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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9일 서울 마포구의 '미디어카페 후'에서 김이나 작사가의 토크콘서트가 열렸습니다.

한겨레 서정민 기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김이나 작사가는 자신이 작사가로 입문하게 된 계기와 작사 노하우를 공개했습니다.

방청석에는 작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 글은 그날 김이나 작사가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김이나 작사가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소개부터 해볼까요?

1979년생. 미스틱 엔터테인먼트 소속 작사가. 남편 조영철 프로듀서.

대표곡: `좋은 날`(아이유), `아브라카다브라`(브라운아이드걸스), `피어나`(가인), `서두르지 마요`(박정현), `걷고 싶다`(조용필), `그중에 그대를 만나`(이선희), `어떤 날, 너에게`(임재범)

2014년 작사가 저작권료 수입 1위.

저서: [김이나의 작사법](문학동네)

MBC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한 적 있고, [나는 가수다 시즌3]에서 총평을 담당했고, JTBC [슈가맨을 찾아서]에도 출연중입니다.


그럼 김이나 작사가와의 본격적인 1문1답을 시작합니다.



서정민 한겨레 기자와 김이나 작사가



- 원래 음악을 좋아했나?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해 음악 관련 일을 하고 싶었다. 벨소리 회사에서 일했는데 그때도 음악 관련 일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하는 일은 프로모션 등 음악과는 큰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 어떻게 데뷔하게 됐나?

“김형석 작곡가와 우연히 만났다. 일 관련해서 만난 건 아니다. 그냥 마주쳤는데 대뜸 찾아가서 "작곡을 배우고 싶어요" 라고 말했다. 아마 뭐 이런 애가 다 있나 하셨을 거다. 그땐 내게 좀 무모한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다행히 김형석 작곡가는 누구에게나 한 번의 기회는 주시는 분이다. 그땐 작사보다는 작곡이 하고 싶었지만 작곡으로는 잘 안 풀렸다. 김형석 작곡가가 어느날 내 홈페이지에 와보고는 글이 괜찮으니 작사해볼 생각이 없냐고 했다. 그리고는 곡을 주셨다. 그렇게 시작했다. 일기 쓰고 사진 찍어서 미니홈피에 올리는 걸 좋아했는데 평소에 목적 없이 해놓은 일들이 언젠가 도움이 되더라.”


- 그때 의뢰받은 곡이 뭐였나?

“드라마 <올인> 주제곡이었다. 그런데 완성하지 못했다. 그 곡이 ‘처음 그날처럼’이다. 나는 쓰지 못한 곡이다. 한동안 그 곡을 듣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과연 또 기회가 올까 자책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김형석 작곡가님이 볼 수 있도록 미니홈피를 더 열심히 꾸몄다. 그런데 정말 몇 달 후에 다시 의뢰가 왔다. 그 곡이 성시경의 ‘시월에 눈이 내리면’이다.”


- 그 곡은 완성했나보다.

“첫 곡에 실패한 뒤 몇 달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다른 곡을 분석하는 가사 연구를 계속했다. 가사의 맥락이 보이더라. 그래서 ‘시월에 눈이 내리면’은 금방 썼다.”


그렇게 기다려온 겨울이 오려나봐요

소박한 고백 모자랄까 하얀 세상 함께 드리려했죠

차가운 바람결에 겨울향기 느껴질 때면 

설레는 맘에 '사랑해요' 그대 몰래 속삭이기도 했죠

- 성시경 '시월에 눈이 내리면'


- 언제부터 전업 작사가가 됐나?

“데뷔한 지 4년쯤 지난 2007년경이었다. 그때까지 회사원이었는데 저작권료가 월급만큼 됐을 때 전업을 결심했다.”


- 지금까지 300여곡을 작사했다.

“평소에 좋아하는 것, 애정을 갖고 있는 것, 그것이 결국 능력이 된다. 나는 결국 ‘빠심’이 베이스다. 나는 음악을 가수보다는 작곡가 위주로 좋아했다. 윤상, 김형석, 윤일상 등등. 그래서 '김형석 with Friends' 콘서트 이런데 가서 사진 찍고 그랬다.”


- 가요엔 사랑 노래가 많다. 왜인가?

“작곡가나 A&R이 사랑 노래를 원하기 때문에? 농담이고. (웃음) 사랑이 주제가 아닌 노래도 많이 써봤지만 대부분 까였다. 아, '까인다'는 것은 업계 용어로 거절당했다는 말이다. 까이면 되게 아프다. 사랑은 보편적인 감정이라서 모든 사람을 설득하기 쉽다. 사랑이 아닌 이야기는 설명할 게 많아지는데 3분 정도의 시간 동안 그걸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새로운 가사를 써보려 하다가도 결국 사랑 이야기로 돌아가는 것 같다.”


- 작곡가들이 가사를 의뢰할땐 어떤 요구를 하나?

