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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롭 스미스의 소설 [차일드 44]가 한국에 처음 알려진 것은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를린> 개봉때였습니다.

영화 속 하정우와 전지현의 관계가 소설 속 레오와 라이사의 관계와 닮아 표절 논란에 휩싸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소설을 읽어봤는데요.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이 정도를 표절로 볼 수 있나? 싶었습니다.

하정우가 전지현을 의심했다가 그녀가 임신했다고 말하자 그녀를 보호하는 것과 라이사를 고발하라는 명령을 받은 레오가 라이사가 임신했다는 말을 듣고 그녀를 보호하는 설정이 비슷하긴 하지만 그 정도는 우연의 일치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이었거든요. 왜냐하면 그 설정 외의 모든 부분이 달랐기 때문이었죠.

어쨌든 논란 속 [차일드 44]가 영화로 만들어졌고 이제 영화 대 영화로 두 편을 비교해볼 수 있게 됐습니다.


감독은 스웨덴 출신의 다니엘 에스피노사. 아직 대표작이 없는 감독이죠. 스웨덴 액션 영화 <이지 머니>로 유명세를 얻어 할리우드에 진출했지만 눈에 띄는 작품은 없습니다.

제작사는 왜 그를 감독으로 택했을까요?

아마도 그가 스웨덴 출신으로 <세이프 하우스>라는 전직 CIA 요원이 등장하는 스릴러를 만든 적 있다는 것이 그를 감독으로 발탁한 배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웨덴은 사회주의 국가로 러시아와 거리가 가까워 그쪽 정서를 비교적 잘 알 수 있다는 것과 <세이프 하우스>가 내세울 정도의 완성도를 지닌 것은 아니지만 국가에게 맞장뜨는 전직 CIA 요원을 통해 국가의 역할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이기 때문이죠.


그가 만든 영화 <차일드 44>는 원작 소설의 문제의식을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옮겼습니다.

그 문제의식이란 허황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작을 일삼는 국가라는 조직 속에서 진실의 가치를 보호할 자는 누구냐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한국판 <살인의 추억>으로 소개됐지만 사실 두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다릅니다. <살인의 추억>이 끝내 붙잡지 못한 범인을 쫓는 가치관이 서로 다른 두 형사의 이야기라면, <차일드 44>는 범인을 쫓는 장교가 폐쇄된 사회 속에선 또다른 목표물이 된다는 설정입니다. <살인의 추억>에도 정치권력이 형사의 수사를 방해하는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부차적인 반면, <차일드 44>는 그것이 주요 메시지입니다. 목표지향주의적인 전체주의 사회의 어두운 면이 스릴러라는 장르에 녹아드니 독특한 플롯의 영화로 탄생했습니다.



영화는 전우인 레오(톰 하디)와 바실리(조엘 키나만)가 우연히 찍힌 사진 한 장으로 인해 한 사람은 전쟁영웅이 되고 한 사람은 그의 부하가 되는 과정과 그로 인해 열등감을 가진 바실리가 레오를 짓밟는 추격전, 그리고 쫓기는 와중에도 44명의 아이들이 연쇄살해된 사건을 추적하는 레오와 네스테로프(게리 올드만)의 이야기를 씨줄과 날줄로 엮었습니다.


소설과 영화 모두 두 추격전의 간격이 그리 촘촘하지 못한데 아마도 그 이유는 당시 소련 사회가 그렇게까지 치밀하지 못했다는 반증인 것 같습니다.

레오와 네스테로프가 (나름 빅데이터 조사 끝에) 범인이 거주할 것으로 예측한 로스토프의 한 공장에서 범인이 발견되는 장면 같은 경우 요즘 할리우드 영화라면 반드시 몇 번 꼬아서 주인공이 허탕치도록 이리저리 유도했겠지만 <차일드 44>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공기인데 이 영화에서 1950년대 스탈린 치하의 소련이라는 공기는 영화에 등장하는, 요즘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전부 믿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화는 최대한 무겁고 묵직하게 그 시대의 분위기를 묘사합니다.


영화 <차일드 44>가 개봉했을 때 혹평이 쏟아졌습니다. 혹평의 이유는 스릴러로서 흥미진진하지 못하고, 사회영화로선 임팩트가 약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선 두 가지를 따로 분리해서 보면 안됩니다. 영화가 추구하는 스릴러라는 장르가 곧 영화가 말하려는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유괴와 연쇄살인은 주로 돈을 노린 범행인 경우가 많았고 따라서 자본주의적인 범죄로 알려졌는데 하지만 극단적인 개인에 의해 얼마든지 체제를 막론하고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 그러나 스탈린 소련처럼 체제 우월을 선전하기 위해 이를 감추려 하는 사회도 있다는 씁쓸한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그 복잡한 플롯과 장르적 장치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장르의 공식에 너무 천착하지 않고, 영화의 배경이 주는 부조리함에 시선을 맞춘다면 근사한 사회파 스릴러 한 편을 보게 될 것입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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