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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12일, 미국의 무인기 `드론'이 예멘에서 결혼식장으로 향하던 차량 행렬을 폭격해 1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피해자 대부분이 민간인이었음이 밝혀지며 예멘 의회는 며칠 뒤 드론의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2012년 12월엔 스탠포드대 로스쿨과 뉴욕대 로스쿨 연구진이 지난 8년 간 파키스탄에서 드론 공격으로 사망한 최소 2562명 중 민간인이 최소 474명에 달하고 그중 어린이도 176명이나 포함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런가 하면 최근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정부가 그동안 주로 중동 지역에서 알카에다를 추적하는데 사용했던 드론을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으로까지 확장하기로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드론'이 인공지능 로봇으로 진화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2014년 새롭게 리메이크된 영화 <로보캅>의 첫 장면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으로 시작합니다. 중동에 파견된 로봇경찰이 치안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아랍인들을 검문합니다. 폭탄테러가 일어나면 로봇경찰이 재빨리 수습합니다. 미국의 친기업 미디어는 로봇경찰을 개발한 옴니코프를 칭송하며 하루 빨리 미국에도 로봇경찰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미국엔 상원의원 드레이퓌스가 주도하는 법안이 로봇을 치안에 투입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습니다. 로봇은 사람을 죽이면서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옴니코프의 레이먼드 회장(마이클 키튼 분)은 이 법을 무력화시키려 합니다. 감정을 느끼는 인간다운 로봇을 만들면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 신제품이 바로 `로보캅'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레이먼드 회장을 연기한 마이클 키튼은 초대 `배트맨'을 연기했었다는 점입니다. 배트맨은 낮에는 기업 회장이고 밤에는 히어로였죠. 그래서인지 로보캅의 외관이나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모습은 배트맨을 닮았습니다.


1987년 폴 버호벤 감독이 센세이셔널하게 할리우드 입성을 알렸던 영화 <로보캅>이 27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당시 단순한 액션영화로 알고 있는 분도 많겠지만 사실 1987년 작품은 정치적으로 아주 예리한 질문들을 던진 영화였습니다. 민영화된 경찰, 대기업에 종속된 미디어, 효율 만능의 자본주의, 인간과 기계의 경계 등 이 영화를 놓고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기도 했죠.


2014년 호세 파디야 감독의 <로보캅>은 그중 하나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로봇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하는가입니다. 최근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 로봇 산업과 웨어러블 컴퓨팅 산업이 언젠가 유발하게 될 윤리의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일 때 칼을 쓰면 그 충격이 온몸에 그대로 전달됩니다. 그런데 총을 쓰면 충격은 덜하게 되죠. 버튼 하나로 미사일을 투하해 죽이면 손가락만 기억을 할 것입니다. 이처럼 기계는 인간을 살상하는데 있어 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도록 진화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젠 인공지능 로봇이 알아서 사람을 죽이는 시대가 도래하게 됩니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릴 때 트루먼 대통령은 엄청나게 고민을 했을 것이고 그 결과에 책임감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로봇이 살상을 결정하고 실행하면 누구도 고민하지 않게 됩니다. 여기에 로보캅 딜레마가 있습니다.



로보캅은 인간일까요 기계일까요? 인간성이 강하게 지배할 때 로보캅의 정신은 불안정합니다. 어느날 자신의 몸이 머리만 제외하고 모두 기계로 변했는데 정신적인 문제를 겪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로보캅을 만든 데넷 박사(게리 올드만 분)는 로보캅의 공개를 앞두고 불안정함을 감추기 위해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분비 양을 줄여 기계에 가깝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자 로보캅은 강력하고 효율적인 로봇경찰로 탄생합니다. 도시의 모든 CCTV 정보를 분석해 흉악범을 쫓고 막강한 화력으로 갱단을 잡아들입니다. 로보캅이 활약하는 도시에서는 어떤 범죄도 발 붙이기 힘들어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로보캅을 레이먼드처럼 거대 자본을 가진 악당이 조종하게 되면 그 사회는 악몽이 된다는 점입니다.


영화가 이런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해답으로 제시하는 것은 법적인 규제와 시민들의 감시, 그리고 인간성의 회복입니다. 로보캅의 성과에 열광하는 여론으로 인해 폐기되는 것처럼 보였던 드레이퓌스 법안은 레이먼드의 악행이 밝혀지며 다시 부활합니다. 그리고 로보캅은 스스로 기계를 통제하며 인간성을 회복합니다.


영화는 1987년 원작처럼 TV 뉴스를 통해 로보캅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시종일관 로봇경찰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친기업적 미디어의 앵커 팻 노박(사뮤엘 L 잭슨 분)은 옴니코프의 악행이 밝혀지는 엔딩에 이르러서는 드레이퓌스 법안이 부활했음을 조롱하듯 알립니다. 이 마지막 장면은 현대에도 탐욕적인 군수산업체와 폭스뉴스 같은 미디어가 연상돼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처럼 로봇이 가져올 윤리적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한 2014년 <로보캅>은 다가올 미래사회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로보캅의 헬멧을 쓰고 보는 듯한 1인칭 시점 샷이 많아 시청각적 쾌감도 영화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다만 후반부로 가면서 스토리의 개연성이 떨어지고 로보캅을 배트맨 같은 `반영웅'의 아류처럼 그리고 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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