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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끊는다고 끊어지디? 평생 참는 거지. 결혼했다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끊어지냐고. 그냥 참는거지.”


이 연극, 솔직하다. 제목부터 멜로드라마다. 남녀가 나오고 삼각관계가 나오고 엇갈린 사랑이 나온다. 우연으로 비롯돼 필연으로 이어지다가 운명으로 끝맺는다.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알고 보면 사건 변화에 개의치 않고 인물들의 사연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애초 멜로드라마란 그런 것이니까. 스토리는 어떻게 전개될 지 모두들 안다. 안타깝지 않으면 비극이 아니다. 이야기에 얼마나 몰입하게 만드는가, 인물이 얼마나 구체적인가에 객석의 반응이 나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연극 [멜로드라마]는 1시간 50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설득해낸다. 다섯 명의 극중 인물이 느끼는 감정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객석엔 희로애락이 교차한다. 단순하고 솔직한 인물들이 자신의 감정에 따라 행동하고 날것 그대로의 행동에 닫혔던 관객의 마음은 눈녹듯 열린다. 마지막 장면의 반전이 개연성 면에서 다소 뜬금없다고 생각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지침으로 ‘행동의 일치’를 강조했다. 인물들의 행동은 일관된 방향으로 흘러가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멜로드라마에서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와 같은 극단적 반전이 없었다면 다섯 명의 캐릭터는 끝까지 평행선을 달렸을 것이다.



“나야말로 창문만 열어놔도 울리는 윈드벨 같은 사람이야. 성당 갈 때마다 빌었어. 바람아 불지 마라. 제발 나를 울리지 마라. 근데 당신이 꾹 참고 사는 나를 흔들었어.”


이야기는 단순하다. 권태기에 빠진 10년차 부부가 있다. 남자는 능력 없는 직장인이고 여자는 철두철미한 전문직 완벽녀다. 다른 한 편엔 남매가 있다. 누나는 어릴적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지체장애를 안고 있고 드라마 작가인 남동생은 심장이 약해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남동생에겐 약혼녀가 있는데 그녀는 그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 같은 여자다. 부부와 남매는 각각 엇갈린 사랑에 빠진다. 연극은 이 과정을 담담하게 따라갔다가 점점 격정적으로 끌어올린다.


다섯 명이 느끼는 사랑은 저마다 종류가 다르다. 완벽녀에게 사랑은 일탈, 정신지체 누나에게 사랑은 동경이고, 중년남에게 사랑은 연민, 시한부 남동생에게 사랑은 마지막 욕망이며, 남동생만 바라보는 약혼녀에게 사랑은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행위다. 극은 어떤 종류의 사랑도 하찮게 보지 않는다. 불륜이 소재지만 악한 자는 없다. 다만 숨기지 않고 감정에 솔직할 뿐이다. 그래서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없다고 말한다. 극은 시종일관 진지하다가도 때론 코믹한 요소를 집어넣어 템포를 유지한다.


[멜로드라마]는 뮤지컬 스타연출가 장유정의 연극 데뷔작으로 2007년 초연, 2008년 재연된 작품을 재해석해 6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린 것이다. 당시보다 무대 연출이 더 시각적으로 변해 마치 뮤지컬 무대를 보는 듯하고 시대에 맞게 몇몇 장면들이 추가됐다. 초연과 재연 때 장영남과 김성령이 연기했던 완벽녀 역할을 이번엔 배해선과 홍은희가 맡았다. 박원상, 최대훈, 조강현, 박성훈, 전경수, 김나미, 박민정 등이 출연한다.


공연은 2월 15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계속된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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