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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더듬이 왕의 연설울렁증 치료기. <킹스 스피치>를 소개하는 데에는 딱 이 한 문장이면 족하다. 그 이상도 이하도 영화는 보여주지 못한다.

올해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영화들 중 <킹스 스피치>는 가장 밋밋한 영화였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등을 휩쓸었다. 왜 이 영화가 가장 많은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의 선택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다른 9개 작품으로 표가 골고루 분산된 탓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127시간> <토이 스토리 3> <더 브레이브> <소셜 네트워크>, 그리고 <인셉션> 등 절대강자가 없었기에 오히려 표가 분산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영국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전형적인 WASP들의 취향 또한 고려되었을 것이다. 조지 6세를 제대로 다룬 영화는 이 영화가 거의 처음이니까. 조지 6세는 그동안 형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버지였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을 뿐이다. 오히려 여왕의 삼촌인 윈저공이 사랑을 위해 왕위를 버린 로맨티스트로 더 유명세를 탔었고 몇 번 영화로도 그려졌었다.

사실 오스카 작품상이라는 표창을 떼고 보면 <킹스 스피치>는 그럭저럭 준수한 만듦새를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에는 관객을 감정이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으며 멀지 않은 과거의 왕실을 궁금하게 하는 정교한 고증이 있다. 또 큰 울림을 주는 대사는 없지만 소소하게 감탄하게 하는 적절한 멘트와 유머가 있고, 무엇보다 콜린 퍼스라는 배우의 믿음직한 연기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너무 밋밋해서 지난 83년간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아쉽게도 <킹스 스피치>는 영화를 보기 전에 예상했던 것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 말더듬이 왕이 등장하고, 연설 장면으로 몇 번 극중 긴장을 조성할 것이고, 치료술사와의 우정이 그려질 것이며, 또 왕이 말더듬이가 된 원인에는 아마도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같은 게 있을 것이고, 결국 마지막에는 멋진 연설을 해낼 것이다. 도대체 이렇게 뻔한 각본에 각본상을 줄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나 익숙한 스토리보다는 오히려 라이오넬 로그의 집안을 장식한 벽지 색깔이나 배경으로 깔리는 잔잔한 차이코프스키와 베토벤의 음악이 더 인상적이었다.

영국 축구계의 실화를 다룬 데뷔작 <댐 유나이티드>에 이어 두번째 영화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운좋은 남자 톰 후퍼는 영화로 진출하기 전에 <엘리자베스>나 <존 애덤스> 같은 TV용 시대극을 주로 연출해왔다. 그래서인지 <킹스 스피치>에서도 마치 TV 사극을 보는 듯한 단순함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킹스 스피치>는 히틀러의 독일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는 왕의 연설로 끝난다. 그 이전에는 연설 잘한다고 히틀러를 부러워하던 장면도 있었다. 전쟁을 선포하던 그 연설이 당시에 아무리 훌륭한 연설이었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 시점에서 그 연설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기에 그렇게 구구절절하게 스토리를 만들어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이제 말 잘하게 됐으니 거기서 감동받으라고 하기에는 그가 전달한 컨텐츠가 너무 빈약하다. 말더듬이의 치료라는 소재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다른 시대적 상황은 철저히 무시했다는 생각이다. 한마디로 내용물은 전혀 건드리지 않고 극적 장치를 위해 포장만 요란하게 바꾼 꼴이 되어버렸다.

<킹스 스피치>는 작년에 오스카 작품상을 받은 <허트 로커>에 이어 또한번 실망스런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이다. <허트 로커>는 단지 여성 감독이 만들었다는 것 외에는 도무지 장점을 알 수 없는 전쟁영화였는데 그도 그럴것이 캐슬린 비글로우는 사실 남자보다도 더 남성적인 영화를 만들어 온 단지 성별만 여성인 감독이었다.

지금까지의 오스카 수상작이 꼭 그해 최고의 영화였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올해 오스카 작품상을 받았어야 했던 영화는 <인셉션>이다. 블록버스터 영화는 작품상을 받기 힘들다는 편견은 이미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이 깨뜨린 적도 있다. <인셉션>은 영화가 아직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퍼즐을 푸는 것처럼 다음 장면이 궁금하고 시간을 미분해서 들어가는 설정이 신기한 영화다. 영화에 대해 근본적으로 새롭게 사유하는 영화이면서 또한 매우 상업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이렇게 신기하고 근사한 영화를 만들어놓고 이 영화에 그저 촬영상, 시각효과상 등 부수적인 상만 들러리로 몇 개 쥐어주는 헐리우드를 나는 잘 이해하기 힘들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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