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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도 팬이 많은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소설들는 세상과 단절된 주인공이 겪는 작은 사건들의 변형을 통해 커다란 주제를 품는다. 최근 10여년 사이에 한국 사회는 점점 일본처럼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 눈에 띄는데 그래서인지 일본 소설이 그리고 있는 세계가 한국인들에게도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한국에서도 이미 <백야행>이 영화화된 바 있고 <방황하는 칼날> 역시 영화화를 앞두고 있다. 2006년에 나오키상을 수상한 [용의자 X의 헌신]은 시차를 두고 일본과 한국에서 서로 다른 느낌으로 만들어졌다. 후지TV에서 방영된 [갈릴레오] 시리즈에서 연결된다고 볼 수 있는 일본판에 비해 한국판은 그 자체로 완결된 한 편의 독립적인 영화로 기획되었다. 제목은 <용의자 X의 헌신>(이하 일본판)과 <용의자 X>(이하 한국판). 한국판에서 '헌신'이라는 단어가 빠진 것은 멜로드라마가 강화되면서 사랑을 헌신으로 단정짓지 않겠다는 의지처럼 보인다. 두 편을 나란히 비교해보자.


감독은 니시타니 히로시와 방은진. 니시타니는 그 유명한 [하얀거탑]의 프로듀서였고 [갈릴레오]를 만든 인연으로 이 영화까지 연출하게 됐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의 연출 스타일정형화되어 있고 짜여진 틀에 집착하는 낡은 방식인 것 같다.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에 비해 수습할 줄을 모른다. 그에 비해 방은진은 히가시노 게이고 입장에서는 제3자이다. 괜찮은 데뷔작이었지만 흥행에선 실패한 <오로라공주> 이후 <시선 1318> 같은 옴니버스의 단편만 만들어오다가 오랜만에 연출로 복귀했다.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배우로서의 경력에 비해 연출력이 과소평가 되었을 수 있겠다. 추리극과 로맨스가 뒤섞인 스토리를 멜로에 좀더 포커스를 두면서 이야기가 훨씬 부드러워졌다. 중구난방이던 스토리가 선택과 집중을 통해 깔끔하게 다듬어졌다. 감정이 폭발하는 라스트씬에서는 <오로라공주>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났는데 방은진은 결말에서 꾹꾹 눌러왔던 것을 터뜨리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


일본판 주연배우는 후쿠야마 마사하루, 츠츠미 신이치, 마츠유키 야스코, 그리고 시바사키 코우. 그에 비해 한국판은 이요원, 류승범, 조진웅이다. 역시 한 명이 빠진 것이 큰 차이점. 일본판에서는 주인공이자 갈릴레오 시리즈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후쿠야마 마사하루. 그러니까 경찰의 조력자이기도 하면서 실질적인 해결사이기도 한 천재 물리학자인 갈릴레오가 당연히 주인공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국판에서는 과감하게 이 인물을 삭제해버리고 형사 조진웅에게 그 역할을 맡겼다. 아마도 일본인 누구도 이런 것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갈릴레오 시리즈에서 갈릴레오를 빼버리다니!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방은진은 제3자다. 갈릴레오에 얽매일 필요 없이 이것은 그저 <용의자 X>라는 독립된 영화일 뿐이다.


