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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 <명량> <조선명탐정> <신세계> <관상>의 공통점은?


속편이 만들어졌거나 혹은 곧 만들어질 한국영화들이라는 것. <여고괴담> <공공의 적> 이후 한동안 주춤하던 한국영화의 속편 제작이 최근 부쩍 늘고 있다. 애초 싸이더스에서 4부작으로 기획한 <타짜>는 두 번째 편이 극장에서 상영중이고, 김명민, 오달수 콤비가 한국판 <셜록 홈즈>를 꿈꾸는 <조선명탐정: 놉의 딸>은 촬영에 한창이며, <신세계>는 6년 전 이야기를 담은 프리퀄을 준비중이다. 또 <명량>은 김한민 감독은 한산, 노량해전을 3부작으로 만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동안 한국영화의 속편은 코미디나 공포영화가 대부분이었다. <투캅스> <조폭마누라> <두사부일체> <고사> 등 대개 전편의 컨셉트를 그대로 가져와 배우와 소재만 바꿔 손쉽게 만든 영화들이었다. 전편의 흥행에 기대 억지로 끼워맞춘 경우도 많아 '제목 장사'를 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속편이 졸속으로 만들어지다보니 관객들도 점점 한국영화의 속편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조폭 코미디의 붐을 타고 5편까지 만들어진 <가문의 영광>의 경우 관객 수가 점점 줄어들어 5편은 관객 100만명을 가까스로 넘기며 시리즈의 한계를 보여줬다.


외면받던 속편이 달라졌어요


한국영화 속편이 달라지기 시작한 계기는 작년 11월 개봉한 <친구 2>가 의외의 흥행 성공을 기록한 이후부터다. 2001년 <친구>가 흥행 신기록을 수립한 뒤 무려 12년 만에 제작된 <친구 2>는 297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곽경택 감독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줬다. 전편에 비하면 흥행 성적이 엄청난 것은 아니었지만 코미디나 공포영화가 아니어도 속편이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친구 2>의 성공비결은 <친구>와 전혀 다른 스토리로 차별화했다는 것이다. 등장인물과 시대배경이 달라 새로운 영화처럼 보이면서도 곳곳에 <친구>의 아우라가 있어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관객은 전편의 영광에 기대지 않은 전략을 참신하게 받아들였다.


추석 연휴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는 <타짜 - 신의 손> 역시 마찬가지다. <친구 2>처럼 전편의 틈새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었다. 배우 역시 새롭게 발굴했다. <친구 2>의 김우빈, <타짜 - 신의 손>의 최승현과 신세경은 뉴페이스로 속편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전작에 출연했던 배우들은 예전 영화를 추억하는 기존 관객을, 뉴페이스는 전편을 보지 못한 새로운 관객을 겨냥한 포석이다.


<타짜>는 앞으로 제작될 3편과 4편에서도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새 감독과 스태프, 배우들을 기용할 것이라고 한다. <타짜 - 신의 손>의 이안나 PD는 "할리우드의 DC코믹스나 마블코믹스가 '그래픽 노블'을 시리즈 영화로 만든 것을 벤치마킹해 영화마다 전혀 다른 느낌의 도박 이야기를 선보이는 전략"이라고 밝혔다. 어쩌면 나중엔 김고니와 함대길, 도일출, 장태영 등 전설의 타짜들이 한데 뭉친 '타짜 어벤져스'가 나올 지도 모를 일이다.


더 정교해진 프랜차이즈 속편


박훈정 감독이 준비중인 <신세계>의 속편은 6년 전 이야기를 다루는 프리퀄이다. 이정재, 최민식, 황정민이 그대로 등장해 정청(황정민)이 범죄조직 '골드문'의 2인자가 되는 과정을 그린다. 감독의 목표는 <대부> 3부작처럼 긴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담는 것이라고 하는데 관건은 <신세계>를 보지 않은 관객을 얼마나 공략할 수 있느냐다.


<친구>, <타짜>, <신세계>의 속편이 기존 이야기를 확장해 새로운 서사를 발굴했다면,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의 속편 <조선명탐정: 놉의 딸>은 전형적인 캐릭터 시리즈로 기획됐다. <공공의 적>이 형사 강철중으로 시도했던 캐릭터 시리즈를 좀 더 유머러스하게 접근한 것이다. 김명민, 오달수가 계속해서 조선시대 탐정과 개장수로 등장하는데 제작진은 한국판 <셜록 홈즈> 혹은 <인디아나 존스>나 <007> 시리즈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 여주인공으로는 한지민 대신 이연희가 합류하며 내년 2월 개봉 예정이다.


