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우리는 숫자에 중독된 사람들이야. 하루에 두 번은 자위를 해야돼. 난 아침 먹고 한 번, 점심 먹고 한 번 하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야심 가득한 22세 청년 조던 벨포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가 월스트리트의 로스차일드 증권회사에 입사한 첫날 선배 마크 해나(매튜 매커너히 분)에게 듣는 조언이다. 그는 마약과 창녀는 월스트리트에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라며 매일 마스터베이션으로 욕구를 해결하지 않으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멜로디를 흥얼거리는데 이 만남에서 조던이 배운(?) 것은 향후 그가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된다.


'월가의 늑대' 조던 벨포트의 실화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평범한 세일즈맨으로 시작해 월가의 사기꾼이 되었다가 감옥에 간 억만장자 조던 벨포트의 실화를 재구성한 작품이다. 영화는 그가 돈을 흥청망청 쓰다가 FBI 수사관에 검거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실제 벨포트는 22개월형을 선고받고 피해자들로부터 엄청난 거액의 소송을 당했으나 출소 후에 세일즈 강의를 다니고 또 이 영화의 원작이 된 책 [월가의 늑대]를 써 오히려 예전보다 더 유명인사가 됐다. 영화 판권을 마틴 스콜세지가 구입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공동제작했으니 자신의 과거를 제대로 세일즈한 셈이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실제 벨포트가 증권회사에 입사한 것은 어린 나이에 세일즈맨으로 돈을 크게 벌었다가 실패한 후다. 그는 푼돈보다 큰 돈을 벌고 싶었고 그래서 월스트리트로 온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에서 잘 나갈 줄 알았던 조던은 1987년 블랙 먼데이 때 로스차일드 증권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쫓겨난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 줄 알았던 그는 '페니 스톡(싸구려 주식)'을 거래하는 증권시장에서 능력을 발휘하며 결국 동네 건달 같은 친구들을 모아 자신만의 증권회사를 세우고 이름을 '스트래튼 오크먼드(Stratton Oakmond)'라고 짓는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에서 기업공개(IPO)를 전문으로 하며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를 풍미했던 이 회사는 영화 <보일러 룸>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지오바니 리비시는 불법 도박장을 운영하다가 접고 친구를 따라 주식중개 회사에 들어가게 되는데 알고보니 그 회사는 월가에서 온갖 불법을 저지르는 회사였다.


스트래튼 오크먼드는 세일즈의 달인이었던 벨포트의 능력으로 성장을 거듭하는데 사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폰지(일명 피라미드), 주가조작, 차명거래 등이다. 기업공개 전 신규 상장사로부터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주식을 인수해 상장 후 막대한 차익을 남기고 팔아 벨포트를 비롯한 초기 창업자들은 돈방석에 앉았다. 물론 당시 대형 증권사들이었던 메릴린치, 모건 스탠리, 리먼 브라더스, 살로먼 브라더스, 딘 워터 등도 공공연하게 시장을 조작해 돈을 벌었고 영화는 벨포트의 입을 통해 이를 드러낸다. 월스트리트 자체가 탐욕의 도시인데 왜 나만 잡아가냐는 것. 그러나 스트랜든 오크먼트는 훨씬 대범하고 무자비하게 돈을 쓸어담았다.



한없이 가벼운 돈의 맛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월가의 늑대' 조던 벨포트가 상승했다가 추락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워낙 높이 솟아올라 떨어져 낙차가 크기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내러티브도 아찔하다. 그러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사기꾼의 내면을 파헤친 묵직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한 남자의 롤러코스터라는 점에서 <컬러 오브 머니> <애비에이터>와 닮았지만 극의 전개는 훨씬 가볍다. 올리버 스톤의 <월 스트리트>나 폴 토마스 앤더슨의 <부기 나이트>와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 영화가 천착하는 것은 시스템이 아닌 향락에 빠진 인간들이다. 한없이 가볍고 흥청망청한 가운데 숨은그림 찾기처럼 숨겨둔 인물들의 표정을 읽어내야 하는 영화다. <좋은 친구들>의 초반부를 길게 늘려놓았다고 할까? 그러나 벨포트의 동업자 대니(요나 힐 분)는 조 페시와 닮긴 했지만 결코 그만한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은 아니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마약과 섹스 중독자의 '머니 페티쉬 쇼'다. 그들은 돈을 숭배하고 돈에 감염되어 있다.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일개 중산층 세일즈맨에서 거부가 된 조던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동자들이 이 영화를 설명해준다. 온갖 난잡한 시선의 영화이자 돈이 스스로 마스터베이션하는 영화다. 3시간 동안 마약과 여자들을 전시해 자극적이고 음탕한 시선을 드러내더니 결국 사정하듯 분출해버린다. 그래서 굳이 비슷한 영화를 찾자면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가 떠오른다. 극한의 탐욕과 폭주를 통해 자본주의의 위선을 드러낸다는 점이 비슷하다.