마츠유키 야스코와 이요원. 개인적으로 이요원이 훨씬 인상적이고 이 배역에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일단 비중 자체가 다르다. 이요원은 얼떨결에 전남편을 살해하고 시종일관 겁에 질린 표정을 연기했다. 그녀는 류승범과 조진웅 사이에서 흔들리면서도 꾸역꾸역 중심을 잡고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다. 가녀리면서도 굳세보이는 외모가 그 역할에 잘 어울린다. 류승범이 왜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지도 설득력 있다. 공을 많이 들였을 울부짖는 마지막 장면에선 그녀의 감정이 그대로 분출되는데 명장면으로 남을 만하다. 그에 비해 마츠유키 야스코는 이요원에 비해 비중이 크지 않고 또 캐릭터 자체가 수동적이다. 스토리가 그녀를 중심에 놓고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물리학자와 수학자의 대결이이어서인지 그녀는 그저 곁가지처럼 보인다. 수학 문제에서 문제를 풀고 나면 사라지는 변수 x 이상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외모여서인지 첫 장면에서 왜 수학자가 그녀를 돕는지도 잘 납득할 수 없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수학선생 역의 류승범과 츠츠미 신이치. 평생 수학 밖에 모르는 히키코모리. 류승범은 외모와 성격에서부터 전형적인 외톨이처럼 보이려고 캐릭터를 만들었다. 어눌하고, 말 수 적고, 비사교적이고, 여자 앞에서는 쑥맥인 남자. 우리가 고정관념으로 갖고 있는 은둔형 외톨이의 모습 그대로다. 그에 비해 츠츠미 신이치는 부드러운 외모에 마음씨 좋은 아저씨처럼 보인다. 류승범보다 어투가 자연스럽고 친구와도 더 많은 말을 한다. 똑같은 배역이지만 두 배우가 서로 다른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이 부분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만약 한국판에서 츠츠미 신이치 같은 캐릭터였다면 이야기는 지금처럼 긴장감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반대로 일본판에서는 류승범 같은 캐릭터가 아니었기에 더 자연스러워보인다.


캐릭터 자체로 보자면 일본판의 수학선생에서는 더 강인한 의지가 엿보이는 반면, 한국판에서는 의지의 문제라기 보다는 성격적인 결함처럼 보인다. 일본판이 "내 방식대로 내 사랑을 증명하겠어"라면 한국판은 "내가 부족하니 나를 희생해 너를 살리겠어"이다. 아무래도 이것은 스토리의 효율성을 위해 캐릭터를 변형한 데서 오는 반작용 같은 것이다. 멜로 라인을 강화하니 전형적인 멜로영화의 남자주인공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장점도 있다. 캐릭터가 일관성을 갖게 됐다. 류승범은 수영이 취미고 츠츠미 신이치는 등산이 취미다. 그런데 사건에 연결되는 것은 산이 아니라 강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한국판은 일본판에서 잡다하게 늘어져 있던 스토리와 캐릭터의 연결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일본판과 한국판에 대한 총평을 해보자면, 일본판은 지나치게 늘어지고 군더더기가 많고 연출은 투박하다. 첫 장면에서 배가 폭발했다는 뉴스 화면이 나오고 갈릴레오가 그 원인을 설명한다. 그런데 그 장면이 도대체 이 영화와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갈릴레오] 시리즈 애청자에 대한 배려라고 해도 이야기 전개상 어이없는 장면이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질질 끌면서 설명에 설명을 거듭한다. 물리학자와 수학자의 대결로 끌고가지만 수학자가 문제를 내는 장면은 잘 보이지 않는다. 결국 물리학자가 주어진 단서로 답을 찾고 그것을 일일이 설명해준다. 늘어지는 마지막 장면을 과감하게 잘라내면 더 좋을 뻔했다. 그리고 영화가 전반적으로 건조해서 인물들의 감정선을 건드리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나마 마지막에 수학자가 목놓아 우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그에 비해 한국판은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으로 움직인다. 옆집에 사는 남녀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있고 그러다가 어느날 사건이 벌어진다. 남자가 여자의 사건에 개입하게 되는 과정이 자연스럽다. 일본판 물리학자 역할까지 대신하게 된 형사가 알고보니 수학자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다는 사실은 좀 뜬금없지만 그래도 형사의 직감이 물리학자의 논리를 대신한 캐릭터 변경은 좋았다. 논리력이나 직감이나 어차피 살인사건을 추리하는 데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 아닌가. 이 이야기는 물리학과 수학이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학문의 대결이 아니라 결국 수학자로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고 싶은 한 천재의 이야기다. 그 부분에서 영리한 각색이라고 생각한다. 수학자의 헌신적인 사랑, 죄를 뒤집어쓰고 떠나는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의 죄책감, 그리고 친구를 바라보는 형사의 안타까움. 이 모든 것들이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감성적인 로맨스로서 한국판에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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