“특별한 건 없다. 발음에 신경 써달라고 부탁하는 정도다. 작곡가가 준 가이드에 맞춰 가사를 고른다. 이민수 작곡가(아이유의 '너랑 나', '좋은날' 등의 작곡가)는 어려운 단어를 가이드로 준다. 정말 골치가 아프다. 한번은 "유고슬라비아 아랍사람이야"라고 흥얼거린 가이드를 건네준 적 있다. 마침 유고슬라비아 축구 경기를 보고 있었다나. 그러면 나는 그걸 ‘넌 내 스타일이야, 딱 내 스타일이야’로 바꾼다. 그런 식이다.”


그런 성격마저 넌 내 스타일이야

딱 내 스타일이야

미워할래도 못해 난

My Style ~

You make me fall in love with you

- 브라운 아이드 걸스 'My Style'


- 특별히 신경 쓰는 발음이 있나?

“‘ㅅ’ 발음은 쇳소리가 나서 주의해야 한다. 발라드에서는 잘 안 쓴다. 그런데 'ㅅ'을 잘 쓰면 모양새가 나는 곡이 있다. 작곡가들도 그걸 알아서 가끔 ‘ㅅ’ 발음을 넣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한 번은 이민수 작곡가가 가이드로 ‘one sex’를 녹음해서 보냈더라. (이민수 작곡가는 목소리가 느끼해서 가이드를 듣는 게 고역이긴 하다.) 그걸 결국 ‘six sense’로 바꿨다.”





- 젊은 가수 뿐만 아니라 조용필, 이선희 같은 거장들과도 작업했다.

“나는 거장들의 이름값에 무게 눌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긴장을 즐긴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가치관이 뚜렷하다. 이건 내가 꼰대를 좋아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꼰대는 멘토와 다르다. 멘토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려는 사람이지만, 꼰대는 듣는 사람의 의사와 상관없이 나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이다. 난 멘토는 싫지만 꼰대는 좋다. 뭔가 뚜렷하게 가치관이 서 있는 사람이 좋다. 어느 날 조용필 선생님에게 의뢰가 왔고 들뜬 마음에 가사를 썼다. 채택된 노래 제목은 ‘걷고 싶다’이다.”


난 너를 안고 울었지만 넌 나를 품은 채로 웃었네

오늘 같은 밤엔 전부 놓고 모두 내려놓고서

너와 걷고 싶다 너와 걷고 싶어

소리 내 부르는 봄이 되는 네 이름을 크게 부르며

보드라운 니 손을 품에 넣고서

- 조용필 '걷고 싶다'


- 대가에게 인정받은 기분이 어땠나?

“혈통보증서를 받은 기분이었다. 이제 이 바닥에서 뭘 해도 된다는 프리패스 같은 것 있지 않나? ‘까방권’이랄까.”


- 사실 그 곡을 들을 땐 조용필이 직접 쓴 줄 알았다.

“그게 제일 듣기 좋은 칭찬이다. 가수가 직접 쓴 것 같은 가사가 가장 좋은 가사다.”


- 이선희와의 작업도 남달랐을 것 같다.

“구창모의 ‘희나리’ 가사를 참 좋아한다. 예스러운 어투가 매력적이다. 이선희 선생님과 작업할 때는 그런 예스러운 어투에 이선희의 예쁜 외모를 표현하고 싶었다. 노래를 워낙 잘해서 가려졌지만 이선희는 참 예쁜 가수다. 그런 걸 알리고 싶어서 쓴 노래가 ‘그중에 그대를 만나’다.”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로를 알아보고 Oh~ Oh~

주는 것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 이선희 '그중에 그대를 만나'


- 임재범과도 작업했더라.

“임재범 선생님은 한 마리 호랑이를 닮았다. 애인을 잃고 동굴에 홀로 사는 호랑이를 연상하면서 쓴 노랫말이 ‘어떤 날, 너에게’다. 그 곡은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에서 모티프를 얻기도 했다.”


- 소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사실 글이라는 게 어떤 면에선 굉장히 여성적이다. 감성을 실어 날라야 하니까. 그런데 김훈 작가의 글은 남성적이다. 수식어가 없다보니 무뚝뚝한 남자 같다. 그런데 감정 없는 문장들의 나열에서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거다. 그런 남성적인 글의 매력을 가사로 표현하고 싶었다.”


어디 있는지, 칼날 같은 날 품어 울던 넌 기척조차 더 이상 들리질 않아

저 먼 곳에서 타박거리며 오는 발소리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본 곳엔 비가 내린다

- 임재범 '어떤 날, 너에게'





- 리릭 프로듀서(Lyrics Producer)를 시도하기도 했다.

“작사의 작업을 분업화하는 거다. 그래서 더 프로페셔널이 되는 거다. 사랑에 관한 가사가 있다고 해보자. 썸타는 과정을 잘 쓰는 작사가가 있고, 연애 과정을 잘 쓰는 작사가, 이별을 잘 쓰는 작사가가 있다. 그걸 컨셉트가 겹치지 않도록 합치면 음반 전체에 걸쳐 완벽한 가사가 나올 것이다. 그게 가사 프로듀싱이다.”


