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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국내외 많은 팬을 확보한 웨스 앤더슨의 인터뷰집이 출간됐다. 앤더슨이 처음 단편영화를 만들었을 때부터 그를 눈여겨본 영화평론가 매트 졸러 세이츠가 앤더슨과 나눈 여러 대화를 한데 묶은 책의 제목은 [웨스 앤더슨 컬렉션: 일곱 가지 컬러](윌북 펴냄)다. 두 사람은 <바틀 로켓>부터 <문라이즈 킹덤>까지 7편의 영화를 이야기한다.



'서로를 아주 잘 아는 영화감독과 저널리스트'인 두 사람의 대화는 자유분방하다. 요점만 정리한 여느 신문, 잡지의 인터뷰들과 달리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마음가는대로 영화에 대해 수다를 떤다. 때론 산만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둘의 대화를 엿보는 독자 입장에선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호기심이 동하는 책이기도 하다.


앤더슨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슈퍼 8 카메라를 들고 영화를 만들었을 만큼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영화에 꾸준하게 출연하는 오웬 윌슨과는 대학 때 만나 계속해서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독립영화로 시작해 규모를 키워가는 여느 감독들과 달리 앤더슨은 운 좋게도 단편영화 <바틀 로켓>을 본 메이저 스튜디오가 이 작품을 장편영화로 만들 것을 제안하는 바람에 곧바로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할 수 있었다. 장편 <바틀 로켓>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극찬을 받으며 영화계에 웨스 앤더슨의 이름을 알렸다.


앤더슨은 감독이 되지 않았으면 작가가 됐을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글쓰기에 재능 있는 감독이다. 그는 자신이 영향받았다고 말하는 프랑소아 트뤼포, 루이 말, 사트야지트 레이, 존 휴스턴, 마이크 니콜스, 스탠리 큐브릭, 오손 웰스처럼 직접 글을 쓰고 연출하는 것을 즐긴다. 개성 강한 캐릭터를 중심에 놓고 가정의 상실, 엇나간 우정, 슬픔 등을 풍자성이 강한 코미디로 풀어가는 것이 앤더슨 스타일이다.



그의 영화에는 특히 아버지 이야기가 많은데 <로얄 태넌바움>에서 불치병에 걸린 아버지는 세 아이들을 불러모으고,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에서 다큐멘터리 스타 감독인 아버지는 존재를 몰랐던 아들을 만나 후계자로 삼으려 하며,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에서 아버지는 가족들과 함께 농부들을 상대로 반란을 꾀한다. 이처럼 그는 위기에 처한 아버지를 이야기의 중심에 놓고 그가 흔들리는 과정에서 슬픔, 절망, 동정 등의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는 이야기 뿐만 아니라 비주얼에도 집착해 강렬한 원색, 카메라 직선이동, 슬로우 모션, 스냅 줌, 미니어처 등은 거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어버렸다. 특히 그의 영화에선 공간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는 학교, <로얄 테넌바움>은 맨션,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은 배, <문라이즈 킹덤>은 야영장,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호텔이 영화의 배경이면서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는 역할까지 한다.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 촬영 현장의 웨스 앤더슨


그가 창조한 공간은 지금까지 없던 전혀 새로운 세계다.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은 반으로 자른 배의 단면을 보여주고 싶어서 자크 쿠스토의 배를 연구해 세트를 지었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헝가리와 독일을 비롯한 유럽 곳곳의 호텔들을 조사한 뒤 4미터짜리 미니어처 호텔과 케이블카까지 만들어 촬영에 들어갔다.


그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꼼꼼한 세공술이 워낙 돋보이기 때문에 제작에 들어가기 전 엄청난 준비를 하지 않았을까 짐작하게 되는데 실제로 이 책에서 그는 시나리오 단계부터 절대로 대충 넘어가는 장면이 없다고 말한다.


“저는 '택시 운전사가 남자에게 지시사항을 알린다' 같은 식으로 신을 쓰지 않습니다. 그가 할 사소한 말들도 다 시나리오에 적습니다. 그리고 숏을 계획하죠. 시나리오에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문라이즈 킹덤> 촬영 현장의 웨스 앤더슨


하지만 시나리오 단계를 넘어가면 현장에서 그의 방식은 완벽하게 통제만 하는 방식은 아니다. 확실히 그는 이상적인 영화의 상을 머릿속에 담아두고 그대로 영상으로 옮기는 큐브릭같은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자와는 다르다. 그의 다음 말을 보자.


“인생이나 글쓰기나 영화 만들기에서, 우리는 그 의미를 컨트롤하지 않습니다. 아니, 컨트롤하고 싶지 않은 게 제 본능입니다. 벌어질 수 있는 방식으로 어떤 식으로든 그냥 살아나게 하는 게 더 좋죠. 모든 것이 영화에서 창조되어야 한다고 느끼고 그래서 저는 어떤 주제를 보여주거나 어떤 이론을 설명하려 하기보다 거기서 의미가 그냥 살아나게 놔두고 싶습니다.”


이러한 모순적인 제작과정, 즉 필연과 우연을 동시에 추구하며 최고의 장면을 위해서라면 어느 쪽이든 고집하지 않는 방식이 지금의 앤더슨 영화를 탄생시킨 것 아닐까 싶다.



그는 아이디어를 주로 여행에서 얻는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태어난 그는 최근 아예 파리에 집을 얻어 살고 있다. 그가 해외에서 촬영한 첫 작품은 2004년작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로 이 영화의 배경은 이탈리아였고, 주로 치네치타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저는 언어를 배우는 데 소질이 없어요. 아주 느려요. 프랑스에서 지내는 이유는 스스로를 고립시키기 위해서죠. 거리를 두게 돼요. 저는 그게 좋습니다. 외국에 있을 때는 날마다 새로운 걸 발견하죠.”


그는 평균 2년에 한 편 꼴로 영화를 만들고 있는데, 매번 최대한 공을 들이기 때문인지 그는 일단 영화가 완성되고 나면 절대 돌아보지 않는다고 말한다.


“영화를 완벽하게 만들려고 애쓰는 게 아니에요. 영화는 영화죠. 보관되는 자료 같은 거죠. 결점이 있겠지만, 이미 방아쇠는 당겨진 거죠.”



인터뷰어인 세이츠는 로저에버트닷컴의 편집장으로 뉴욕타임즈 등에 영화 평론을 연재하고 있다. 책 곳곳에 막스 달튼이 그린 일러스트가 삽입돼 눈을 즐겁게 한다. 다만, 앤더슨 팬덤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관한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쉽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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