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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1995)의 팬이라면 이 영화가 탐탁지 않을 것이다. 세계관은 지극히 단순화되어 있고, 비운의 히로인 메이저는 그저 잘 싸우는 바비인형에 다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원작에서 쿠사나기 소령이 수많은 갈등 속에서 고뇌했던 것과 달리 이 영화의 메이저 미리는 흔들리지 않고 결정을 해나가는데 그 선택에 따라 이야기는 명확한 선과 악의 대결이 된다. 또 원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메이저를 혼란에 빠뜨리게 했던 인형사는 쿠제라는 캐릭터로 분산돼 무게감이 약하다. 미래를 한 세대쯤 미리 내다봤다고 칭송받는 애니메이션의 리메이크치고는 너무 익숙한 각색이다.



하지만 일본판을 접한 적 없는 관객이라면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은 강인한 여전사와 황홀한 시각효과의 향연으로 다가올 것이다. 대기업(한카 로보틱스)과 정부군 특수부대(섹션 9)의 대결 구도에 반란을 꾀하던 초기 사이보그 리더(쿠제)까지 가세해 이야기는 그럭저럭 균형을 맞춘다. 최초의 사이보그인 메이저는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를 정의한다”라고 말하며 변형 인간이 나오는 SF영화에서 익숙한 정체성 혼란을 쉽게 극복한다. 그녀가 작전 수행을 위해 옥상에서 옷을 벗고 투명한 수트 차림으로 뛰어내릴 때 두뇌만 남은 진정한 그녀가 엿보여 더 멋지다.



두 영화팬들이 공통적으로 느낄 만한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차갑다”는 감정일 것이다. 영화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차분하고 홍콩을 모티프로 한 미래도시는 블루톤으로 우울하게 다가온다. “비트” 기타노 다케시는 이 영화에 ‘신의 한 수’여서 그의 야쿠자스런 면모는 메이저의 충직한 부하 바토(요한 필리프 야스베크)의 독특한 외모보다 더 시선을 잡아 끈다.


일론 머스크가 최근 두뇌를 컴퓨터와 연결하는 사업을 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은 더 이상 SF만의 영역은 아니게 됐다. 22년 전 <공각기동대>의 세계관은 시대를 너무 앞지른 나머지 터무니없어 보였음에도 가슴 터질 듯한 애절함, 영혼을 저당잡히는 운명을 쿨하게 받아들이는 쿠사나기의 쓸쓸한 모습으로 인해 기억에 오래 남았고 수많은 팬을 양산했다. "네트는 광대해." "인간의 존재는 기억 정보의 그림자일 뿐이지." 같은 대사들은 논문에서까지 인용됐다.


하지만 22년 만에 할리우드에서 부활한 이 영화는 어쩌면 현실이 될 수 있는 미래를 그리고 있지만 원작 속 철학적인 대사들이 모두 삭제돼 보는 내내 특별한 감정을 느끼기 힘들다. 어떤 상황에서든 능수능란한 메이저에겐 절박함이 보이지 않고, 영화 속 미래 사회는 다른 SF영화에서 찍어낸 듯 차별화되지 않는다.



영화는 스칼렛 요한슨의 피부를 닮은 누드톤 수트로 인해 개봉 전부터 눈길을 잡아 끌었다. 하지만 원작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보던 쿠사나기의 몸을 요한슨이 아름답게 재현했다는 것 외에 이 영화를 더 눈여겨봐야 할 특별한 이유는 찾기 힘들다. 원작에서 가장 중요한 '고스트'를 빼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실사 이미지로 그럴 듯하게 바꾼 느낌이다. 같은 요한슨의 몸이 등장하는 <언더 더 스킨>을 한 번 더 보는 편을 차라리 추천한다.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

황홀한 시각효과에도 영혼까지는 복제하지 못한 리메이크.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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