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양산 미래디자인융합센터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비틀즈, 앤디 워홀, 잭슨 폴록… 이들의 공통점은? 혁신적인 사고를 통해 인류가 자랑할 만한 유산을 남겼다는 것. 물론 맞다. 그런데 그보다 더 피부에 와 닿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창의력을 발휘한 공간이 다름 아닌 창고였다는 것이다.


창고에서 아이디어가 샘솟는다니, 혹시 그럴 듯하게 끼워 맞춘 이야기 아닐까? 여기 창고가 창의력의 산실이라고 주장하는 건축가가 있다. 그는 지난 5월 경남 양산에 창고 8개를 이어붙인 건물을 선보였다. 부산대 양산캠퍼스와 신도시 아파트 사이 연면적 6300㎡의 공간에 새로 지어진 이 건물은 한국디자인진흥원 산하 미래디자인융합센터의 현상 공모 당선작으로 3년간 공사 끝에 완공되자마자 건축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건물의 설계자는 40대 젊은 건축가들 중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는 김찬중 더시스템랩 대표(46). 미국 하버드대에서 건축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2006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 대표 건축가 선정, 그해 중국 베이징 국제 건축 비엔날레에서 ‘주목할 만한 아시아 젊은 건축가 6인’에 뽑히기도 했다. 최근 분당의 더시스템랩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공간과 창의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작은 느낌표 하나를 던져주는 건물을 만듭니다."


그는 자신의 건축의 특징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가 지금까지 설계한 작품은 마쉬멜로우를 닮은 강남 상업용 빌딩, 거대한 냉장고를 연상시키는 연희동 갤러리, 가우디의 ‘카사 밀라’를 떠오르게 하는 한남동 오피스 등 하나 같이 한 번 더 뒤돌아보게 하는 건물들이다. 한국 건축은 성냥갑처럼 단순하거나 혹은 다른 세상처럼 아주 튀거나 극단적인 경우가 많은데 그의 작품은 주변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정체가 궁금해지게 만든다.


"너무 확정적인 건물은 짓지 않으려 합니다. 외관만 보고도 이건 병원, 저건 학교, 이렇게 확신할 수 있는 건물이 많은 사회는 건조해지고 정형화되는데 이런 곳에서 창의성이 나올 수 없습니다."



양산 미래디자인융합센터



미래디자인융합센터도 마찬가지다. 창고 8개를 붙여놓은 것 같은 외관은 호기심을 자아낸다. 여느 딱딱한 관공서 건물들과 전혀 다르다. 그가 이 건물을 설계한 의도는 뭘까?


"역사적으로 창발적인 아이디어가 탄생한 공간은 대부분 창고였습니다. 이곳은 디자이너를 상대하는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곳이죠. 공무원들은 규칙과 규율이 있어서 창의적이기 쉽지 않은데 디자이너들과 만나려면 아무래도 유연한 사고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건물은 전면이 투명한 창으로 마감되어 있어 건물 밖에선 내부가 웅장해 보이고 건물 안에선 밖의 산과 하늘이 그대로 드러난다. 한 마디로 어디에 있더라도 탁 트인 공간감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층고가 높으면 창의력을 발휘하는데 좋고 층고가 낮으면 집중력이 필요한 일에 좋습니다. 그래서 디자인 회사나 광고 회사는 층고가 높고, 보석 세공이나 시계를 만드는 곳은 천정이 낮지요. 한국의 아파트들의 층고는 대부분 2.3m, 사무실의 층고는 2.4~2.7m 정도입니다. 하지만 창의적인 작업이 필요한 공간의 층고는 평균보다 높아야 합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더시스템랩의 사무실도 슈퍼마켓 2층의 창고를 개조해 만들었다. 창고에서 창의성이 샘솟는다는 그다운 발상이다.



더시스템랩 사무실



그는 층고를 비롯한 건축의 접근 방식이 공간의 용도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용도를 가진 곳이라도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성격까지 좌우한다는 것이다.


"공간은 사람을 바꿉니다. 동그란 집에선 사람이 동그래지고, 네모난 집에선 네모가 됩니다. 가령 미국의 교도소를 예로 들면, 어떤 교도소는 재소자의 재범률이 높은 반면 어떤 교도소는 낮았는데 그 원인이 공간에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파놉티콘(어디에서도 감시당하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건물 중앙의 감시타워) 구조로 감시하기 쉽게 설계된 건물의 재소자들은 스트레스를 받아 재범률이 올라갑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죠. 높은 직급의 사람들이 감시하기 쉽게 설계된 구조에선 직원들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물리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심리적인 제어는 불가능합니다."



그는 사무용 건물을 설계할 때 그곳에서 생활할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위안을 주기 위해 작은 배려를 한다고 했다.


