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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더스 게임>은 디지털 도메인이라는 익숙한 회사의 로고로 시작합니다. 디지털 도메인이라는 이름을 극장에서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게 디지털 도메인은 '믿고 보는' 로고입니다. 지금껏 실망한 적 없는 획기적인 CG를 보여주었으니까요. 이 회사는 제임스 카메론이 특수효과의 거장 스탠 윈스턴과 카메론이 손을 잡고 1993년 설립했습니다. 조지 루카스의 ILM처럼 카메론도 자신만의 VFX 회사를 갖고 싶어 <트루 라이즈>를 찍으면서 이를 벤치마킹 했습니다. <터미네이터2> <타이타닉> 등 제임스 카메론 감독 영화는 물론 <제5원소> <아마겟돈> <투머로우> <캐리비안의 해적> 등 대작을 이 회사에서 만들었고 오스카 특수효과상도 휩쓸었습니다. <타이타닉>으로 파산 위기에 몰리며 카메론이 떠났고, 한때 주춤거리다가 2006년 마이클 베이가 인수했고, 이후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트랜스포머>를 내놓으면서 다시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바타> 이후 3D가 각광받으면서 VFX 회사들이 많아졌다는 것. ILM 외에 웨타디지털, 리듬앤휴즈, 소니 이미지웍스, 스캔라인, 프레임스토어, 루마픽처스 등 디지털 도메인의 경쟁자는 늘어갔고, 컴퓨터 그래픽의 단가가 낮아지면서 해외 경쟁자도 많아져 결국 2012년 12월 파산하고 맙니다. 이후 중국의 Galloping Horse와 인도의 Reliance가 인수해 여전히 <엔더스 게임> 같은 할리우드 대작을 만들고 있습니다. ILM와 드림웍스도 중국에 지사를 내고, 리듬앤휴즈도 중국 업체에 팔린 것을 보면 CG VFX 같은 고급 인력 집약 사업은 중국과의 인건비 경쟁을 따라갈 수 없나봅니다.



오슨 스콧 가드의 베스트셀러 소설 [엔더의 게임]이 워낙 유명해 이 영화에 대한 다른 소개는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원작은 아이들의 리더십 교육 교재로도 학교에서 쓰이고 있다고 하죠. 배경은 2086년. '포믹'이라는 외계 종족과의 전쟁에서 겨우 살아남은 뒤 50년 간 우주함대를 결성한 인류는 포믹을 완전히 쓰러뜨릴 전쟁을 지휘할 사령관을 찾고 있습니다. 미래의 사령관은 감정과 폭력 사이에서 균형을 찾을 수 있고 신체능력과 지능이 동시에 뛰어나야 합니다. 이 조건에 맞는 건 10대 아이들입니다. 현대의 전쟁이 20대 병사들을 40~50대 사령관이 지휘하는 구조라면, <엔더스 게임>이 설득하는 미래의 전쟁은 10대 사령관이 10대 아이들을 통솔하는 전쟁입니다. 요즘 '스타크래프트'를 하며 자란 아이들이 전략 롤플레잉 시뮬레이션에 길들여져 있는 것처럼 미래의 전쟁 역시 게임과 비슷한 형태로 진화되어 아이들이 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죠. 어느 과학 책에서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기능이 최고조에 달한 나이가 7세라는 글을 본 적 있는데, 그 책의 저자는 7세 이후로 인간의 능력이 점점 퇴화되어 간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10대 초반의 나이인 엔더가 사령관이 되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영웅 서사의 전형을 따르고 있습니다. 선택받은 아이 엔더(아사 버터필드 분)는 자신이 과연 영웅이 될 자질이 있는지 스스로를 의심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재능을 알아본 조력자의 도움으로 능력을 발휘하여 영웅의 자리에 오릅니다. 그는 귀환하는 길에 영웅에 안주하지 않고 운명을 따릅니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운명은 영화 처음에 나오는 자막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적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면 적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죠.


사령관 학교의 햇병아리였던 엔더가 차례대로 단계를 밟아 총사령관이 되는 이 영화의 플롯은 아주 단순하지만 그 훈련이 결국 무엇을 위한 과정이었는지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엔딩은 상당히 의미심장합니다. 컴퓨터 게임을 하듯 엔더와 그의 동료들은 행성을 파괴해 포믹을 멸종시켰지만 죽어가는 여왕 포믹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엔더를 괴롭힙니다. 인간은 지구상의 다른 동물들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종족 학살'을 우주에서도 자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관학교는 폭력과 감정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라고 가르치지만 오히려 폭력성을 더 키워가고 있고 성인이 된 지휘관들은 50년 전 '포믹'에 대한 기억에 포박돼 지레 겁을 먹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현대에 대입시키면 공산주의(소위 '빨갱이 포비아')에 대한 알레고리처럼 읽히기도 하는데 사실 정치든 종교든 이데올로기에 대한 절대적인 고정관념이 생성될 때 그것은 무섭게 인간을 타자에 대해 배타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겁을 먹은 인간에게 평화는 찾아오기 힘듭니다. 엔더는 그것을 깨우친 유일한 인간이지만 한편으로는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는 이야기는 신자유주의가 주입하는 '경쟁'의 메시지와 맞닿아 있어서 불편하기도 합니다.



<엔더스 게임>은 제작비 1억달러를 들인 대작이지만 컴퓨터 그래픽에 의지하고 있어 등장인물은 소수입니다. 세트장에서 블루스크린에 의지한 촬영현장은 아주 단촐했을 것 같습니다. 영화 속에 무중력 상태에서 훈련 겸 게임을 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 <그래비티>의 무중력 카메라에 이어 다시 한 번 무중력 상태를 경험할 수 있는 재미있는 장면이었습니다. 마치 <해리포터>의 퀴디치 게임을 무중력 공간에 재현해놓은 것 같기도 했어요. 엔더 역의 아사 버터필드는 <휴고>에서는 클로이 모레츠에 가려 그닥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는데 이 영화에서 보니 아주 똘망똘망한 소년으로 성장했더군요. 그라프 역의 해리슨 포드는 엔더를 키우는 대령으로 나오는데 과거 자신이 연기했던 반항적인 캐릭터들의 반대편에서 체제를 수호하려는 역할이 묘하게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비올라 데이비스가 연기한 앤더슨 소령은 엔더의 감정을 더 이해하는 역할을 맡았으나 영화 속에서는 비중이 미미했습니다. 엔더의 누나인 발렌타인(아비게일 브레슬린 분)이 그 임무를 분담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영화를 총평하자면 화려한 VFX는 황홀하지만 스토리는 책을 그대로 옮기고 있어 단순합니다. 교과서를 영상으로 옮겨놓은 느낌이랄까요. 조금 더 임팩트 있기를 바랬어요. 그래서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입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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