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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나서 몇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첫번째 궁금증은 제목이 왜 <어바웃 타임>일까였다. 'Travelling in Time'도 아니고, 'About Love in Time'도 아닌 'About Time'인 이유가 뭘까? 닉 혼비의 베스트셀러를 웨이츠 형제가 영화로 만든 'About a Boy' 생각도 나는데 그 영화와 달리 이 제목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 포괄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감독의 전작인 <러브 액츄얼리>와 그가 각본을 쓴 <노팅힐>의 작명이 진정한 사랑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에 비교해보면 <어바웃 타임>이란 제목은 어딘지 조금 부족하게 느껴진다.


두번째 궁금증은 시간여행을 하는 능력이었다. 왜 레이크 집안 사람들은 남자들만 시간여행 능력을 갖고 있을까? 왜 여자들에게는 시간여행 능력이 없을까? 만약 팀(도날 글리슨 분)이 게이여서 더이상 아들을 낳을 수 없다면 그 능력은 이제 대가 끊겨야 하는 걸까? 영화의 주제와 연관이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부계유전으로만 설정한 이유가 궁금하긴 하다. 왜 여동생 킷캣(리디아 윌슨 분)은 그 능력이 없어야 하는 걸까?


세번째 궁금증은, 뭐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럼 나비효과는 어떻게 된거지?" 였다. 당장 한국 드라마 <나인: 아홉번의 시간여행>에서 충분히 묘사됐듯이 과거를 조금만 바꿔도 너무나 많은 게 바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바웃 타임>은 복잡한 나비효과를 건너뛴다. 이를 위해 아버지(빌 나이 분)를 은퇴한 교사로 설정해 사회에서 고립시키고, 비밀을 알게 된 여동생 킷캣 때문에 딸이 뒤바뀌자 간편하게 원래대로 리셋해버린다. 영화가 나비효과를 무시하는 이유는, 뭐 당연하게도,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시간여행이 등장하는 영화들은 미스테리 구조를 띄는 경우가 많다. <시간여행자의 아내> <사랑의 블랙홀> <소스코드> <미드나잇 인 파리> 등 타임슬립 영화들을 떠올려 보라. 시간을 거슬러 왔다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이 믿지 못하고 그 속에서 갈등이 생기는 장면들이 꼭 있다. 그런데 <어바웃 타임>에는 미스테리 플롯이 없다. 시간여행을 하는 자가 쫓기지도 않고, 일이 크게 뒤틀리지도 않으며, 자신을 믿어달라고 호소하지도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타임슬립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닮았다. "네 또래 여자아이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란다"라며 타임리프 능력을 발견한 소녀를 안심시키는 이모처럼 <어바웃 타임> 역시 타임슬립을 굳이 억지로 설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 거로 가는 방법도 무척 단순하다. 그저 깜깜한 공간으로 들어가서 주먹 꽉 쥐고 언제로 갈지 생각만 하면 된다. 영화는 타임슬립에 동반되는 비과학적인 것을 애써 과학적으로 보이게끔 만들려는 판타지를 일체 배제하고 시간여행을 단 한 가지 목적으로만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이 영화에서 나머지는 모두 부차적인 것이다.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두번 사는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 두번째 삶에서는 처음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을 두 번 사는 것처럼 살면 삶이 더 풍부해질 것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의 결론이었던 "현재를 즐겨라"의 화목한 가족 버전인 셈이다. 그 흔한 싸움도, 갈등도, 이혼도, 불륜도, 가족불화도 없는 이 영화에서 감독은 팀과 아버지의 헤어짐을 반복해서 보여주며 삶의 진리를 담담하게 설득한다. "결국 인생은 모두 함께 하는 시간여행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그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 오럴 섹스 유머가 많이 등장하는데 가족 사이에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서 놀랐고, 비오는날의 결혼식 장면도 로맨틱할 수 있다는 것에 또 놀랐다. 팀 역의 도날 글리슨은 처음 등장했을 때 '너드' 역할에 어울릴 법한 빨간머리로 그다지 매력이 없어보였는데 볼수록 정감가는 스타일이다. 레이첼 맥아담스가 연기한 메리는 <미드나잇 인 파리>의 까칠한 부인 이네즈보다 <시간여행자의 아내>에서 한 남자를 기다리는 클레어에 더 가까운데 그녀에겐 마치 할리우드 고전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매력이 있다. 영화 중간에 보너스로 패션쇼까지 보여주는데 <귀여운 여인> 이후 예쁜 여배우가 나오는 영화에 이런 패션쇼가 등장하는 게 유행인 적이 있어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더 클래식해 보이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궁금한 점은, 두 사람을 연결시켜준 케이트 모스에 관한 대화는 도대체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해변가의 케이트 모스의 초기 모습을 좋아한다더니 그 대사는 후반부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도 않았다. 이런 허점들을 보고 있으면 <러브 액츄얼리>가 얼마나 잘 만든 영화였는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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