"모든 층에 밖으로 통하는 공간을 꼭 만듭니다. 직장인들은 매일 하루 8시간 이상 사무실에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건물을 잘 지어도 그 안에 갇혀만 있으면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눈치 보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밖으로 통하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잠깐이라도 외부 공기를 쐬면 심리적으로 위로가 되고 업무 효율도 높아지니까요."



한남동 오피스



회사원을 배려하는 그의 이런 철학 덕분일까? 건축은 밤샘이 일쑤이고 아틀리에 같은 경우 일이 더 고되다고 알려져 있지만 더시스템랩은 직원들의 이직률이 낮은 것으로 유명하다.


"건축 일이 고되기 때문에 꼭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사가 커질수록 열정페이로 회사를 운영하면 안 됩니다. 직원들이 힘들게 일한 만큼 돈으로 보상해주고 또 남들과 다른 결과물에서 보람을 느끼도록 합니다."


돈으로 보상하는 리더라니. 어느 정도인지 이쯤 되면 호기심이 일지 않을 수 없다.


"대기업 연봉 수준보다 많이 주려 합니다. 보너스도 700~800%씩 지급하죠. 회사에 돈이 많아서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토가 있어요. 그해 번 건 그해 다 쓴다. 그러면 직원들도 위기의식을 갖고 열심히 일합니다."


회사를 설립한 지 이제 4년차에 접어들었지만 그동안 이직한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고 한다.



양산 미래디자인융합센터



회사를 둘러보다 보니 이름에 시스템이 들어가는 이유가 궁금했다. 왜 시스템일까?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싼 값에 더 멋진 건물을 짓고 싶은 건축주의 욕망과 예술을 하고 싶은 건축가의 욕망을 조화시키는 거죠."


그는 적은 비용으로 땅의 건폐율과 용적률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는 건축주의 욕망을 고려하면서도 거기에 제법 그럴 듯한 느낌표를 남기는 독창적인 건물을 지으려 한다. 자본주의적인 욕망과 예술가의 고집 사이에서 최적의 해답을 내놓기 위해 그는 더 많은 그림을 그리고 다양한 자재를 테스트한다. 그가 단열과 창을 한 번에 해결한 벽을 만들고,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하고, 플라스틱을 자재로 택하고, 자투리 공간을 최대한 남겨 발코니와 정원으로 만드는 것은 이런 과정의 일환이다.



한남동 오피스



그에게 어디서 이러한 아이디어를 얻는 지 물었다.


"저는 다른 산업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가령 창틀은 자동차와 항공기 산업에서 가져왔고, 냉난방 발전시설은 조선 산업에서 응용했죠. 다른 산업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10년 정도 후엔 건축의 트렌드가 되더군요."


그렇다면 그가 지금 보고 있는 트렌드는 뭘까? 10년 후 건축에선 뭐가 유행할까?


"지금은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Mass Customization)을 넘어 마이크로 커스터마이제이션(Micro Customization)의 시대입니다. 예전 사람들은 자신을 제품에 맞추었지만 이젠 제품을 자신에게 맞추고 있죠. 3D 프린터를 통한 자가 생산이 그런 흐름을 대변합니다. 이처럼 개인화는 더 철저히 진행될 겁니다."



양산 미래디자인융합센터



개인화된 건축은 어떻게 변할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는 계단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건물에서 계단의 높이와 폭은 비슷했습니다. 전 세계인의 평균 키인 160cm~180cm인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죠. 하지만 키가 190cm인 사람과 키가 140cm인 아이들이 이용하는 계단의 폭이 다 똑같은 것은 말이 안 되죠."


건축은 결국 사람을 위해 봉사해야 하고 그 사람의 개별적인 특성은 전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의 건축물들은 극단적이다. 복사해서 붙여 넣은 것 같은 미니멀리즘 양식의 성냥갑 아파트 형태거나 혹은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지나치게 독특하게 지어진 민폐 건물이거나.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활기를 띄려면 양극단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균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건축가 김찬중이 꿈꾸는 건축이리라.


마지막으로 그에게 건축가로서 목표를 물었다.


"무표정한 도시인들이 제가 지은 건물을 보고 잠깐이라도 즐거워했으면 좋겠습니다. 반려견을 보살펴주듯 쓰다듬어 주고 가는 그런 건물을 계속 짓고 싶습니다."




김찬중 프로필

고려대 건축공학과, 스위스 연방공대, 미국 하버드대 건축학 석사

The System Lab 소장, 경희대 건축학과 객원교수

대표작: 강남 상업용 빌딩, 연희동 갤러리, KH바텍 사옥, 한남동 오피스, 국립 현대미술관 Cubric, 양산 미래디자인융합센터



(이 글은 매일경제신문 2015년 7월 24일자 C2면에 실린 기사의 원문입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