더 대담해진 마틴 스콜세지


러닝타임은 3시간이지만 체감 시간은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감독의 정교한 세공 솜씨 덕분이다. 마틴 스콜세지의 전작 <카지노> 역시 3시간의 러닝타임에도 집중도가 떨어지지 않았는데 그 녹슬지 않은 솜씨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 이런 집중력은 단순한 메인플롯을 서브플롯이 곳곳에서 영리하게 받쳐주기 때문이고, 또 장면마다 긴장감이 살아 있기에 가능하다. 결혼식에서 잠깐 등장했던 사진사와 엠마 이모가 어느 순간 플롯의 중요한 축이 되고 앞서 옥신각신하던 브래드와 도니가 결국 후반부에 일을 그르친다.


특히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서 주목할 장면은 조던과 대니가 조던의 집에서 '레몬 714'라는 강력한 향정신성약을 먹은 후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다룬 장면이다. FBI에 의해 집 전화가 도청되고 있다는 것을 안 조던은 혀가 꼬이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자신의 럭셔리 차를 운전해 집으로 온다. 젖먹던 힘을 짜내 통화중인 대니의 수화기를 뺏으려는데 영문을 모르는 채 약에 취한 대니는 전화기에 대고 횡설수설한다. 꼬불꼬불한 전화선이 조던의 목에 감기면서 마치 슬랩스틱 같은 상황이 연출되는데 상대방이 모르고 관객이 알때 서스펜스가 생긴다는 공식을 다소 우스꽝스럽게 비튼 장면이다.


또 사무실에서 마치 종교집회처럼 연설하는 조던과 그의 신호에 따라 수백명의 직원들을 향해 돌진하는 수십명의 창녀들의 행진을 슬로모션으로 담아낸 장면 역시 예리하게 날이 서있다. 임직원들이 사무실에서 마구잡이로 섹스하고 에너지를 분출하는 이 장면은 로마 황제의 기행을 담은 펜트하우스의 <칼리귤라>를 떠오르게 할 만큼 선정적인데 한편으론 <아이드 와이즈 셧>의 난교파티 같은 우아함도 잃지 않는다. 조던은 자신이 황제라도 된 것처럼 자신을 따르는 직원들에게 먹고 섹스하고 약에 취해 돈다발에 빠지라고 외친다. 전작 <휴고>에서 아이들의 시선으로 돌아가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보였던 마틴 스콜세지는 자신이 아직 이토록 에너지 넘치는 장면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현역 감독이라는 것을 178분 내내 증명한다.



디카프리오 최고의 연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마틴 스콜세지와 벌써 다섯 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 영화에서 생애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예전 마틴 스콜세지의 페르소나였던 로버트 드니로가 우수에 찬 도시의 이방인을 주로 연기했다면 디카프리오는 거대한 성공을 거두고도 스스로 파멸하는 인물을 연기한다. 돈의 망령에 사로잡힌 그의 표정은 <애비에이터>에서 다소 넘쳤던 광기를 정제해내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마약에 취해 계단을 굴러떨어지는 장면의 연기는 <길버트 그레이프>의 정신지체 소년을 닮았고, 스위스 은행에 차명 보관해둔 돈을 찾으러 무리하게 배를 타고 나갔다가 폭풍우를 만나는 장면은 <타이타닉>의 침몰 장면을 연상시키는데 디카프리오는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준 걸작 두 편을 스스로 패러디해 비꼬면서까지 시침 뚝 떼고 돈에 미친 남자를 묘사한다. 이처럼 단순한 난잡함은 이 영화의 최면에 빠진 듯한 약기운과 잘 어울린다. 자신의 몸에 손대지 말라고 말하는 부인 나오미(마고 로비 분)와의 신경전에서 보여준 생생한 수컷 같은 표정 연기도 훌륭했는데 다만 여성 관객들은 다분히 마초적인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 영화가 많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



머니 페티쉬, 악마의 유혹


돈에 중독된 현대인을 묘사한 영화는 많았다. 이 영화가 차별화되는 지점은 관객을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돈에 미친 남자의 기행을 지겹도록 묘사하면서 이런 삶을 살고 싶은지 묻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출소한 조던은 뉴질랜드에서 세일즈 강연에 나선다. 사람들은 경외의 눈으로 이 세일즈의 달인을 바라본다. 그 흐리멍텅한 눈동자들을 보면서 인간이 `생각하는 방법'을 잃어버릴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한나 아렌트가 떠올랐다.


2차대전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들은 기차에서 폭동을 일으키지 않았고 제발로 처형장까지 걸어가 총살당하기 전 스스로 무덤을 파기까지 했다. 이상할 정도로 저항이 없었는데 그 이유는 나치가 유대인들을 감시하고 죽이는데 유대인들을 고용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한나 아렌트는 논쟁적인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가해자인 나치와 피해자인 유대인 모두 '생각하는 방법'을 잃어버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개인의 양심 문제가 시스템에 저당잡힐 때 악은 평범함 속에 나타난다. 아마도 오늘날 팽배해진 물질만능주의 역시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돈을 숭배하면 할수록 선과 악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대부분 그것이 언젠가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악마의 유혹은 스멀스멀 찾아온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