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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마지막회에서는 프랑스의 두 거장을 살펴보겠습니다. 프랑스인이면서 아프리카의 피가 흐르는 클레르 드니와 누벨바그의 기수 아녜스 바르다입니다.



19. 클레르 드니


클레르 드니와 촬영감독 아녜스 고다르. (Credit: Photofest)


클레르 드니는 1946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외교관이던 아버지를 따라 부르키나 파소, 소말리아, 세네갈, 카메룬 등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에서 자랐습니다. 이런 그녀의 어린 시절은 그녀가 훗날 제국주의와 서아프리카를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드는데 영향을 끼칩니다.


드니는 14세에 엄마를 따라 파리 교외로 이사합니다. 이는 그녀의 부모가 프랑스에서 교육받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드니는 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시절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건 완전히 자살행위에요. 모든 게 나를 열받게 했어요."


경제학을 그만둔 그녀는 프랑스 영화학교 IDHEC로 진학합니다. 남편의 응원 덕분에 그녀는 IDHEC를 졸업하고 영화감독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데뷔작은 <초콜릿>(1988)입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아프리카 제국주의에 관한 은유를 담고 있는 반자전적인 영화입니다. 칸 영화제에 초청받아 비평가들과 관객들로부터 극찬을 받습니다.


이후 만든 <잠들 수 없어>(1994), <네네트와 보니>(1996), <좋은 일>(1999) 등으로 그녀는 "프랑스 영화의 서정성을 현대 프랑스의 난폭한 모습과 화해시킨 감독"으로 명성을 얻습니다. <트러블 에브리 데이>(2001), <금요일 밤>(2002), <하얀 재료>(2009) 등은 아프리카에서 촬영한 영화입니다.


드니는 할리우드의 컨벤션을 거부했습니다. 관객이 클리셰를 느끼지 못하도록 그녀는 실제 역사와 개인사를 결합해 매우 자전적인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영화는 '작가주의'로 불립니다. 그녀는 호러부터 로맨스까지 다양한 장르를 실험했고 이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녀는 작품 대부분을 로케이션 촬영했고, 가끔 배우들을 스틸사진을 찍는 것처럼 멈춰놓고 찍었습니다. 그녀는 고정된 카메라의 롱테이크와 롱쇼트를 선호하고 클로즈업을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만 드니의 영화적인 성취는 항상 주인공의 얼굴과 몸에 대한 클로즈업에서 나옵니다. 한 마디로 그녀는 형식주의자이면서 기존의 틀을 파괴한 작가입니다.


<네네트와 보니>(1996) <트러블 에브리 데이>(2001) <잠들 수 없어>(1994) <금요일 밤>(2002)


드니는 촬영을 빨리 하고 편집을 느리게 하는 감독입니다. 세트에서는 테이크를 많이 가지 않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편집실에서 보내며 신들을 스크립트와 다른 순서로 재배치해봅니다. <좋은 일>에선 스크립트와 달리 댄스 장면을 맨 뒤로 보냈습니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 적 있습니다.


"나는 영화를 만들 때 항상 불안정합니다. 내 자신에 대해 의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거예요."


드니는 같은 배우와의 협업을 즐기는 감독입니다. 그녀의 영화에는 항상 똑같은 배우들이 나옵니다. 이사슈 드 방콜, 뱅상 갈로, 베아트리스 달, 알렉스 드카, 그레고어 콜랭 등입니다. 또 각본가 장폴 파르고, 작곡가 스튜어트 스테이플, 촬영감독 아녜스 고다르 등도 자주 함께 했습니다.


그녀는 2013년엔 영화 <바스터즈>가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선정되며 재기를 알렸는데요. 그해 스톡홀름 영화제는 그녀에게 평생공로상을 수여하며 업적을 기렸습니다.



20. 아녜스 바르다


<라 포앵트 쿠트르로의 여행> 촬영 중인 아녜스 바르다


프랑스의 누벨바그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여성감독이 바로 아녜스 바르다입니다. 그녀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에서 '시네크리튀르(cinecriture)'라는, '영화(cinema)'와 '글쓰기(ecriture)'를 결합한 독특한 영화를 만들어 명성을 얻었습니다.


바르다는 1928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엔지니어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다섯 자녀 중 셋째로, 원래 이름은 아를레트였습니다. 엄마는 프랑스인이었고 아빠는 터키 아나톨리아에서 망명 온 그리스인이었습니다. 그녀는 18세에 이름을 아녜스로 바꿉니다.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그녀는 벨기에를 떠나 프랑스의 세트로 갑니다. 에꼴데보자르에서 예술사와 사진을 공부하고 대중극장에서 사진가로 일하기 시작합니다.


1954년 바르다는 영화감독으로 데뷔합니다. 당시에는 과거의 영화를 부정하고 새로운 영화운동이 꿈틀대던 시기였습니다. 감독이 곧 작가가 되는 '작가주의'가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바르다 역시 새로운 영화를 만들려고 했고 그렇게 만든 첫 영화가 <라 포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입니다.


