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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무어는 항상 뜨겁고 주관이 강한 작품을 만들어온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입니다. 1989년 <로저와 나>로 호평 받으며 데뷔했는데요. 이 영화는 그가 직접 화자로 등장해 그가 태어나 자란 미시간 주 플린트 시에서 갑자기 철수한 대기업 GM이 수많은 실업자를 양산한 과정, 그가 직접 로저 스미스 CEO를 만나려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35세까지 변변한 직업이 없던 무어는 16밀리 카메라 하나를 구입해 들고 다니며 3년 동안 영화를 찍었고, 독특하고 재미있으면서 뼈있는 일침을 날리는 다큐멘터리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후 그는 자신의 명성을 적극 활용하며 총기규제, 부시정부, 의료보험 등을 정면으로 겨냥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콜럼비아 고등학교의 총기사고 원인을 추적한 <볼링 포 콜럼바인>(2002)을 만들어 칸 영화제 55주년 특별상과 아카데미 장편다큐멘터리상을 받았는데요. 2003년 오스카 시상식에서 부시 대통령을 향해 "Shame on you!"라고 한 발언이 오랫동안 화제가 됐죠.


이듬해 911 테러 이후 이라크 침공을 감행한 부시 정부의 비리 커넥션을 파헤친 <화씨 9/11>(2004)을 공개했고, 칸 영화제는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화답했습니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전세계 최대 흥행 기록도 갖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민간 의료보험의 이면을 폭로한 <식코>(2007), 미국식 자본주의의 결점을 주관적으로 비판하고 변호한 <자본주의: 러브스토리>(2009) 등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항상 인터뷰 대상을 비꼬거나 막무가내식 도전을 통해 정면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데 그 밑바탕에는 항상 유머가 깔려 있어 비판의 당사자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즐겁게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올해 62세인 무어는 작년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참석해 자신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연설했는데요. 그 내용을 리스티클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1. 다큐멘터리가 아닌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하라


다큐멘터리를 만들 땐 다큐멘터리를 기획하여 만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하라. 다큐멘터리가 아닌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라. 이야기 전달 방법으로 영화라는 멋진 예술 매체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일 정치가 목표라면 입당을 하거나 시위에 참가할 수 있다. 또 설교를 하고 싶다면 신학교를 가서 목사가 되면 된다. 강의를 하고자 하면 교사가 돼라. 그러나 여러분이 선택한 직업은 영화다. 영화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라. 난 오늘 ‘다큐멘터리인’이라는 단어는 죽었다고 선포한다. 우리는 ‘다큐멘터리인’이 아니라 ‘영화인’이다. 마틴 스콜세지도 ‘픽션인’ 같은 단어로 자신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우리는 ‘다큐멘터리인’이라는 없는 말을 제조해 우리 자신을 묘사하는가? 이런 식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코너에 몰아넣을 필요는 없다. 그렇잖아도 이미 우리는 충분히 격리된 상태에 있지 않은가.


2. 다큐멘터리는 엔터테인먼트다


열심히 일한 사람들은 드디어 주말이 되면 영화를 보러 갈 희망에 부풀어 있다. 극장의 불이 꺼지는 동시에 자신이 어딘가 다른 세계로 빠져들기를 원한다. 웃든, 울든, 생각하게 하든 관객은 빠져들고 싶다. 하지만 아무도 훈계를 받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관객들이 바라는 것은 엔터테인먼트다.


제인 로더와 레퍼티 형제가 1982년에 만든 <핵 카페(The Atomic Cafe)>는 냉전 시대에 제작된 공포 조작 영화에서 여러 장면을 편집해 만든 작품이다. 지구의 멸망과 파멸에 대한 진지한 주제를 다룬 영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상영 내내 폭소를 터트렸다. 그런데 그 웃음은 그 어떤 진지한 교훈보다 더 큰 역할을 했다. 웃음은 현실에서 받는 고통을 치료하는 약이다. 그러니 진실을 추구하는 영화 내용을 쉽게 소화되게 하기 위해 꿀을 좀 섞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유머라고 믿는다. 언제부터인지 진보는 유머감각을 잃었다. 웃기는 것이 잘못된 것처럼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에 TV 쇼를 맡았을 때 작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웃기면 안 되는 주제를 다 적어봅시다. 그리고 이런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유머로 전달합시다.”


