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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이하 '비'): 안녕? 우린 뱀파이어 자매야. 난 엘레노아고 이쪽은 언니 클라라.

웜바디스(이하 '웜'): 안녕? 난 좀비야. R이라고 해. 여긴 내 인간 여친 줄리.

비: 어머, 넌 여친도 있니? 여친이 참 예쁘구나. 혹시 크리스틴 스튜어트?

웜: 그런 소리 많이 듣는데... 좀 닮긴 했지만 사실은 테레사 팔머야. 호주 출신에 연상.

비: 아, 그래? (미안해하며) 내가 괜히 아는 척을 했네. 비슷한 종족을 만나다보니 반가워서 그만... 이해해 줄거지?

웜: 워... (신음소리를 낸다) 근데 너희 둘 정말 자매 맞아?

비: 이건 사과의 의미로 알려주는건데... 너만 알고 있어. 사실 우리는 자매가 아니라... (이때 클라라가 끼어든다) 엘레노아 입 다물어!

웜: 사연 많은 자매들이로군. 확, 뇌를 꺼내 먹어버릴까보다.

비: 어머나, 뇌를 꺼내 먹는다고?

웜: 응. 나는 인간을 잡으면 뇌를 먹어. 그럼 그 사람의 과거가 머릿속에 꿈처럼 지나가지.

비: 뭔가 좀 멋진 것 같아. 우린 그냥 목을 찔러서 피를 먹는 정도인데.

웜: 피는 좀 비리지 않아?

비: 피가 얼마나 맛있는데... 넌 꼭 인간처럼 말하는구나.

웜: 사실 나 줄리를 만난 다음부터 조금씩 인간이 돼가는 것 같아. 어떨 땐 심장이 뛰는 것처럼 두근거려.

비: 멋져. 나도 그래. 얼마 전에 피아노를 치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오는 거야. 그 남자는 백혈병에 걸렸는데 왠지 믿음직스러웠어.

웜: 백혈병에 걸린 피도 괜찮아?

비: 난 언니와 달라서 사람들에게 허락 받고 피를 마시니까 그런건 상관 없어.

웜: 꽤나 침착한 뱀파이어네.

비: 너도 여친이 있는 걸 보면 멋진 좀비 같아. 그런데 너 어디 살아?

웜: 난 얼마 전까지 공항에 살았거든. 비행기 안에 집이 있었어. 거기서 혼자 놀면서 백수로 지냈지. 그런데 여친이 생긴 이후로는 떠돌아다니면서 목표가 생겼어. 인간들 만나서 설득하고 함께 세상을 바꿀거야.

비: 대단하네. 우리는 그냥 숨어사는 게 전부인데. 놀라지마, 우린 무려 200년 동안이나 영국에서 숨어 살아왔어. 언니가 몸 팔아서 돈 벌어오고 난 학교 다니고. 물론 우린 늙지 않으니까 함께 오래 살려면 서로의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하는 게 필요하지. 난 선생이 늙어 죽는 모습도 봤지만 그래도 학교 다니는 게 좋아.

웜: 난 너처럼 시간 개념은 없어. 줄리를 만나기 전까지 내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도 기억 못했어. 사실 지금 몇 살인지도 잘 몰라.

비: 생각보다 멍청하네. (옆에서 클라라가 맞장구를 친다.) 맞아! 생긴건 멀쩡한데 좀 멍청해.

웜: 그런 말 하지마. 이래봬도 나 LP 콜렉터야. 건스 앤 로지스, 로이 오비슨, 블랙 키스, 스콜피언스 음악 듣는다구.

비: 오! 그거 한 30년 전 노래들 아냐? 아, 옛날 생각나네.

웜: (멋쩍어하며) 하긴 너희들은 직접 겪어본 노래들이겠군. 그나저나 비잔티움이 뭐야?

비: 비잔티움은 지금 우리가 사는 숙소 이름이야. 옛날에 호텔이었던 곳. 클라라가 순진한 남자 하나 꼬셨는데 그 남자가 우리 여기서 재워주고 있어. 착한 남자야. 그 남자는 우리가 뱀파이어인지 몰라. 하긴 알면 죽여야할테니 그 남자는 모르는 게 다행이지.

웜: 근데 무슨 호텔 이름이 비잔티움이래?

비: 사실 비잔티움엔 다른 뜻도 있어. 너도 살아 있었을 때 세계사 시간에 배웠겠지만 기원전 7세기에 그리스인들이 보스포루스 해협 근처에 세운 도시가 비잔티움이지. 로마로 들어오는 길목을 지킨 곳. 지금은 이스탄불이 됐지만.

웜: 나도 그 정도는 알아. 근데 비잔티움이 너희랑 무슨 상관이냐는 거지.

비: 사실 우리를 없애려는 뱀파이어가 있어. 우리가 뱀파이어 원조는 아니잖아. 그들은 비잔티움 시대부터 살아온 강력한 종족들이야. 자신들이 세상을 지탱해왔다고 생각하지. 뱀파이어에 여자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규율을 깬 사람이 우리 엄마 클라라고. 헉. 엄마라고 해버렸네. 이걸 어떡해. 쉿! 클라라에게는 비밀이야. 어쨌든 클라라는 살아남기 위해 고아원에 버렸던 친딸인 나를 뱀파이어로 만들고 함께 도망쳤어.

