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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레미제라블>이 개봉한 날은 12월 19일. 대선이 있던 날이었다. 구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거라는 기대가 컸던 만큼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 실망감은 무척 컸다. 세상은 원래 그런 거라고, 바뀌는 것은 정말 힘들다고, 허탈함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이 영화가 찾아왔다. 프랑스 혁명 이후 반작용으로 왕정이 복고된 뒤 다시 한 번 궐기한 프랑스의 시민들. 그때의 시민들과 지금의 한국사회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면서 이 영화는 허무함의 후유증에 빠져 있던 내게 힐링무비의 역할을 했다.


<레미제라블>의 원작자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 혁명 이후 1803년에 태어나 작가로 활동하면서 공화정을 지지하였다. 직접 정치에 뛰어든 적도 있던 그는 시민혁명을 믿었으며 1848년 2월 혁명에 참가하기도 했다. 비록 2월 혁명으로 탄생한 제2공화국이 나폴레옹 3세를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불명예로 막을 내리긴 했지만 2월 혁명 자체는 유럽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프랑스 시민들이었다. 그들은 프랑스 혁명의 나태함을 짓밟고 황제가 된 나폴레옹 1세의 향수에 젖어 독재자를 용인했다. 아직까지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대통령이 된 나폴레옹 3세는 1851년 쿠데타를 일으키고 빅토르 위고는 추방당하게 된다. 나폴레옹 3세가 쫓겨나기까지 장장 19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위고는 영국령의 섬들을 전전하면서 글쓰기에 매진한다. 당시 낭만주의 문학계를 이끌던 거목이었던 그의 작품은 좀더 인도주의적으로 변했다. 이때 집필한 작품 중 한 편이 바로 [레미제라블]이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 19년 동안 복역한 설정과 위고 자신이 19년 동안 프랑스를 떠나 있었던 사실은 결코 우연의 일치는 아니었을 것이다. 훗날 나폴레옹 3세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비스마르크에 패해 무너진 뒤 위고는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게 되고 그제서야 프랑스인들은 대문호를 뜨겁게 환영하였다. 1885년 그가 83세를 일기로 사망했을 때 프랑스는 국장으로 대문호를 예우했다. 그가 평생 믿은 것은 이상적인 사회 건설을 위한 인류의 전진이었다. 자유주의자이자 공화주의자인 그는 늘 낙관하고 있었고 정열에 불타고 있었다.


빅토르 위고가 1845년부터 1862년까지 총 5부작으로 쓴 거대한 장편 [레미제라블]을 해석하면 '불쌍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복수형의 이 제목에는 장발장 뿐만 아니라 자베르, 판틴, 코제트, 노동자들, 부랑아들, 그리고 혁명을 꿈꾸는 젊은이들 등 당시의 인간군상이 상징적으로 담겨 있다. 소설에는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저항정신이 담겨 있다. 그것을 감싸고 있는 틀은 인본주의다. 개인적으로 어릴적 이 소설 제목을 [장발장]으로 알고 읽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당시 독재정권에서 이 소설의 배경인 시민 궐기를 최대한 숨기고 그저 한 도둑과 그를 구원하는 사제의 이야기로만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제목까지 바꿔버린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이 소설이 한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이어서 1918~1919년 민태원이 [매일신보]에 [애사]라는 제목으로 번안 연재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소설의 배경인 1832년 6월 혁명은 민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혁명이라기보다는 학생들 위주의 궐기였다. 그래서 결국 찻잔 속 태풍으로 지나가버린 사건이었다. 위고는 그 사건을 소설의 배경으로 삼았다. 끓어오르는 혈기에도 불구하고 결국 패배하고 좌절하는 혁명군 사이에 두 주인공 - 장발장과 자베르의 엇갈린 운명을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알고 있을 너무나 유명한 작품인 만큼 영화화도 여러 번 이루어졌다. 가장 최근엔 1998년 리암 니슨이 장발장 역을 맡고 제프리 러쉬가 자베르 역을 맡은 빌 어거스트의 작품이 있었다. 아마도 2012년의 이 작품이 나오기 전까지는 가장 평가가 좋았던 <레미제라블>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1958년 장 가방 주연의 <레미제라블>이 있었다. 3시간 30분의 이 영화 역시 장발장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장 가방 덕분에 명작 반열에 올라 있다. 1995년엔 60대의 장 폴 벨몽도가 장발장이 된 클로드 를르쉬의 영화가 있었는데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배경을 1930년대 나찌가 지배하는 프랑스로 옮겼다. 그밖에도 1935년과 1952년에도 헐리우드에서 만들어졌다.



