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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관계를 부수는 사람이다. 고리를 끊는 사람이다. 폐허 위에 서 있다."

- 김중혁 [요요]


김우진. 평범한 이름의 그는 관계를 부수는 사람이다. 매일 리셋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깨어난다.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다. 자기 자신만 거울 속의 그가 김우진이라는 것을 알 뿐이다.


혼자일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11년간 그는 혼자 잘 살았다. 그러나 그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그는 거울을 보기 싫어졌다. 그녀에게 자신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자신이 김우진임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그는 동영상을 녹화하며 연습한다. 하지만 거기까지. 그녀를 이해시킬 방법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영화는 김우진의 원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외모가 처음 바뀐 18세 때도 배성우가 연기한 아저씨 얼굴로 시작한다. 관객은 우진의 원래 얼굴을 모르니 그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 지 알 수 없다. 그건 관객뿐만 아니라 영화의 여주인공인 홍이수(한효주)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녀 역시 혼란스러워한다. 우진은 어떤 사람일까. 매일 목소리도, 생김새도, 감촉도 다르다. 그런데도 그를 우진이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내면일 것이다. 영화는 그것을 가구로 표현한다. 나무가 변해 테이블이 되고, 의자가 되고, 기타가 되는 것처럼 우진 역시 하루는 소파였다가 하루는 의자로 변하지만 그의 본질은 나무다.


우진은 나무를 잘라 변형해 가구를 만든다. 그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기억되지 못하는 존재이기에 그는 의뢰인의 체형에 꼭 맞는 맞춤형 가구를 만든다. 그 가구는 세상에 하나뿐인 가구다. 우진이 가질 수 있는 얼굴이 오늘 하루뿐인 것처럼 말이다.


다행히 우진은 가구를 잘 만든다. 10년 동안 가구만 만들어 실력자가 됐다. 이수는 그가 만든 가구의 디자인으로 그를 알아본다. 그는 자신의 창작물로 자신을 증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중혁의 단편소설 [요요]의 주인공 남자도 그랬다. 그는 시계를 만들어 자신을 증명했다.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 역시 시계를 통해 그를 알아봤다. 이렇게 사람은 그가 만든 것으로 기억된다.


우진의 마음을 알게 된 이수는 매일 얼굴이 바뀌는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하지만 문제가 있다. 그녀 역시 사회 속에 존재하는 사람이다. 그녀에겐 가족이 있고 회사가 있다. 그녀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우진을 소개할 수 없다. 단둘이 고립되어 살아가지 않는 한 그녀는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한다.



두 사람이 헤어지고난 뒤 우진이 만든 의자가 그녀의 집으로 배달되는 장면이 있다. 사랑은 떠나고 가구만 남았다. 가구는 우진이 자신임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방식이었다. 이수는 언니에게 안겨 울면서 말한다.


"함께 갔던 식당의 반찬도 다 생각나는데... 그 남자 얼굴이 기억이 안 나..."


김대명부터 유연석까지, 박신혜부터 우에노 주리까지, 아이부터 할머니까지, 우진은 다양한 사람으로 변해왔다. 박서준일 때 우진을 알게 된 이수는 그가 이범수였다는 것, 오늘은 천우희라는 것, 다음 날은 김민재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느 날은 멋진 이진욱이었다가 어느 날은 아저씨 같은 조달환이다.


하지만 매일 변한다는 것은 없는 것과 다름없다. 어떤 것도 진짜 우진의 모습이 아니다. 카메라의 렌즈를 길게 노출시킨 상태로 붐비는 도로의 사진을 찍어보라. 그곳엔 자동차가 사라지고 텅빈 도로만이 찍힐 것이다. 그 사진은 그곳이 원래 길이었다는 것을 말해줄 것이다. 모든 것이 변해도 진짜는 변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 자리에 남아 있어야 진짜다. 권력자는 변해도 국가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아야 하고, 만드는 제품은 변해도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는 변하지 않아야 하며, 사람의 외모는 변해도 그 사람의 가치관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 헤어져 있는 동안 이수는 우진에게 변하지 않는 진짜가 뭘까를 생각한다.



"우진씨 자는 동안 변하는 모습을 봤어. 처음엔 무서웠는데 그게 우진씨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안심이 됐어."


이수는 우진이 변하는 과정 속에서 그의 본모습을 보았다고 말한다. 우진은 자고 일어나면 외모가 변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변하는 그 자체가 우진의 진짜 모습이다. 이수는 그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곧잘 변한다. 쇼핑을 할 때나 식단 메뉴를 고를 때 변하는 마음은 가벼운 변화의 예다. 심하게는 절교를 하고, 이혼을 하고, 배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진은 마음이 변할 수 없다. 그의 내면까지 변한다면 그건 진정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수가 우진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도할 수 있었던 것은 비록 겉모습이 변해도 그의 내면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이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맺을 수 있던 이유이기도 하다.



<뷰티 인사이드>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감성적으로 전달하는 영화다. 제목과 달리 아름다움의 내면까지 파고들지는 못 하지만 극단적 상황에 처한 주인공을 통해 사랑의 소중함이라는 익숙한 주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매일 변하는 남자'라는 이 영화의 기발한 소재는 좀 더 예리하게 세공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스파이크 존즈의 <그녀>는 독특한 소재를 바탕으로 한 감성적인 러브 스토리이면서도 그 기저에 테크놀로지와 인간의 경계로 확장되는 이야기의 결이 숨어 있었다. 또, 우디 앨런의 <젤리그>는 카멜레온처럼 얼굴과 피부색이 변하는 남자를 통해 권력 지향적인 기회주의자들의 행태를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렸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쉽게 피로해진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들이 우리를 지치게 한다.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뉴스에는 매번 다른 얼굴들이 등장한다. 한 시간 전과 지금이 다르고, 어제는 이미 까마득한 과거처럼 느껴진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가 바뀌고 나면 그전의 검색어는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현대인이 안면인식 장애에 걸리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비정상일 것이다.


영화는 이와 같은 현대인의 현실을 반영하기보다 두 남녀가 위기를 극복하고 재회하는 과정을 예쁜 동화로 만드는 길을 택했다. 아쉽지만 수긍 못할 정도는 아니다. 욕심을 덜어내고 보면 <뷰티 인사이드>의 심도 깊은 아웃포커싱을 활용한 감성적인 영상과 변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테마는 그 자체로 보편적이어서 <시간여행자의 아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이프 온리>, <사랑에 대한 모든 것> 등 특수한 상황에 처한 남자와 그를 기다리는 여자의 사랑을 그린 여느 로맨틱한 러브스토리들과 견주기에 손색이 없다.



PS) 한효주의 웃는 표정과 왼쪽 얼굴 클로즈업을 실컷 볼 수 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큼직큼직한 한효주는 액션 연기를 더 해보면 어떨까.


PS) 상백 역을 맡은 이동휘 덕분에 영화의 리듬이 더 경쾌해졌다. 영화가 흥행한다면 '제2의 납득이'가 될 수도 있을 듯.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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