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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두 영국 영화배우가 잡지사 ‘옵저버’의 의뢰를 받고 6일간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낭만파 시인 바이런과 셸리가 살았던 흔적과 이탈리아 맛집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50세 동갑내기 친구이자 라이벌인 롭 브라이든과 스티브 쿠건은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에서 토스카나, 로마, 캄파니아, 카프리 섬, 폼페이, 아말피 해안 등을 두루 돌아보며 대화를 나누고,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진다.


4일 개봉한 영화 <트립 투 이탈리아>는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리얼 예능’ 같은 영화다. 영국 최고의 배우이자 코미디언인 롭과 스티브는 자기 자신으로 출연해 실제인지 대본인지 모를 대화를 나눈다. 성대모사의 달인인 롭 브라이든이 알 파치노, 마이클 케인, 크리스찬 베일, 톰 하디, 숀 코너리 등을 흉내내며 영화 이야기로 대화를 주도하면 스티브 쿠건은 이를 구박하면서도 재치있게 받아준다. 냄비에 구운 토끼요리, 문어 그릴, 다양한 파스타 등 이탈리아 고급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만드는 장면이 중간중간 삽입돼 입맛을 돋구고, 전망 좋은 호텔 방과 이탈리아 남부 해안의 경치는 당장이라도 극장을 나와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든다.


다큐멘터리인지 픽션인지 모를 이런 이야기를 만든 감독은 영국인 마이클 윈터버텀이다.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오가며 영화를 찍어왔는데 2006년엔 다큐멘터리에 드라마를 결합한 <관타나모로 가는 길>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뤄왔던 그의 이전 영화들에 비해 <트립 투 이탈리아>는 가볍고 경쾌하다.



<트립 투 이탈리아>는 마이클 윈터버텀 감독이 2010년 만든 <더 트립>의 속편이다. <더 트립>에서도 롭과 스티브는 ‘옵저버'의 청탁으로 영국 북부에서 시인 워즈워스와 콜리지의 발자취를 쫓아 식도락 여행을 떠났었다. 전편에는 조금 덜 성공한 롭이 영국 아카데미상을 수차례 받은 스티브를 질투하는 뉘앙스가 있던 데 반해 이번 속편에서 롭은 스티브가 지나치게 예민하게 군다며 되레 혀를 내두른다.


이처럼 영화는 오랜 두 친구가 장난기어린 농담을 주고받는 가운데 언뜻언뜻 비치는 삶의 유한함, 과거의 성공이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데서 오는 우울함을 숨기지 않는다. 영화 속 이탈리아의 경치가 환상적이기에 여행을 떠난 중년 남자들의 주름살이 더 도드라진다. "어떤 나이가 되면 모든 게 우울해지는 것 같지 않아?" 극중 롭의 대사다. 각자 가정이 있는 그들은 여행지의 흥분에 들떠 여자를 만나지만 이내 현실로 돌아와 고민에 빠진다. 마냥 젊지만은 않은 그들에게 여행은 다시 오기 힘든 일탈이면서 동시에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감독은 50페이지짜리 짧은 시나리오를 들고 배우들과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영화를 만들었다. 애초 이 영화는 BBC의 6부작 TV시리즈로 기획된 것으로 영화는 TV 방영분을 108분으로 압축했다. 한국의 ‘리얼 예능’ <꽃보다 할배>를 영화판으로 압축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겠다.


이탈리아 영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다면 영화를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에는 시칠리아 섬을 배경으로 한 마피아들의 연대기인 <대부>를 비롯해 전편에 이어 놀림거리로 등장한 마이클 케인이 출연한 <다크 나이트 라이즈>, 휴 그랜트의 <노팅 힐>, 그레고리 펙의 <로마의 휴일>,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신문기자로 등장한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 등이 주요 대화 소재로 등장하고, 이탈리아 대표 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정사>에 나온 모터보트도 등장한다.


또 영화는 장뤽 고다르의 <경멸> 테마곡을 변주해 계속해서 들려주는데 카프리 섬에서 브리짓 바르도가 자동차 사고로 죽는 장면으로 끝나는 이 영화는 진정한 인간관계의 부재 속 실존적 불안에 관한 영화라는 점에서 ‘트립 투 이탈리아’와 묘한 공통점이 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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