그래서 목록을 만들었다. 대참사, 에이즈, 아동학대... “아동학대에 대한 웃긴 영화라고? 말도 안 돼”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아동학대에 대한 희극을 만들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머적인 요소를 이용하여 관객에게 충격을 줄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할 가치가 있다. 유머는 권력으로 다른 이를 압박하는 사람을 적대할 수 있는 매우 날카로운 칼이다.



3. 관객이 분노하게 하라


내가 관객에게 바라는 것은 격분이다. 우울함은 수동적이지만 분노는 능동적이다. 분노를 느낀다면 5~10%의 관객은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뭔가 해야 돼. 지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달해야 해. 더 알아봐야겠어. 이런 운동에 참여할 거야!”


<화씨 9/11>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때 심사위원장은 쿠엔틴 타란티노였다. 그는 시상식 후 식사 시간에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이번 영화가 나를 어떻게 바꿨는지 이야기해드리고 싶어요. 사실 난 평생 투표를 한 적이 없어요. 등록도 안 한 상태이지요. 하지만 LA에 돌아가자마자 등록을 할 거예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상을 받은 것보다 지금 한 말이 나에게는 훨씬 더 소중합니다. 왜냐면 당신이 느낀 것처럼 다른 수천 만 명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바랄 것이 없으니까요. 이런 영화로 방금 말한 결과가 이루어지는 걸 볼 수 있다는 게 내 인생의 가장 큰 업적일 테니까요.”


화씨 9/11


4. 관객이 이미 아는 것은 버려라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은 또다시 듣고 싶지 않다. 원자력 발전이 나쁘다거나 유전자 조작 식품이 해롭다는 사실을 마치 자신이 처음 발견한 것처럼 떠드는 감독의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 혼자만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물론 세상에는 바보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걱정은 잊어버리고 나머지 똑똑한 사람들에게 집중하자. 그들이 세상에 변화를 일으킬 주역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뻔한 이야기는 금물이다. 생소한 것을 소개하라. 관객이 이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을 다루는 것이 여러분의 임무다.


<로저와 나>를 만들 때 일이다. 플린트 시에서 세를 들어 살고 있는 한 가족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경찰관에 의해 퇴거당했다. 임대료 150달러를 한 달 동안 못 냈다는 이유였다. 나는 그 경찰관을 촬영했다. 집 안에 있던 트리와 아이들 선물까지 길가에 내다놓는 그에게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렇게 퇴거시킵니까?”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매년 4~5 가족을 크리스마스 때마다 쫓아내지요”라고 하더라. 그래서 “왜 난 한 번도 이런 광경을 못봤지요?”하고 물었더니 “글쎄요.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대낮에 쫓아내는데요”하는 것이었다. 플린트에는 4개의 지역 방송국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이런 뉴스를 한 번도 내보낸 적이 없다. 이런 게 진짜 범행이 아니면 뭔지 난 모르겠다. 즉 은폐된 이야기를 알리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는 그만하자.


로저와 나


5. 진부함은 최대의 적이다


내 편집실 게시판에 이런 문구가 붙어있다. 하나는 “확실하지 않을 때는 나(무어)를 편집해 버려라.” 또 하나는 “기억하자. 우리의 관객은 이 영화가 끝나면 집에 돌아가서 섹스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관객의 저녁 시간을 망칠 영화를 만들면 안 된다. 일주일 내내 섹스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금요일 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아, 너무 끔찍했어. 기분이 칙칙하네.” 이런 상태가 된다면 불꽃놀이는 물 건너 간 것이다. 관객에게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건 옳지 않다. 관객이 영화를 보고 나올 때 에너지와 열정은 흥분 상태에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새로운 방법,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고안해야 한다.



6. 정말 나쁜 인간들의 정체를 밝혀라


지난 몇 년간 역사에 관한 굉장한 다큐멘터리들이 있었다. 팔레스타인에서 발생 중인 상황을 다룬 <다섯 대의 부서진 카메라>(2011) 같은 작품은 놀랍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미국 내에서 일어나는 정치 상황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많지 않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좋은 작품들이 많지만 대부분 혹시 법적 문제가 야기될까봐 너무 조심스럽게 다룬다. 왜 나쁜 놈들의 정체를 밝히지 않나? 왜 특정 기업을 추궁하지 않나?