웜: 슬픈 사연이네. 눈물이 나려고 해.

비: 좀비의 눈물이라... 정말 너 인간 다 됐구나.

웜: 응, 난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 어제는 줄리가 사는 집에 찾아갔어. 창가에 서서 줄리를 불렀지. 남들이 보면 로미오와 줄리엣인 줄 알았을 거야.

비: 그러고 보니 너희 둘 이름도 비슷하네. 너 이름 혹시 로미오 아냐?

웜: 후훗. 그건 비밀이야. 그냥 난 R이 좋아. 앞으로도 R이라고 불리고 싶어.

비: 줄리랑 진도 어디까지 나갔어?

웜: 아무리 비슷한 종족이라도 우리 사이에 그건 좀...

비: 뭐 어때. 난 백혈병 남친이랑 키스도 했는 걸.

웜: 아무렇지 않았어?

비: 사실은 남친이 자기 피를 먹어도 된다고 했어. 난 키스만 하고 참으려고 했는데 내 손가락이 참지를 못하는 거야. 우린 흥분하면 엄지손톱이 두꺼워지면서 송곳처럼 튀어나와. 목을 찔러 피를 마시기 쉽게 해주는 거지. 나도 모르게 남친 팔의 혈관을 찔렀어.

웜: 그래서 어떻게 됐어? 남친 피를 먹었어?

비: 설마 내가 그 피를 어떻게 마시겠니? 미안하다고 말하고 도망쳤지.

웜: 그런 일이 있었군. 난 뼈다귀들을 피해서 도망치다가 줄리를 안고 건물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거든. 물에 빠졌다가 겨우 올라왔는데 내 몸이 깨끗해지니까 줄리가 나에게 키스했어. 정말 황홀한 순간이었지. 살아있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어. 더구나 줄리처럼 예쁜 여자가 내 여친이라니.

비: 오, 좋았겠다. 근데 너 좀 응큼하다. 철이 덜 든건가? 하긴 200살난 우리가 이해해야겠지.

웜: 이건 그저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야.

비: 클라라도 순수하고 나도 순수하지. 남자들을 죽이기 전까진. 근데 뼈다귀는 또 뭐야?

웜: 뼈다귀는 해골만 남은 좀비들이야. 우리 좀비들하고는 좀 다르지. 더 사악해. 우리 좀비들은 나처럼 점점 인간이 되어가고 있어. 감정을 느끼고 연대할 줄도 알아. 그런데 뼈다귀들은 너무 포악해서 대화가 안 돼.

비: 좀비들을 뼈다귀랑 좀비로 나누는 건 처음인데... 네 말 듣고보니 너희 작가가 줄리랑 너 맺어주려고 뼈다귀들을 새롭게 만든 것 같은데?

웜: 억지로 편을 갈랐다고? 그러는 넌 뱀파이어가 피도 안 먹고 사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거야 말로 본능을 거스르는 거야.

비: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

웜: 그만 하자. 큰 일 앞둔 내가 참아야지. 줄리도 옆에서 잠들어 있는데.

비: 그래, 나도 이제 클라라와 다른 곳으로 가야겠어. 여긴 우리를 보는 눈들이 너무 많아. 클라라가 다 처리하긴 했지만 누군가가 보고 달아났을 수도 있으니까.

웜: 음... 어쨌든 끝까지 살아남길 바래.

비: 넌 다시 인간이 될테니 이제 피도 흘리고 늙어가겠네?

웜: 난 고통을 느끼는 게 좋아. 살아있는 감정이 얼마나 오랜만인지 모르겠어.

비: 그건 부럽다. 나도 내 영혼을 느껴보고 싶어.

웜: 다음에 닐 조단 감독에게 부탁해봐. 혹시 모르지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줄지도.

비: 닐 조단보다는 작가 모이라 버피니에게 말해봐야겠어. 닐 조단과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때 이미 충분히 대화를 했는데 그때 할 수 있는 걸 다 했나봐. 이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네. <제인 에어>도 그랬지만 모이라 버피니는 그래도 격정적인 감정을 끌어내는 힘은 있는 작가거든. 우리 편이 되어줄 거라고 믿어.

웜: 감독을 믿지 못하는구나. 우리 감독 조나단 레빈은 괜찮은데. 아이작 마리온의 원작을 이 정도로 만들어낸 대단한 능력자라고.

비: 그래, 그건 인정.

웜: 혹시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되면 우리 인간으로 만나자.

비: 응. 넌 인간 난 뱀파이어.

웜: 꼭 그렇게 나를 속여야겠니?

비: 그게 뱀파이어의 숙명이야. 좀비들은 잘 모르는. 하지만 너같은 꽃미남이라면 다시 인간이 돼서 연애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웜: 이거 왜 이래, 나한테는 줄리가 있다고!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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