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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은 영화계에도 양극화가 심해진 해였다. 1000만 명을 넘은 영화가 세 편이나 탄생한 반면 100만 명도 채우지 못하고 사라진 상업영화도 많았다. 예술영화 시장에서도 ‘아트버스터’ 신조어가 만들어지며 양극화가 재현됐다. 관객들은 사람들이 많이 보는 영화를 찾아다녔고 입소문을 타지 못한 영화는 개봉관을 잡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대중의 평가가 늘 옳은 것은 아니다. 개봉 당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대로 묻히기엔 아쉬운 영화들이 있다. 그중 다섯 편을 골라봤다.




1. 10분 – ‘미생’의 시니컬한 버전


이용승 감독의 데뷔작인 <10분>은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미생>의 좀 더 현실적인 버전이다. 6개월 인턴사원으로 입사한 호찬은 정규직으로 채용시켜 주겠다는 상사의 말을 믿고 방송사 PD의 꿈을 포기하면서까지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어느 날 낙하산이 내려오고 정규직의 꿈은 물거품이 된다.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가 바둑을 접고 사회로 나온 순수하고 성실한 '요즘 보기 드문 청년'이었다면 <10분>의 호찬은 적절한 스펙을 갖추고 적당히 영악하기도 한 우리 주위의 평범한 인턴사원이다. <미생>의 정 과장이 이 영화에서도 비호감 선임으로 출연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상사 등 영화 속 회사 역시 현실 그 자체다. 올 봄 개봉 당시 3천여 명의 소수정예 관객만 봤지만, <미생> <카트> 등 비정규직의 문제가 대중의 호응을 얻는 요즘 이 영화에 공감할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영화 제목인 ‘10분’은 인생을 결정해야 할 짧은 순간을 말한다.



2. 갈증 – 일본판 ‘올드보이’


일본 영화계엔 감각적인 영화를 만드는 두 명의 50대 감독이 있다. 소노 시온과 나가시마 테츠야 감독이다. 시인 출신인 소노 시온은 매년 영화를 발표하며 다작을 하는 반면,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인 나가시마 테츠야는 꼼꼼하게 과작을 한다. 그만큼 스타일도 성격도 다른 두 감독이지만 작품마다 일본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오기 때문에 일본의 내로라 하는 배우들이 앞 다퉈 출연한다. 두 사람의 최근작이 올해 한국에서 나란히 개봉했다. 그중 <갈증>은 나가시마 테츠야 감독이 4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일본의 안성기’라 불리는 국민배우 야쿠쇼 코지가 파격적인 연기변신을 했다. 실종된 딸을 찾아다니던 폭력적인 전직 형사는 딸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일 수도 있음을 깨닫고 고통스러워한다. 아버지와 딸의 소통 부재와 선과 악으로 재단할 수 없는 인간의 야누스적인 면이 <올드보이>에 맞먹는 파격으로 치닫는데 영화가 끝나면 혼이 쏙 빠진 것처럼 얼얼해진다.



3. 프랭크 – 현대판 모차르트와 살리에르


음악을 하고 싶지만 재능이 없는 빨간 머리 청년 존은 어느 날 산속에서 특이한 밴드를 만난다. 그 팀의 리더 프랭크는 기존의 모든 음악을 거부하고 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악기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며 살아가는 남자다. 프랭크는 항상 가면을 쓰고 다니기 때문에 존은커녕 팀원들조차 한 번도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잠잘 때도 샤워할 때도 그는 가면을 벗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름은 ‘솔직하다’는 뜻의 프랭크다. 때론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 그의 가면이 현대인의 표리부동한 얼굴보다 더 솔직하게 보이기도 한다. 존은 프랭크의 음악적 재능에 반해 키보드 주자로 팀에 합류한다. 재능이 없다며 그를 거부하던 팀원들은 그가 밀린 집세를 해결해주자 마지못해 팀원으로 받아들인다. 존은 프랭크가 만든 음악을 유튜브에 올려 유명해지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산 속에서 음악만 하던 프랭크가 도시로 나오자 마치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숨 쉬지 못하고 메말라가고 팀은 큰 위기에 봉착하고 만다. 모차르트를 질투한 살리에르는 그를 궁지로 몰아넣으려다 오히려 더 비참해졌다. 마찬가지로 프랭크의 몰락으로 존이 얻은 것은 결국 빈 껍데기 가면 뿐이었다. 시종일관 가면을 쓰고 나오던 프랭크 역의 마이클 파스벤더는 마지막 장면에서 드디어 맨얼굴을 드러내는데 단 한 장면만으로도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4. 행복한 사전 – 마지막 아날로그를 위하여


사전을 만드는 일도 영화가 되냐고? 된다! 그것도 아주 근사한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다. 최근 일본은 과거를 잊고 우경화로 치닫고 있지만 <행복한 사전> 속 일본인은 과거를 잊지 않고 계승하는데서 인생의 보람을 찾는 사람들이다. 그것도 회사라는 무한경쟁의 시스템 안에서 전통이 이어지고 대를 이은 장인정신이 발휘된다. 이제 막 입사한 청년 마지메는 사전편집부에 배치 받고 단어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오른쪽’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왼쪽의 반대쪽? 책의 홀수 페이지가 있는 곳? 지구에서 해가 뜨는 방향?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단어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데 단어의 정확한 용례를 안다는 것은 타인과 제대로 소통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지메의 팀이 사전을 완성하는데 걸린 기간은 무려 15년. 아무도 종이 사전을 사지 않는 디지털 시대지만 글자마다 정성을 다하는 우직함이 잔잔한 감동으로 남는다. 영화 속에서 마지메는 결국 오른쪽을 어떻게 정의했을까? 숫자 10을 써놓고 0이 있는 쪽이라고 했다. 의외로 너무 간단하다고? 그러나 이런 명료함이 바로 디지털이 할 수 없는 아날로그의 힘이다.



5. 한공주 – 피할 수 없는 진실의 힘


마지막으로 꼽은 작품은 CJ가 배급한 독립영화로 개봉 당시 제작비 대비 꽤 많은 관객을 모으긴 했지만 더 많은 사람이 봤으면 하는 한국영화다. 올해 한국영화 중 단 한 편만 꼽으라면 이 영화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수진 감독의 데뷔작인 <한공주>는 끔찍한 일을 당한 한 소녀에 대한 이야기다. 이 영화 속엔 집단 이기주의, 큰 권력 앞엔 꼬리 내리면서 못 가진 자를 더 괴롭히는 작은 권력, 진실에 눈감는 이웃 등 우리 사회의 모순이 모두 담겨 있다. 피하고 싶었지만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진실이 드러나는 마지막 장면을 마주하게 되면 아마도 제대로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먹먹해질 것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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