자, 이제 뮤지컬 이야기를 해야 한다. 뮤지컬을 좋아하긴 하지만 엄청난 팬은 아니기 때문에 아는 척하기가 부담스럽지만 어쨌든 2012년의 영화 <레미제라블>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다. 프랑스에서 1980년에 초연한 뮤지컬을 새롭게 만들어 1985년부터 런던와 뉴욕에서 공연해온 카메론 매킨토시는 그동안 이 뮤지컬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제의를 번번이 거절해오다가 톰 후퍼의 제안을 받고 허락했다고 한다. 눈독을 들였던 감독 중에는 <드림걸즈>를 만든 빌 콘돈도 포함되었다고 하는데 영화를 보고 난 지금 <드림걸즈>처럼 스케일이 크고 화려한 <레미제라블>이었다면 과연 어떤 느낌이었을지 약간 궁금해진다. 그만큼 톰 후퍼의 작품은 장르가 뮤지컬이고 대사를 노래로 한다 뿐이지 정극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인물의 감정선과 스토리가 중요해서 카메라는 인물에 꼭 붙어 다닌다. 감독의 전작 <킹스 스피치>가 캐릭터에만 집착해 인물의 특징 하나만으로 스토리텔링을 해낸 것처럼 <레미제라블>도 뮤지컬의 무대가 영화 속 공간으로 넘어왔을 때 시각적 효과에 대한 유혹을 자제하고 인물에 최대한 힘을 불어넣었다. 물론 뮤지컬이 원작이기 때문에 뮤지컬에서 생략된 이야기는 영화에서도 생략되었다. 가령 장발장이 시장이 되기까지의 과정이나 코제트와 수도원에서 행복하게 지내던 시절, 그리고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질투해 두 사람이 갈등하는 모습 같은 것은 뮤지컬에도 없고 영화에도 없다.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라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생략해도 크게 문제가 없을 거라는 전제가 깔린 각색일 것이다. 그 결과 얻은 것은 사건과 인물의 표정에 대한 집중력이고, 잃은 것은 캐릭터의 입체성이다. 특히 자베르라는 캐릭터는 법의 집행자로서 악한 모습과 강인한 모습, 그리고 갈등하는 모습 사이를 오가야 하는데 영화에서는 갈등하는 모습이 약하다. 그래서 마지막 센 강에서 투신하는 장면도 그다지 임팩트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영화는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네 번의 탈옥을 거듭하며 19년 간 노역형을 살다 나온 장발장이 은식기를 훔친 자신을 용서한 미리엘 주교에게 깨달음을 얻고 새 사람이 되기를 결심하는 부분, 2부는 신분을 숨기고 몽트리외의 시장이 된 장발장(영화에서는 마들렌이라는 가명도 잘 나오지 않는다)이 판틴의 죽음을 목도하고 그녀의 아이 코제트를 구해 양녀로 삼는 과정, 마지막 3부는 코제트와 사랑에 빠진 마리우스를 혁명군 속에서 구해내 이들을 결혼시킨 뒤 최후를 맞는 장발장이다. 원작 소설이 인간에 대한 무한한 믿음을 전제로 사회의 부조리에 의해 시련을 겪은 인간이 어떻게 그 악을 극복해내고 영혼 속의 선함을 지켜내고 그것을 다시 사회에 돌려주는가 하는 거대한 이야기였다면, 21세기에 각색한 영화의 전체를 관통하는 큰 질문은 "사람이 과연 변할 수 있을까?"이다. 이에 대해 자베르는 회의적이고 장발장은 스스로 그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원작에서 변호사였던 마리우스는 영화에서는 부잣집의 손자로 혁명에 가담한다. 결국 장발장이 그를 구해줌으로서 다른 혁명군은 모두 죽고 홀로 살아남는다. 사회를 바꾸는 일에 목숨을 걸고 함께 참가했지만 결국 뒷배경이 없는 사람만 죽고 홀로 살아남는 자는 그것을 배경삼아 승승장구하는 세상. 아마도 그런 부분은 당시의 프랑스와 현대의 한국이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대작 뮤지컬의 영화화라면 당연히 거대한 세트와 압도적인 군무, 그리고 와이드스크린 화면을 떠올리기 마련일텐데 이 영화의 스케일은 생각보다 작다. 원래부터 노래와 춤이 9:1 비율로 드라마가 압도적인 뮤지컬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노래로만 이루어진(Sung-through) 뮤지컬의 특성상 배우들이 직접 노래하는 모습을 담기 원했기 때문에 세트의 규모가 작아진 때문도 있다. 혁명군이 바리케이드를 친 장면의 세트는 골목길을 막고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대신 스토리에 중점을 두었고 그래서 배우들의 클로즈업이 많다. 장발장, 자베르, 판틴이 각각 솔로를 부르는 장면에서 마치 가수가 노래하는 뮤직비디오 같은 클로즈업으로 처리했는데 특히 원씬 원테이크로 이루어진 판틴의 노래 'I Dreamed a Dream'는 초반부에 엄청난 흡입력으로 관객들을 극에 몰입하도록 만든다. 장발장의 'Who am I? 24601', 자베르의 'Stars'는 앤 헤서웨이에 비하면 평범한 수준이다.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며 'On My Own'을 부르는 에포닌 역을 맡은 사만다 바크스는 원래 뮤지컬에서도 에포닌 역을 맡은 배우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마리우스, 코제트와 함께 노래하는 'In My Life'에서도 유독 에포닌만이 눈에 띄었다. 혁명군이 결의하며 부르는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은 마지막 장면에서 큰 울림을 준다. 혁명의 선구자들이 모두 죽고 난 뒤 바리케이드 뒤에 시민들이 모여 프랑스 국기를 흔들고 있는 장면은 비록 상상이지만 감동적이다. 지금 우리가 실패했을 지라도 결국 역사는 앞으로 전진할 것이다.