캐릭터와 이야기는 전혀 다르지만 소재의 유사성으로 속편 역할을 하는 기획도 있다. <관상>을 제작한 주피터필름의 주필호 대표는 <궁합> <명당>으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역학 3부작'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는 삼성, 현대차 등 대기업 인사팀을 무대로 현대판 <관상>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내비치기도 했는데 과연 어떤 영화가 탄생할지 지켜볼 일이다.


이밖에 강우석 감독의 <두 포졸>은 <투 캅스>의 설정을 조선시대로 옮겨 놓은 영화로 설경구와 지창욱이 각각 베테랑과 신참 포졸로 출연하고, 심형래 감독은 우여곡절 끝에 <디워>의 속편 <디워: 미스테리즈 오브 더 드래곤>을 제작할 100억 원의 예산을 확보해 재기를 노리고 있다. <괴물>의 속편 <괴물 2>는 3D로 완성하기 위해 계속해서 테스트 영상을 작업하고 있고, 2009년 <여고괴담 5> 이후 명맥이 끊긴 <여고괴담>의 여섯 번째 시리즈도 준비중이다.


이처럼 한국영화 속편 제작은 점점 늘고 있고 기획은 정교해지고 있다. 최근 한국영화 블록버스터의 경우 기획단계부터 속편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지는 경우도 많다. <베를린> <용의자> <명량> 등은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영화처럼 후반부에 아예 속편을 암시하기도 했다. <베를린>은 표종성(하정우)이 블라디보스토크행 티켓을 끊으며 새로운 사건을 기대하게 했고, <용의자>는 지동철(공유)이 중국에서 인신매매범을 맞딱뜨린 상황에서 마무리해 여운을 남겼으며, <명량>은 거북선이 등장하며 한산대첩을 예고했다.


할리우드 닮아가는 충무로


최근 한국영화계에 불고 있는 속편 제작 붐은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그다지 낯선 풍경은 아니다. 할리우드는 몇 년 전부터 프리퀄, 리부트, 스핀오프 등 다양한 방식으로 비슷한 콘텐츠를 재생산하면서 영화를 프랜차이즈화하고 있다. "원작 능가하는 속편 없다"는 말은 할리우드에선 옛말이 된지 오래다. 매년 쏟아져나오는 슈퍼 히어로물은 전편의 흥행기록을 곧잘 갈아치우며 그들만의 왕국을 굳건히 한다. 올해만 해도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는 2억6천만 달러로 전작 <퍼스트 어벤져>의 1억7천만 달러를 넘어섰고,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은 2억 달러로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의 1억7천만 달러를 능가했으며,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는 2억3천만 달러로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1억4천만 달러보다 많았다.


속편의 장점은 투자 부담이 줄어든다는 데 있다. 한국 상업영화의 제작비가 점점 늘고 있는 상황에서 성공이 검증된 기획은 그만큼 인지도를 확보하고 시작하는 셈이니 출발선부터 유리해진다. 업영화 한 편의 마케팅 비용이 평균 20억 정도라고 할 때, 속편은 그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인지도를 확보할 수 있어 초반 흥행에서 유리해진다. 쇼박스 한국영화투자팀의 정현주 과장은 "브랜드 하나를 확립하기 위해선 상당한 비용과 스태프들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5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선택한 영화라면 속편의 가능성을 검토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속편이 늘어난다는 것은 쓸만한 시나리오가 고갈되어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할리우드가 매년 빅 시즌마다 거대 프랜차이즈로 라인업을 짜는 것 역시 새로운 소재의 부족으로 인한 고육지책으로 해석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현재 한국영화가 상업영화 시장을 절반 이상 장악하고 있지만 다양성영화 시장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소재의 고갈은 우려스러울 정도로 두드러진다. 될 영화를 더 크게 만드는 데만 돈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충무로에 속편이 늘어가고 있는 것은 이미 거부할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잘 만든 속편은 감독이 더 큰 이야기를 펼칠 수 있게 해주고 관객이 더 큰 애정을 쏟을 수 있게 돕는다. 그러나 과거처럼 이름값에 기대 허술하고 뻔한 기획만 양산한다면 언제든 또다시 외면받을 수 있다. 대규모 물량공세와 스타캐스팅에 의존하다가 정작 중요한 이야기를 놓치게 되면 속편은 존재 이유를 잃는다. 전편의 장점을 가져오면서도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영화로 홀로 설 수 있는 속편만이 관객의 선택을 받게 될 것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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