 유령과 죽은 자의 유령이 만나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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