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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 시온 감독의 영화를 볼 사람들은 마음을 단단히 먹는 게 좋다. 무방비상태로 보다가는 수위를 높여가는 강도 높은 장면들에 충격을 받을 지도 모른다.


소노 시온의 영화에는 빨간색이 많다.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인식한 색깔이 녹색이고 그 다음 파랑, 마지막으로 빨강이라고 하는데, 차례대로 자연, 하늘과 바다, 꽃과 피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색깔이다. 이런 진화의 순서로 보자면 소노 시온의 영화에 빨간색인 피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집착을 드러내는 것이다. 녹색과 파랑이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라면 빨간색은 비로소 인간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소노 시온은 피를 뒤집어써가며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파고 들어간다. 깊게 파내려간 그 속에서 끄집어낸 질문은 고통스럽지만 폐부를 찌른다.


또 소노 시온의 영화는 한 장면도 예상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숨겨둔 광기를 드러낸 남자는 자신이 죽인 남자의 부인과 팀을 이룰 것 같지만 결국 그녀마저 살해하고, 죽기 전 화해할 것 같았던 딸은 끝까지 아버지를 이해하지 않는다. 일부러 기존 다른 영화들의 공식을 모조리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긴박감 있게 잘 만들어졌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리드미컬하게 끊어가는 편집이 경쾌하고 의미심장해 보인다. 주요 등장인물은 다섯 명이다. 작은 열대어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공 스야모토 노부유키와 새 부인, 그리고 사이가 안 좋은 딸, 아마존 골드라는 대형 열대어 가게의 사장인 무라타와 그 부인이다. 두 가족이 얽히면서 노부유키는 끔찍한 범죄의 비자발적 공범이 되고 결국 분노가 폭발한다.


다섯 명의 역할을 한 배우들은 소노 시온 사단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소노 시온 감독과 작업을 함께 해왔다. 안경을 끼고 나오다가 안경을 벗는 순간 숨겨놓은 본성을 드러내는 노부유키 역할은 <사무라이 픽션> <황혼의 사무라이> <러브 익스포져> <두더지> 등에 출연했던 후키코시 미츠루가 맡았고, 영화 역사상 가장 말 많고 사교성 좋은 연쇄살인마인 무라타 역으로는 <주온> <박치기! 러브 앤 피스> <골든 슬럼버> <두더지>의 덴덴이 출연해 그해 일본 영화상의 남우조연상을 휩쓸었다. 무라타의 부인 아이코 역으로는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 <두더지>에 출연했던 쿠로사와 아스카, 노부유키의 새 아내 타에코 역은 <두더지> <희망의 나라>의 카구라자카 메구미, 노부유키의 반항기 어린 딸 미츠코 역엔 <희망의 나라>의 카지와라 히카리가 출연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영화의 배경이 된 실제 사건은 1993년 일본 사이타마 애견가 연쇄 살인 사건이다. 영화는 잔혹한 범인 부부의 실화에 가상의 가족 이야기를 집어넣었다. 사이타마현 쿠마가야시에서 아프리카 케네루라는 애견샵을 운영하던 부부는 일본 경제의 버블이 붕괴된 후 경영 악화로 고민이 많았다. 이종 강아지 짝짓기로 돈을 벌던 이들은 환불을 요구하는 고객과 언쟁을 벌이다가 그를 개 도살용 질산 약품으로 독살한다. 시체는 영화에서처럼 잘게 잘라서 산, 강, 목욕탕 등에 버려 이 사건은 '시체 없는 사건'으로 불렸다. 시체를 처리한 장소는 가게 임원의 산 속 별장이었다. 영화에서 58명을 죽였다고 한 것와 달리 이들이 죽인 사람은 4명이었는데 실종자 3명이 있는 것으로 봐서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부부는 1995년 1월에 체포됐고 2001년 사형이 선고됐다. 물증이 거의 없어 혐의 입증이 힘들었는데 가게 임원의 증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실화와 별개로 소노 시온 감독이 허구로 집어넣은 설정을 보고 있으면 이 영화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첫째, 행복한 가정을 꿈꾸지만 비사교적이고 주눅 들어 있는 노부유키와 매사 자신감 넘치고 언변 좋지만 알고 보면 잔혹한 연쇄살인마인 무라타를 대비시켰다. 노부유키를 공범으로 만들려는 무라타는 두려워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넌 한 번도 네 발로 스스로 일어서 본 적 없지? 난 비록 나쁜 짓을 했지만 매사 당당하고 거리낄 게 없어." 평범해 보이는 가장을 훈계하는 연쇄살인마의 말은 적반하장이지만 살아지는대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둘째, 무라타 부인과 부적절한 관계 맺기를 강요당한 노부유키는 그 순간 돌변해 무라타를 죽이고 자신이 새로운 무라타라고 말한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부인과 딸에게 폭력을 휘두르더니 "인생은 고통이야"라고 말하며 자결한다. 꾹꾹 눌려 있던 본성이 폭발하는 순간 그는 해방된 듯 보인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고통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의 알레고리에 갇힌 셈인데 영화는 직설적으로 이것이 인생이라고 말한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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