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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는 광고회사의 창업자인 하워드 인렛(윌 스미스)은 카리스마 있고 크리에이티브한 남자다. 그는 직원들에게 사업도 결국 사람의 일이라며 세 가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사랑, 시간, 죽음이다. 우리는 사랑을 갈구하고, 시간을 원하며, 죽음을 두려워한다.



영화의 감독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데이비드 프랭클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인상적인 오프닝이다. 뉴욕의 스타트업 사무실을 배경으로 하지만 영화는 일중독자 상사나 신데렐라 성공 스토리, 커피 중독 같은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그 대신 하워드의 말처럼 좀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영화 제목처럼 사랑, 시간, 죽음 말이다.


영화의 본격적인 시작은 3년이 흐른 뒤부터다. 하워드는 더 이상 총기있는 CEO가 아니다. 그는 사무실에서 도미노를 만들며 소일하고 있다. 그는 5일 동안 도미노를 만들어 놓고는 5분만에 무너뜨려버린다. 하나씩 쌓아가다가 한 방에 무너뜨려 버리는 게 도미노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하루씩 쌓아가다가 한 방에 무너진다. 그렇게 그는 6살난 딸을 잃었다. 그의 인생은 그날 이후로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동업자이자 회사 동료이자 친구들인 휘트(에드워드 노튼), 클레어(케이트 윈슬렛), 사이먼(마이클 페나)은 하워드가 걱정되고 회사도 걱정된다. 회사의 실적은 추락하고 있는데 하워드는 회사에는 관심도 없다. 그들은 회사를 매각하기로 하지만 결정권은 대주주인 하워드에게 있다.



휘트는 하워드가 집에 틀어박혀 편지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 편지의 수신자는 사랑, 시간, 죽음이다. 하워드는 편지에서, 보전받지 못한 사랑에게 가버리라고 말하고, 상처를 치료하지 못하는 시간에겐 화석이 된 나무일 뿐이라고 공격하며, 딸을 데려간 죽음에겐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다고 원망한다.


편지의 내용을 알게 된 휘트와 친구들은 꾀를 내 우연히 만난 연극 배우 세 명에게 정말로 사랑, 시간, 죽음이 편지를 받고 찾아온 것처럼 연기해 달라고 부탁한다. 에이미(키이라 나이틀리), 라피(제이콥 라티모어), 브리짓(헬렌 미렌)은 호기심 반, 금전적 보상 반으로 제안을 승낙해 각각 사랑, 시간, 죽음을 연기한다. 과연 이 작전이 통할까? 이들은 하워드의 상처를 치유하고, 회사를 성공적으로 매각할 수 있을까?



29일 개봉을 앞둔 영화 <나는 사랑과 시간과 죽음을 만났다>의 원제는 ‘Collateral Beauty’이다. 언뜻 한 번에 와닿지 않는 이 단어를 직역하면 ‘부수적 아름다움’이지만 의역해보면 ‘고통에 수반하는 아름다움’ 정도일 것이다.


딸의 이름을 말하지 못할 정도로 상처가 깊은 하워드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고통을 나누는 모임에서 매들린(나오미 해리스)을 만나 이 단어를 듣는다. 그동안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던 그에게는 고통에 아름다움이 따라온다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딸은 더 좋은 곳에 있다거나, 고통도 조물주의 뜻이라거나, 죽음도 삶의 일부라거나 등등 실체 없이 단지 지적인 척하는 말들로 여겨질 뿐이다.



사랑과 시간과 죽음을 연기하기로 한 배우들은 하워드를 만나 그가 쓴 편지의 내용을 반박하며 설득한다. 하지만 상처 속에 사는 사람을 논리적으로 설득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인 일. 하워드 역시 지지 않고 논리적으로 단단한 방어막을 세우고 이들을 거부하려 한다.


결국 화룡점정을 찍는 것은 비슷한 고통을 겪은 매들린을 통해서다. 두 사람은 공감을 통해 한 걸음씩 다가서고 하워드는 고통이 남긴 아름다움이 어떤 것이었는지 뒤늦게 깨닫는다.



때론 짓궃게, 때론 세심하게, 전반적으로는 잔잔하게 진행되는 이 영화는 갑작스럽게 도미노처럼 찾아온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그 사건을 무작정 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이 필연적으로 수반한, 미처 보지 못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도미노가 모두 쓰러져버린 광경은 황망하지만 그 자리를 비우지 않고는 다시 도미노를 세울 수 없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하워드는 매들린을 찾아가 그토록 외면하려 애써왔던 딸의 이름을 고통스럽게 부르며 눈물을 흘린다.


어떤 사건으로든 지금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줄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화려한 캐스팅 앙상블을 보는 즐거움도 있다. 서브플롯에선 정우성, 김하늘 주연의 한국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가 연상되기도 한다.


나는 사랑과 시간과 죽음을 만났다 ★★★

삶의 용기를 저당잡힌 당신을 위로하는 영화.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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