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군도> <명량> <해적> <해무>. 총 60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한 대작 4편이 7월 23일부터 일주일 간격으로 나란히 개봉하고 있다. 한국영화계에 사상 유례없는 여름 블록버스터 빅매치다. 개봉일을 서로 조율해 맞대결은 피했으나 일주일이 지나면 새로운 대작이 치고 올라온다는 점에서 정해진 스크린 수를 나눠가져야 하는 구도는 피할 수 없다. 조금이라도 예매율이 떨어지면 가차없이 다른 영화에 스크린을 내줘야 하는 '의자뺏기 싸움'이다.


그동안 대작들의 맞대결은 두 편 정도가 맞붙는 정도였다. 과거엔 여름마다 할리우드 영화가 워낙 강했기에 한국영화 대작이 개봉할 땐 서로 피해주는 관례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영화가 여름시장도 접수했다. 2012년 <도둑들>, 2013년 <설국열차>는 한국영화의 여름시장을 확 키운 주역이다. 그렇다고해도 한 해에 대작 4편을 소화할 만큼 시장이 커졌을까? 대체 어떻게 이런 빅매치가 가능했을까?


일단 제작비부터 살펴보자. 마케팅 비용을 포함한 총제작비는 <군도>(쇼박스) 165억원, <명량>(CJ E&M) 180억원, <해적>(롯데 엔터테인먼트) 160억원, <해무>(NEW) 100억원이다. 각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군도> 550만명, <명량> 600만명, <해적> 530만명, <해무> 330만명이다. 네 편의 영화를 합쳐 무려 2,010만명의 관객을 모아야만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7월 23일부터 8월말까지 2,010만명 이상의 관객이 네 편의 한국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을까?



최근 3년간 통계를 찾아봤다. 2011년 7월 23일부터 8월 31일까지 극장을 찾은 관객은 2,590만명이었다. 2012년 같은 기간에는 3,160만명, 2013년에는 3,480만명으로 2년 사이에 관객이 34% 증가했다. 그러나 이는 할리우드 영화 등 외국영화를 포함한 수치다. 올해도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허큘리스> 등 외국영화 기대작이 건재하기에 한국영화 시장만 따로 계산해볼 필요가 있다.


2011년 여름에는 <최종병기 활>(740만명, 롯데) <7광구>(220만명, CJ) <퀵>(310만명, CJ) <고지전>(290만명, 쇼박스) 네 편이 링에 올랐고, 그중 <최종병기 활>만이 소위 '대박'을 쳤다. 나머지 영화는 고만고만했는데 특히 <7광구>는 손익분기점에 못 미치며 처참하게 실패했다.


2012년 여름에는 <도둑들>(1,290만명, 쇼박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490만명, NEW), <연가시>(450만명, CJ)가 연달아 개봉해 슬리퍼 히트를 기록했다.


2013년 여름에는 <설국열차>(930만명, CJ), <더 테러 라이브>(550만명, 롯데), <숨바꼭질>(560만명, NEW), <감기>(310만명, 아이러브시네마)가 나란히 흥행에 성공했다. 7월 초에 개봉한 <감시자들>(550만명, NEW)도 의외의 히트를 기록하며 여름 시장을 키웠다. 반면 가장 기대를 모았던 <미스터 고>(130만명, 쇼박스)는 처참하게 실패해 비운의 작품으로 남았다.


지난 3년간 7월 23일부터 8월 31일까지 한국영화 주요 배급사들이 배급한 영화의 관객 수를 계산해봤더니 2011년 1,670만명, 2012년 2,080만명, 2013년 2,360만명이었다. 2년간 관객증가율은 41%에 달했다. 각 배급사들의 전략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작년 2,360만명은 올해 네 편의 영화가 동원해야 할 2,010만명을 훌쩍 웃도는 수치다. 한국영화의 여름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기에 충분히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올해 과감하게 베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올해 개봉하는 영화 네 편의 손익분기점 평균은 대략 530만명이다. 작년 여름시장에서 관객 수 530만명을 넘은 한국영화 역시 4편이었다. 결국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올해 여름시장의 승부수가 던져진 셈이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2천만명은 네 편 모두를 합한 손익분기점 관객 수일 뿐 각 영화에 고르게 나눠줄 수 있는 수치는 아니다. 어느 한 편이 1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면 상대적으로 다른 영화에는 관객이 들 수 없다. 스크린 수가 한정돼 있기에 관객 수가 무한대로 늘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여름시장이 더 커지려면 스크린당 좌석점유율이 올라가야 한다. 예년의 경우, <도둑들>의 좌석점유율은 45%, <설국열차>는 43%, <더 테러 라이브>는 38%로 큰 차이가 없었다.


올해 네 편의 영화가 엎치락뒤치락 경쟁을 하면 좌석점유율에서도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극장은 여름시즌에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해 예매율이 높은 영화에 더 많은 스크린을 내줄텐데 예매율은 곧 좌석점유율과 직결된다. 그런데 만약 어느 한 작품에 관객이 쏠린다면 다른 영화는 스크린을 확보하지 못해 극장에서 일찍 사라질 수도 있다.


이런 위험부담 때문인지 재미있게도 네 편의 영화는 배경과 소재에서 비슷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 조선시대 배경이 세 편, 바다 배경이 세 편이고, 제목도 두 자씩으로 같다. 한국의 톱스타들이 대거 출연하고 감독은 이름값 높은 거장이라기보단 흥행작을 만들어 본 적 있는 주니어급이다. 마치 담합이라도 한 것처럼, 우연이라고 하기엔 공교롭게도 닮은점이 많다. 그만큼 네 배급사 모두 거액을 투자했기에 "망하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서로를 참조해 영화들의 공통점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사극이고 왜 바다가 배경일까? 올해 <역린>이 스타일을 구기기 전까지 <광해> <관상> 등 두 글자 제목에 대여섯 글자의 부제를 단 사극은 장사가 잘 됐다. 또 여름철 극장에 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라는 설문조사 결과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피서지로 극장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여름엔 바다"라는 피서의 공식을 영화에도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복병은 예상치 못한 세월호 참사의 후유증에 있다. 바다에 대한 트라우마는 바다 소재 영화의 흥행을 좌우할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다.


네 편의 영화는 2천만명 이상의 관객을 골고루 나눠가질 수 있을까? 혹시 연속되는 사극과 바다 소재에 관객들이 싫증을 느끼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가장 마지막에 개봉하는 <해무>가 피해를 입게 될까? 어쨌거나 영화는 모두 공개됐고 개봉일은 정해졌다. 배급사들은 막 시험문제를 풀고 나온 수험생처럼 관객들이 내놓을 채점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