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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를 언론배급시사회에서 미리 보았습니다. <동주>는 예전부터 보고 싶던 영화였습니다. 문인들이 주인공인 영화가 한국에도 나와주길 기대하고 있었거든요.



아르튀르 랭보를 그린 <토탈 이클립스>(1995), 버지니아 울프를 다룬 <디 아워스>(2002), 트루먼 카포티가 나오는 <카포티>(2005), 제인 오스틴의 <비커밍 제인>(2007), 앨런 긴즈버그의 두 모습 <하울>(2010)과 <킬 유어 달링>(2013) 등 시인이나 소설가를 멋지게 그려내는 서양 영화들을 보면서 글 쓰는 사람과 영화가 꽤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스트레인저 댄 픽션>(2006), <미드나잇 인 파리>(2011)처럼 소설가의 영감 자체를 소재로 한 영화를 아주 좋아하기도 하고요.


문학을 하겠다고 글 쓰는 사람들은 대개 몽상가이거나 반항아입니다. 영화의 주인공 역시 장시간 극을 끌고 가기 위해서는 욕망 가득한 사람이어야 하죠. 따라서 글 쓰는 사람이 주인공일 때 영화는 낭만적이 됩니다. 욕망에 가득 찬 로맨티시스트가 스크린에 나타납니다. 위에 언급한 영화들이 다들 그렇습니다. 범죄 논픽션 소설 [인 콜드 블러드]를 쓰는 과정을 따라가는 <카포티>마저 그렇습니다. 희대의 살인마를 인터뷰하는 카포티의 여성스러운 면이 부각되어 있습니다. 만약 기자가 주인공이었다면 절대 그렇게 캐릭터를 강조하지 않았겠죠.



그런데 한국영화에선 문인이 나오는 영화를 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역사 속 인물 중에서도 왕이나 정치인, 장군 등은 자주 영화 주인공이 됐지만 문인이 주인공인 영화는 시인 이상이 나오는 <금홍아 금홍아>(1995) 외에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음란서생>(2006)의 소설가와 <은교>(2012)의 시인 이적요는 실존인물이 아닌 가상의 인물이었죠.


아름다운 시를 낳은 동주와 몽규의 관계


<동주>는 시인 윤동주와 그의 사촌이자 절친 송몽규의 젊은 시절부터 그들이 일본에서 옥사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영화를 전기영화로 생각하고 보러간다면 괜찮습니다. 시인 윤동주의 삶과 그가 시를 지을 때 살고 있던 세상을 간접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 강하늘이 윤동주의 시를 중간중간 읊어줘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윤동주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나 가슴 뭉클한 드라마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입니다. 영화는 교조적이라고 할 정도로 윤동주와 송몽규의 생을 경건하게 따라갑니다. 두 사람의 브로맨스나 감춰진 여성관계 등을 과장하거나 일본군의 위협을 서스펜스 기법으로 강조해 영화적 재미를 줄 수도 있었을텐데 이준익 감독은 역사에 누가 될 짓은 전혀 하지 않고 정공법으로 요절한 시인을 그립니다.



"윤동주는 결과가 훌륭한 사람이고, 송몽규는 과정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이준익 감독이 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입니다. 윤동주는 그가 남긴 아름다운 시를 통해 후세에 이름이 남았지만, 말보다 행동이 앞섰던 송몽규를 기억하는 현대인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은 송몽규를 통해서만 윤동주를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송몽규가 이념에 경도돼 항일투쟁을 벌일 때 윤동주는 이념이 아니라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합니다. 두 사람은 성격도 삶의 태도도 정반대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함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도라 코스타의 연구에 따르면 거대한 적과 싸울 때는 이념적 열정보다 성장배경과 직업이 연대감을 높이는데 더 큰 역할을 한다는데요. 함께 자란 친구가 옆에서 싸우고 있으니 나도 빠질 수 없다는 식이죠.


내성적인 성격의 동주가 머뭇거릴 때 몽규는 이끌고 나아갑니다. 매사에 앞장서 시대를 고민하고 교조주의에 빠질지언정 빼앗긴 나라와 개인 사이에서 늘 우선순위를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에 두었던 몽상가인 몽규가 있었기에 윤동주가 부끄러운 자화상을 시로 쓰고, 매일 밤 별을 헤면서 떠나온 조국을 그리워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동주>는 왜 흑백영화여야 했을까


<동주>는 흑백영화입니다. 이준익 감독은 우리가 기억하는 윤동주가 흑백 사진 속에만 있기 때문에 흑백영화로 만들지 않으면 윤동주의 상이 깨질 우려가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그 뜻은 알겠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많이 답답했습니다. 컬러화면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흑백화면이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는 컬러가 너무 많을 때뿐입니다. 컬러 화면으로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흑백 화면으로 전환될 때 우리는 시각적인 희열을 느낍니다. 또 당연히 컬러영화여야 할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첨단 SF 영화가 콘트라스트 강한 흑백 영상에 담긴다면 그 또한 독특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동주>의 흑백영상은 단조로워서 시각을 가두는 흑백입니다. 아직 컬러 필름이 발명되지 않았을 때 영화를 찍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이 영화의 흑백영상은 지루합니다. 별을 더 근사하게 담기 위해 흑백화면을 쓴 것도 아니고, 흑백화면으로만 전달할 수 있는 신파적인 감정을 표현하려는 의도가 보이지도 않습니다. 단지 그 시대가 흑백사진으로 남았으니 흑백영화로 만든 것이라면 이는 너무 단선적인 생각 아닐까 싶습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시도를 할 땐 이유가 합당해야 하는데 <동주>의 흑백화면에는 그만한 이유가 보이지 않습니다.



윤동주로 분한 강하늘과 송몽규를 연기한 박정민은 맡은 역할에 잘 어울립니다. 특히 박정민은 그동안 눈여겨 본 적 없었는데 눈매가 참 매섭네요. 이준익 감독이 왜 박정민을 캐스팅했는지를 증명하는 연기력이었습니다.


자, 이제 이 글을 마무리해봅시다. <동주>는 북간도에서 자란 윤동주와 그의 절친 송몽규가 대학 진학을 위해 경성으로 갔다가 다시 일본 유학길에 오르고 끝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는 과정을 전부 담은 영화입니다. '전부' 담은 영화는 사실상 아무 것도 담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영화 곳곳에 윤동주가 남긴 감성적인 싯구들이 등장해 가슴을 울리는 장면들이 있습니다만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스토리는 지루하고 흑백 화면은 색을 잃은 것처럼 활기가 없습니다.


이준익 감독은 꼼꼼한 고증을 시도했던 <사도>에 이어 저예산 영화인 <동주>에서도 일제강점기 역사를 그대로 재현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윤동주의 삶에 지나치게 경도된 나머지 너무 평이한 영화가 나온 것 같아 아쉽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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