- 대단한 완벽주의자 같다.

“혹자는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그래봐야 대중은 모를 거야”고 말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진 않다. 나는 “대세에 지장 없다”는 말을 싫어한다. 회사 다닐 때도 그런 말 하는 사람에게 실망하곤 했다. 대세에 지장 있는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지 않나. 남들이 잘 알아주지 않더라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게 디테일이고 결국 거기서 승부가 난다.”


시선 따윈 알게 뭐니

수군대는 쟨 또 뭐니

넌 내가 선택한 우주

안아줄래 would you?

니 안에 숨게

- 가인 '피어나'


- 아이유와 가인의 가사를 많이 썼다. 남다른 애착이 있겠다.

“아이유는 큰 사람이다. 나이가 어려도 큰 사람이 있지 않나? 그 아이가 하고 있는 걸 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다치지 않고 잘 컸으면 좋겠다. 가인은 사실 작업하기 힘든 파트너 중 하나다. 완벽주의자다. 그런데 그녀는 내가 기대한 것의 110%를 해낸다. 캐치 능력이 좋아서 이렇게 해달라고 말하면 바로 그걸 한다. 사실 프로 가수들에게도 그건 쉽지 않은 능력이다.”


- 아이유가 부른 ‘아이야 나랑 걷자’도 작사했다.

“그 가사를 쓰면서는 베테랑 가수가 해줬으면 하고 바랐다. 최백호 선생님은 감히 꿈도 못 꿨는데 흔쾌히 해주겠다고 하셔서 영광이었다. 그냥 툭 치는 것만으로도 멋진 분이다.”


아이야 나랑 걷자, 멀리

너의 얘길 듣고 싶구나

아이야 서두를 건 없다

비가 올 것 같진 않아

- 아이유 & 최백호 '아이야, 나랑 걷자'


- 또 작업하고 싶은 원로 가수가 있나?

“나훈아 선생님이다. 언젠가 꼭 작업해보고 싶다.”



서정민 한겨레 기자와 김이나 작사가



- 지금까지 작사한 곡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조용필의 ‘걷고 싶다’, 아이유의 ‘아이야 나랑 걷자’,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를 꼽겠다."


- 아이디어를 주로 어디서 얻나?

“일기를 쓴다. 예전엔 매일 썼지만 요즘은 바빠서 그렇게까진 못한다. 일기를 쓰면 좋은 게 자신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떻게 느꼈는지, 자신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 가사가 안 써질 땐 어떻게 하나?

“머리에도 ‘새로고침’이 필요하다. 나는 ‘판결문’을 읽거나 건조한 신문기사를 읽는다. 기사의 경우 ‘1보’ ‘2보’처럼 딱딱한 글을 본다. 무미건조한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정화가 된다.”


- 본인을 하나의 이미지로 떠올린다면?

“기린? 느리고 뻣뻣하다.”


- 박주연, 양재선 작사가의 가사에 대한 생각은?

“박주연이 쓰고 김민우가 노래한 ‘입영 열차 안에서’의 첫 문장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보여주긴 싫었어. 손 흔드는 사람들 속에 너를 남겨두긴 싫어’를 보자. 이 문장 안에 이 노래에 대한 모든 게 다 들어 있다. 이 문장을 가령 ‘나는 군대에 가. 머리를 짧게 잘랐지. 열차를 탔어. 너와 헤어지긴 싫어.’ 이렇게 나열한다고 생각해보라. 아무런 감흥도 없지 않나? 통찰력이 있어야만 쓸 수 있는 가사다. 양재선 작사가가 쓴 성시경의 ‘내게 오는 길’도 마찬가지다. ‘사랑한다는 그 말 아껴둘 걸 그랬죠. 이젠 어떻게 내 맘 표현해야 하나’라는 문장 속엔 사랑 그 이상이 담겨 있다.”


- 자극을 주는 노랫말이 있나?

“빅뱅 노래는 언제나 자극이 된다. 세련된 말장난 같은데 흥이 난다. 나는 죽을 때까지 못할 것 같은 가사다. 생각해보라. 내가 만약 ‘찹쌀떡’을 가사로 보냈다면 100% 까였을 것이다. 빅뱅이니까 그런 노랫말을 생각해 부를 수 있는 거다.”


- 작사가로써 언제 보람을 느끼나?

“가수가 내가 생각한 것처럼 불러줄 때 쾌감을 느낀다. 반면 며칠 밤을 새워 쓴 가사가 1초 만에 탈락할 때 힘들다. 그건 아무리 연차가 쌓여도 여전히 극복하기 힘들다.”


- 작사를 하고 싶은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그냥 써라. 쓰다 보면 늘고 그러다 보면 더 잘하고 싶어진다. 결국 애정이 있어야 잘 한다. 만약 작사만이 아닌 싱어송라이터를 꿈꾼다면 내깔기고 싶은 대로 살아라. 나는 지금까지 성격 좋은 싱어송라이터를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굳이 이상하게 4차원 흉내 내라는 게 아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하라.”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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