어제 누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소송 당할 위험은 없을까요?” 당연히 소송 당한다! <로저와 나> 때문에 난 20번 이상 소송 당했다. 여러분도 소송 당할 것이다. 그러나 뭐가 문제인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이유를 망각한 것인가? 이 일에 안주란 없다. 한 시민으로서 영화인의 역할을 받아들였다면 그런 위험 정도는 당연한 것이다. 난 스태프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번이 마지막 작업이 된다고 해도 우리는 이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권력을 지배하는 자가 우리를 기피하게 할 정도의 내용이어야 한다.” 이렇게 ‘죽을 각오’를 해야만 여러분이 바라는 성공을 맛볼 수 있다.



7. 감독의 목소리를 담아라


꼭 자신이 카메라 앞에 서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로저와 나>에 출연하게 된 것은 사실 예상치 않았던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관객은 실제 감독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틴 스코시즈의 영화에서 관객은 누구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지 늘 명확하다. 모건 스펄록, 빌 마 등 성공한 다큐멘터리 영화인들은 영화 속에서 인간의 목소리를 잘 증폭시킨다. 많은 감독들은 개인적인 관점 또는 내레이션 삽입을 싫어해서 상황을 설명하는 자막 정도만 집어넣는데 관객은 이를 불친절하게 여긴다. 관객은 누가 그들에게 이야기하는지 궁금해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8. 언론을 향해 카메라를 돌려라


내가 지금 만들고 있는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기존 언론이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리려면 언론을 카메라에 담을 필요가 있다. 내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난 촬영 중에 갑자기 카메라를 다른 언론의 카메라로 돌린다. <볼링 포 콜럼바인>에 6살짜리 어린이의 장례식 장면이 있다. 수많은 리포터가 여기저기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고 있다. 내가 갑자기 카메라를 돌리자 어느 기자가 방송을 준비한답시고 머리 손질하고 귀에 이어폰 꽂느라 정신없다가 방송 시작 시간에 맞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리포팅을 하기 시작했다. 언론이 얼마나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데 관심이 없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9. 내 의견을 반대하는 사람을 카메라에 담아라


그런 사람들이 더 흥미롭다. 엑손이나 GM 종사자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그 입에서 나오는 대로 녹화해 보라. 또 반대 의견을 가진 이와 대화해 보라. 가능하면 관리자를 만나라. 물론 내 얼굴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어서 그런 사람들이 만나기를 꺼린다. 그러나 내게 중요한 것은 내가 하는 일이 국민을 위한 것이지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몇 명의 거부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권력을 쥐고 있는 부자들의 핑계를 까발리는 것이 내 임무다.



10. 촬영 중 직감을 신뢰하라


촬영하면서 분노하고 있거나 울고 있거나 혹은 배꼽 잡고 웃고 있다면 관객도 같은 반응으로 여러분의 영화를 반길 확률이 높다. 그 느낌을 신뢰해야 한다. 왜냐하면 여러분도 한 명의 관객이기 때문이다. 난 스태프들에게 “관객이 지금 제작진으로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고 말한다. 난 영화를 찍는 순간 이미 관객이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상상할 수 있다. 그들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바로 그런 관객의 대리인이다.



11. 줄이고 또 줄여라


편집은 짧게 하라. 비슷한 내용이라면 단어 수를 줄이고 장면 수도 줄이자. 누구의 똥 냄새도 장미향이 될 수 없고, 바퀴를 발명할 정도로 대단한 인간도 거의 없다. 관객은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인지한다. 그들은 관객에게 두뇌가 있다는 것을 신뢰하는 영화인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세상 물정에 대해 약간 어리숙한 사람도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이 자기 잘난 척을 하는지, 아니면 관객을 바보 취급하는지 다 알아차린다. 관객은 바보가 아니다. 단지 어떤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이 약간 부족할 뿐이다.


12. 사운드가 이미지보다 중요하다


음향이야말로 영화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주 요소이다. 극장에서 화면 초점이 잠깐 안 맞거나 옆으로 조금 넘어갈 때 항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음향이 중단되는 순간 극장 안은 혼돈에 빠진다. 화질이 조금 안 좋거나 촬영 중에 경찰이 쫓아오는 바람에 화면이 심하게 흔들린다고 관객이 “도대체 왜 카메라가 저렇게 흔들리는 거야? 그만 흔들리게 해!”하며 고함을 지르는 일은 드물다. 스토리 구성만 제대로 되었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귀로 들을 수 있으면 관객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즉, 청각적으로 안테나가 곤두서 있다. 그러니 음향을 싸게 때우려고 하지 말자. 다큐멘터리는 특히 음향이 중요하다.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에 실린 마이클 무어의 연설문을 참조했습니다. 한글 번역 풀텍스트는 여기, 원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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