PS)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장발장 역을 맡았던 콤 윌킨슨이 미리엘 주교로 출연한다.

PS) 테나르디에 부부로 출연한 헬레나 본햄 카터와 사샤 바론 코헨은 뮤지컬에서 빠지지 않는 감초 같은 코믹 연기를 맡았는데 사샤 바론 코헨이 영어를 그렇게 잘하는 줄 미처 몰랐다. 아, 물론 그는 영국사람이긴 하다.

PS) 원작소설과 뮤지컬, 영화의 비교는 아래 리뷰를 참조. 정말 자세하게 설명한 리뷰.

http://movie.naver.com/movie/board/review/read.nhn?nid=2775216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댓글
  • 프로필사진 gingery "그때의 시민들과 지금의 한국사회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면서 이 영화는 허무함의 후유증에 빠져 있던 내게 힐링무비의 역할을 했다."
    공감의 내용입니다,
    "2월 혁명으로 탄생한 제2공화국이 나폴레옹 3세를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불명예로 막을 내리긴 했지만 2월 혁명 자체는 유럽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프랑스 시민들이었다. 그들은 프랑스 혁명의 나태함을 짓밟고 황제가 된 나폴레옹 1세의 향수에 젖어 독재자를 용인했다. 아직까지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대통령이 된 나폴레옹 3세는 1851년 쿠데타를 일으키고 빅토르 위고는 추방당하게 된다."
    박정희 향수로 집권하게 된 박근혜 또한 그럴 것입니다,
    즉 2013년 공안정국
    2014년 민주당과의 내각제 개헌을 예상합니다,
    토인비의 말대로
    "역사는 인간에게 교훈을 주나, 인간은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이므로
    반성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되기에
    나락으로 빠질 것으로 봅니다,

    2012.12.24 08:43
  • 프로필사진 Youchang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박근혜가 지금처럼 한다면 엄청난 저항에 직면하게 되겠죠.
    그런데 과연 개헌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네요...
    2012.12.27 00:4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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