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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끝까지 간다>는 2014년 한국영화의 수확이었다. 제대로 된 장르영화가 드물었던 한국영화에 모처럼 등장한 장르 공식과 이야기의 힘만으로 밀어붙인 웰메이드 영화였다.


그런데 이 영화를 만든 김성훈 감독은 실패 극복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끝까지 간다>를 만들기 전 그의 이력은 2006년작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이하 <애정결핍>)이 전부였다. 그는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던 영화를 하고 싶어 28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충무로 연출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연출부와 조감독을 거쳐 초고속으로 입봉(데뷔)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그의 데뷔작 <애정결핍>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섹시 코미디로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참패했다.


지금까지 충무로에서 데뷔작으로 실패한 영화감독이 두 번째 영화를 만들 확률은 손에 꼽기도 힘들 정도로 적었다. 대부분 투자자를 만나지 못해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그런데 김성훈 감독은 무려 8년 동안 칼을 갈아 두번째 영화를 만들었고 기어이 홈런을 쳤다.


그가 재기에 성공한 비결이 궁금했다. 어쩌면 그의 사례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이 땅의 많은 이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차기작 시나리오 집필에 한창인 김 감독을 최근 상암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 데뷔작인 <애정결핍>을 기억한다. 그때는 이 영화의 감독이 <끝까지 간다>를 만들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데뷔작은 감독이 원한 대로 만든 영화였나?

"그게... 못나긴 했지만 내 애정이 담긴 작품이다.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걸 어쩌겠나. 처음에 난 영화가 왜 실패했는지 몰랐다. 재미있는데 왜 남들이 몰라줄까 이렇게 자만했다. 그러다가 6개월 후에 영화를 다시 봤는데 고개를 들기 힘들 정도로 부끄럽더라."


- 어떤 점이 부끄러웠나?

"그때 내가 만든 건 가짜였다.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라 내가 이만큼 알고 있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 만든 영화였다. '아마 이럴 거야'라고 막연하게 상상해 만든 감정들의 나열이었다. 내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는 감정을 관객들이 알아주길 바라고 있더라. 내 민낯을 보면서 창피하고 괴로웠다."


지나고 나면 보이지만 막상 그 상황에선 안 보이는 게 있다. 애착이 강할수록 자신만의 틀에 갇혀서 큰 그림을 보기 힘들다. 1년 간 준비한 첫 작품이 극장에 걸릴 때까지만해도 김성훈 감독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에게 쉽게 성공을 허락하지 않았다.



- <끝까지 간다>를 만들기까지 8년간 어떻게 지냈나? 가정도 있어서 경제적으로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8살, 5살 난 아이가 있다. 힘들었다. 이 길이 맞나? 이 길로 계속 가도 되나? 아이들은 커가고 통장 잔고는 비어가는데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억울했다. 영화 한 편으로 사라지는 게 분했다. 우연히 [거장들의 노트를 훔치다]라는 책을 봤는데 그 유명한 감독들도 초기엔 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더라. 두번째 기회가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지만 만약 온다면 그땐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자,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아내와 아이들에겐 미안하지만 시나리오만 썼다. 다른 일은 생각도 안 했다."


- 그래도 경제적인 부분은 중요한 문제다. 다들 그것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않나?

"다행히 내가 쓴 시나리오를 사람들이 좋아했다. <끝까지 간다> 시나리오를 영화진흥위원회 기획개발사업에 출품했는데 4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작으로 선정됐다. 거기서 수천만원의 기획개발비를 받았고 자신감도 얻었다."


- 시나리오를 어떻게 썼나? 평소 작업방식을 말해달라.

"난 엉덩이가 무거운 편이다. 돌아다니는 것보다 한 자리에 앉아 글을 쓰는 게 더 적성에 맞다. 하루 9시간씩 작업실에서 시나리오를 쓰고 자료조사는 인터넷 서핑으로 한다. 매일 아침 1시간씩 신문을 보고 거기서 영감을 얻는다. 또 수시로 뉴스 사이트에 들어가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파악한다."



- 어떤 사건이 영화의 모티프가 됐나?

"신문에서 본 끔찍한 사건 중에 이런 게 있었다. 폐차장에서 차를 운반하는데 운전석에 시신이 있던 거다. 죽은 채로 있던 것인지 혹은 거기서 죽은 것인지는 기사에 나와 있지 않아서 모르지만 그전까지 아무도 몰랐다니 황당하지 않나? 이 사건을 <끝까지 간다>의 한 에피소드로 집어넣었다. 비록 최종 편집 과정에서 삭제되긴 했지만."


- 아무래도 사건 사고 기사를 많이 볼 것 같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문화면, 정치면, 국제면 다양하게 본다. 세상엔 상상도 못한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일이 일어나는 곳이 현실 아닌가. 그 속에 캐릭터를 집어넣으면 영화가 된다."


드라마틱한 현실을 모티프로 만든 영화 <끝까지 간다>는 지난해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고 김성훈 감독을 비롯한 주연배우들은 레드카펫을 밟았다. 국내에서도 평론가들의 호평이 이어졌고 관객들도 호응해 340만 명이 극장을 찾았다. 제작비 50억원에 손익분기점이 100만 명이었으니 제법 이윤을 남긴 셈이다. 김 감독은 이 영화로 대종상 감독상, 청룡영화상 각본상을 수상했다.



- 영화를 만들 때 원칙이 있나?

"두 가지다. 이건 내가 연출부에게 신신당부했던 것이기도 하다. 촬영하다가 내가 이걸 어기면 나를 때려달라고까지 했다. 첫째,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여야 할 것. 나도 잘 모르면서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스스로를 속이는 짓이다. 둘째, '이만하면 괜찮아. 대세에 지장 없어'라는 말. 우리 팀에게 이 말은 금기어였다. 항상 최대한을 끌어내려고 했다."


- 8년을 버틴 힘이 궁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작을 만든 비결은?

"첫 영화가 실패한 뒤 내게 남은 건 열등감과 자격지심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창작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남한테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직 서먹하고 부끄러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든 이야기를 사람들이 좋아하고 웃어줄 때 보람을 느낀다. 언젠가 후배들에게 밀려 영화계를 떠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계속 한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을 즐기고 싶다."


- 차기작은 어떤 이야기인가? 역시 스릴러인가?

"아니다. 재난 속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식으로 풀진 아직 고민 중이다."


- 언제쯤 볼 수 있을까?

"글쎄. 영화라는 게 워낙 변수가 많아서. 두번째 작품을 힘들게 하다 보니 이젠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다만 이번엔 8년씩 안 걸렸으면 좋겠다. 하하."


김 감독의 웃음 속에는 한 번 실패해본 자의 여유가 묻어 있었다. 지금 그에겐 연출 의뢰가 밀려들지만 그는 <끝까지 간다>를 만들 때의 절박함을 잊지 않고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에 대해 물었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메시지가 재미를 넘어서면 안 된다는 게 내 원칙이다. 재미있게 즐기다가 서서히 본질을 깨닫는 영화로 관객과 소통하고 싶다."


(매일경제에도 실렸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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