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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표주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일곱번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 4일부터 한국 관객을 만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흥행수입 200억엔, 관객 수 1700만명 이상을 동원하며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순위 2위에 오른 작품이다. 1위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308억엔)이다.



<너의 이름은.>은 제목부터 독특하다. 물음표나 말줄임표 대신 마침표가 포함돼 있다. (일본어 원제도 한국어 제목과 똑같다.) 제목의 마침표는 주의를 환기시킨다. 마침표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크다. 그 존재만으로도 계속 신경을 쓰게되니 말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마침표를 찍은 이유에 대해 제목이 의문형이든 서술형이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밝힌 적 있다. 본문의 마침표는 문장을 끝맺지만 제목의 마침표는 그 의외성으로 인해 끝이 아니라 도돌이표 기능을 한다. 마침표에 잠시 멈춰 서서 그 문장이 갖는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경우엔 '이름'보다는 그 이름의 '의미'에 더 주목하게 한다.



영화는 이름의 실체를 찾아나선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다. 애초 소년과 소녀가 서로의 이름을 몰랐던 건 아니다. 시골마을에 사는 소녀의 이름은 미츠하, 도쿄에 사는 소년의 이름은 타키. 몸이 서로 뒤바뀐 것을 알게 된 소년과 소녀는 휴대전화에 일기를 쓰며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곤 했다. 하지만 '그 사건'이 일어난 순간, 서로의 이름은 각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이름이 그 사람의 전부일 때가 있다. 실체가 사라졌을 때 우리는 상징으로 그 실체를 기억한다. 뉴스에 사람이 등장하면 자막으로 그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 하지만 자막에 이름이 나오는데 화면에 그 사람이 등장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를 오직 이름으로만 기억한다. 예컨대 대형 재난사고가 벌어졌을 때 실종자로 표기된 자막에 등장하는 이름은 때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이다. 제3자인 우리가 재난 사고를 접하는 계기는 주로 TV 같은 미디어를 통해서이고, 이때 이름은 비록 아주 잠시 뿐일지라도 그의 존재를 인지하도록 하는 거의 유일한 상징이다.


타키에게 미츠하는 제3자였지만 우연한 시공간의 끈이 그들을 연결시켜주었다. 두 사람은 절실하게 서로의 이름을 기억해내려 애쓴다. 이름을 잃는 것은 사실상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름이 없는 자는 불리지 못하게 되고, 불리지 않으면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소년과 소녀는 살아남기 위해, 살아서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망각에 저항한다. 이처럼 <너의 이름은.>의 마침표 안에는 이름 그 이상의 실체가, 한 사람의 인생이, 그 사람이 살아왔던 우주가 담겨 있다.



<너의 이름은.>을 보며 떠오르는 영화는 많다. 남성과 여성의 몸이 서로 바뀌는 <전학생>(1982) <체인지>(1997) 혹은 드라마 <시크릿 가든>(2011) 같은 가벼운 코미디부터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교류하는 <동감>(2000) <시월애>(2000) <프리퀀시>(2000) 같은 휴먼 드라마까지. 그러나 이 영화의 놀라운 힘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교감하는 후반부에서 나온다.


내가 알게 된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아무도 믿지 않는 이야기를 믿도록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절박함, 실패가 두렵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필사적인 노력, 무엇보다 나와 가족, 친구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마을 전체를 생각하는 더 큰 연대감이 영화의 후반부를 감동으로 이끈다.



마을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평생 산사에서 무녀로 살아온 할머니는 미츠하에게 시간에 대한 혜안을 들려주는데 할머니의 대사 속에 영화의 숨은 메시지가 들어 있다. 할머니에 따르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끈(무스비) 중 하나는 '시간'이다. 시간은 뒤틀리거나 얽히다가도 다시 돌아와 이어진다. 그래서 대화재 같은 참사로 마을이 사라져도 사람의 영혼은 실타래로 이어져 있어 다시 만난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황혼녘에 이 순간을 극적으로 재현한다.


<너의 이름은.>이 일본에서 대성공을 거둔 이유 중 하나는 미츠하와 타키가 이룬 기적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참사를 겪은 일본인들을 위로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이유로 영화는 세월호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도 커다란 치유의 힘을 발휘하지 않을까 싶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에도 위기를 감지하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안내방송이 등장하고 미츠하는 이들을 상대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내 일본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 기록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301만명)이 갖고 있다.



영화는 추리서사 구조를 차용해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발랄한 전반부와 애절한 후반부 사이의 다소 이질적인 톤은 세련된 교차편집이 균형을 맞춘다. <초속 5센티미터>(2007), <언어의 정원>(2013) 등 신카이 마코토 감독 특유의 따스한 빛의 느낌과 섬세한 배경, 서정적인 분위기는 이번에도 눈을 사로잡는다. 그동안 그의 영화가 주로 '나'의 감정을 극대화해 관객과 교감하는데 천착했다면 이번에 그는 '나'를 통해 '우리'를 환기시키는 이야기로 확장한다. 나를 넘어선 우리, 아마도 그것이 감독이 영화 제목에 마침표를 붙인 이유일 것이다.


너의 이름은. ★★★★

다시 만나기 위해 부르는 이름, 힘이 되는 위로.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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