누벨바그는 크게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는데요. 하나는 카이에 뒤 시네마(영화 평론지 cahiers du cinema) 그룹, 또 하나는 히브 고슈(좌안, rive gauche) 시네마 그룹입니다. 바르다는 히브 고슈 그룹에 가까운데요. 이 그룹은 누보로망이라는 문학운동과 연결되어 있고 정치적으로는 좌파 성향입니다. 히브 고슈 그룹에 속한 다른 감독들로는 크리스 마르케, 알랭 레네, 마그리트 뒤라스, 알랭 로브그리예, 장 카이요, 앙리 콜피 등이 있습니다.


바르다는 1957년 중국을 방문하고 1961년엔 쿠바를 찾았습니다. 유럽 좌파들이 대부분 실체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혁명을 지지하고 있을 때였어요.


여기서 바르다가 갖고 있는 누벨바그에 대한 생각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다음은 그녀가 2009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누벨바그는 1959년에서 1970년 사이에 영화를 만든 사람들을 모두 지칭하는 단어예요.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나요? 30세 이하의 청년들이 3천만 프랑 이하의 돈을 갖고, 거리에서 촬영했다는 것 정도가 공통점이죠. 감독이 된 카이에 뒤 시네마 비평가 그룹들 말인데요. 영화적으로 그렇게 혁명적이지 않았어요. 그들은 이것과 저것의 차이점에 대해 토론했죠. 하지만 두 가지가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그토록 아름다운 트뤼포의 영화들은 사실 그렇게 모던하지 않아요. 그는 연대기순으로 내러티브를 쌓아가면서 거기서 감동을 끌어내죠. 연구를 많이 한 감독은 알랭 레네예요. 그의 영화는 기억에 따른 전개를 보이잖아요. 크리스 마르케도 그렇고요. 그리고 장뤽 고다르야말로 항상 연구자의 자세였죠. 프랑스 영화계에 그만큼 영화에 대해 진지한 연구자는 없을 거예요. 영화가 그를 바꾸었고 또 그가 영화를 바꿨어요. 그외 다른 사람들 중에는 모리스 피알라가 위대한 영화감독이죠."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1977) <방랑자>(1985) <낭트의 자크>(1991)


어쨌든 누벨바그 감독으로서 바르다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영화를 만듭니다. 다른 누벨바그 감독들처럼 그녀 역시 로케이션 촬영, 비전문 배우 캐스팅 등을 시도했습니다. 바르다의 주인공들은 대개 사회에서 배척되거나 거부당하는 여성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영화는 종종 페미니즘으로 묶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르다만의 스타일은 그녀가 카메라를 펜으로 지칭하는데서 시작합니다. 그녀는 응집력 있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영화제작에 필요한 모든 역할이 동시에 행해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또 편집을 중시해 그 과정에서 모티프를 만들 이미지와 대사를 찾았습니다.


영화감독이면서 동시에 사진작가이기도 했던 그녀는 스틸 이미지를 내러티브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스틸 이미지와 움직이는 이미지 사이의 충돌을 새로운 내러티브로 만들었습니다.


바르다는 영화를 만들면서 디테일에 굉장한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영화들에 쓰인 장치들은 기능보다는 각각 어떤 메시지를 함의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녀는 초현실주의, 프란츠 카프카, 나탈리 서로트 등에 영향받았습니다.


1958년, 파리에 살던 그녀는 자크 드미 감독을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쉘부르의 우산>을 만든 프랑스 거장이죠. 두 사람은 결혼해 두 아이를 낳습니다. (그녀는 드미 감독이 죽을 때까지 결혼생활을 유지했습니다.) 바르다와 남편 자크 드미는 1960년대말에 LA로 옮겨 영화를 만듭니다.


1971년, 바르다는 '낙태 합법화에 찬성하는 343명의 선언'에 서명합니다. 또 그녀는 1971년 파리에서 열린 짐 모리슨의 장례식에 참석한 다섯 명 중 한 명입니다. 1983년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 2005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의 각본을 썼고, 1995년엔 남편에 관한 다큐멘터리 <자크 드미의 세계>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사이먼 히치맨이라는 평론가는 아녜스 바르다의 Top 10 영화를 다음과 같이 꼽았습니다.


10. 낭트의 자크 (1991)

9. 라 포앵트 쿠르트로의 여행 (1955)

8. 창조물들 (1966)

7. 다게레오타입 (1976)

6.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 (1977)

5. 아그네의 해변 (2008)

4. 방랑자 (1985)

3. 행복 (1965)

2.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1962)

1.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 (2000)




참고 사이트:

Claire Denis Wikipedia

Claire Denis [Senses of Cinema]

Agnes Varda Wikipedia

Top 10 Best Agnes Varda Films

Agnès Varda: 'Memory is like sand in my hand', [The Guardian]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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