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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정치부 기자들과 대화를 하는데
몇몇 의원을 거론하면서 "사람 참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순진하게 생긴 그 기자는 한나라당의 한 여자 국회의원이 참 마음에 들었는지
"갈때마다 정말 잘해준다"고 칭찬 일색이다.
그 옆에 있던 다른 기자도 "얼굴도 참 예쁘다"면서 거들어서 맞장구를 친다.

그 여자의원과 일면식도 없고 오히려 TV화면에서 보면
구역질이 날 정도로 싫어하는 나는 결국 그들의 대화에 끼지 못하고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 여자가 발의한 반서민적인 법안이나 친일 관련 행적이 떠올랐지만
그렇게 정색을 하고 딱딱하게 굴 대화 자리가 아니었다.

또 온갖 악덕비리를 일삼는 기업의 예도 있다.
이리저리 법망을 빠져나가 항상 구설수에 오르는 재벌기업.
하지만 그 기업의 임원을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사람 좋다"는 칭찬을 한다.
심지어 평소에 그 기업을 비난해왔던 사람들마저
너무 친절하고 예의바른 그 임원 때문에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비슷한 유형의 또한가지 예를 들자면 아마 교회일 것이다.
극도로 보수적인 목사와 그 목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며칠 전에 교회에서 결혼식을 한 친구 때문에 그 교인들과 함께
교회버스를 타게 되었는데
항상 밝게 웃고 사람들과 친절하게 대화하는 목사와 권사의 모습이
정말 다정한 이웃처럼 보였다.
또 그 교회로 가는 한적한 가로수 길이나 궁전같은 교회가
어찌나 풍요롭게 보이던지
마치 어느 부유한 유럽 작은 마을의 여유로운 풍경 같았다.


그런가 하면 다른 예도 있다.
방송작가를 하는 한 친구에게 들었던 얘긴데
환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환경 시민단체를 섭외했단다.
자신은 환경운동을 하는 시민단체를 평소에 좋아했었기 때문에
애정을 가지고 접근했는데 막상 그 단체의 직원이 너무나 퉁명스럽고
또 지나치게 자존심을 세워가며 대해서 불쾌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난 환경운동하는 고귀한 사람인데 넌 뭐냐" 이런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그 사건 이후로 자신은 환경운동하는 사람들에게는 왠지 거부감이 든다고 했다.

내가 직접 겪은 사례도 있다.
진보적인 한 신문의 인터넷 기자였는데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서는
내가 진행하던 한 프로젝트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나도 그 신문의 애독자였기 때문에 반가운 마음에
친절하게 하나씩 답변을 해주었는데
다음날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를 보니 정말 황당했다.
내가 한 말을 완전히 왜곡해서 싣은 것이다.

그 기사 이후로 나는 그 프로젝트를 완전히 접을 수밖에 없었고
나에게 투자해준 사람에게도 마음의 빚을 지게 됐는데
한동안 그 기자의 이름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를 않았었다.


이처럼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

한 가지 측면을 가지고 파악하다가는 함정에 빠지고 만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 보이는 친절함과 미소에 빠져서
비도덕적 집단과 그 집단에 속한 사람을 혼동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또 반대로 도덕적 집단의 비도덕적인 개인에게 당한 불만 때문에
그 집단의 도덕성 자체를 매도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러한 아이러니는 결국
가진자와 못가진자 사이의 구분, 즉 힘의 불균형에서 나오는 것 같다.
어느 역사에서도 도덕적인 집단이 더 힘이 센 적은 없었던 것 같으니까.
항상 비도덕적인 집단은 그 뻔뻔함을 감추기 위해
그 집단의 구성원들을 교육시키고 억지 미소를 짓게 했으니까.

반면 도덕적인 집단은 항상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게 되고
조금이라도 도덕성에 흠집이 생길 일이 발생하면
엄청나게 뭇매를 맞고 쫓겨나야 했다.


결국 사람이라는 것은 참 단순해서
당장 자기에게 잘해줄 것 같은 사람에게 더 끌리는데
지금처럼 정권이 '중도서민'이니 하는 표어로
교묘하게 자신을 위장하면 할수록
개인과 집단의 구분은 더욱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항상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난 그 사건 이후로 물론 개인적인 타격은 컸지만
아직도 그 신문의 애독자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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