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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화는 장르가 SF라는 것을 제외하면 그다지 공통점이 없어보입니다. 그런데 두 영화를 묶어서 쓰는 이유는 이 영화들에 요즘 헐리우드가 SF를 다루는 방식이 그대로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루퍼>부터 봅시다. 2044년과 2074년이라는 미래. 배경은 캔자스시티. 주인공은 미래에서 온 자를 죽이는 킬러입니다. 그런데 미래에서 내가 온다면 죽여야 할까? 영화는 이런 의문에서 시작합니다. 조직을 통합한 무시무시한 보스 레인메이커가 미래의 나를 괴롭히는데 미래의 나는 어린 시절의 레인메이커를 찾아서 죽이려고 하고 현재의 나는 그를 보호하려 합니다. 이쯤되면 <터미네이터>도 떠오르고 <엑스맨>도 떠오릅니다.


<토탈 리콜>의 배경은 2084년. 세계는 브리튼 연방과 식민지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브리튼 연방은 서구 문명으로 이루어져 있고 식민지에는 동양문화의 흔적이 넘쳐납니다. 주인공은 브리티쉬 연방의 지배자 코하젠의 이중스파이. 그는 기억을 잃고 식민지에서 브리튼 연방으로 출퇴근하는 로봇공장 노동자로 일하다가 어느날 토탈리콜 사의 기억주입 상품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됩니다.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별거 없죠. <본 아이덴티티>의 제이슨 본처럼 자신이 이중스파이라는 것을 알게된 주인공이 쫓겨다니면서 결국 악당을 죽입니다. 몇몇 장면에선 <마이너리티 리포트>나 <제5원소>의 상상력도 떠오르기도 합니다. 필립 K. 딕의 원작이나 폴 버호벤의 1990년 동명의 영화와 다른 점은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는 장면을 복잡하게 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게 토탈리콜 사의 기억주입 프로그램에 의한 것이었다면서 중간에 비트는 설정도 없고, 화성에 대기권이 생기듯 깜짝 놀랄 만한 반전도 없습니다.





기발한 아이디어만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물론 있기는 하겠죠. 그런데 대부분 용두사미가 되고 말 것입니다. <루퍼>와 <토탈 리콜> 모두 그런 종류의 영화입니다.


<루퍼>에서 30년 후에서 온 나를 죽여야 하는 킬러는 30년을 사이에 두고 동양적인 윤회사상과 연결됩니다. 마치 육십갑자가 반복되듯이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내가 한 공간에서 만난다는 상상력은 아주 멋집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입니다. 이야기에 갈등구조를 만들려다보니 뻔한 존 코너-터미네이터 스토리를 빌려왔고 거기에 너무 의존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후반부에는 주객이 전도되어 악당이 될 아이를 죽여야 하는지 아니면 바르게 키워야 하는지가 이 영화의 주제처럼 보입니다. 그 주제라면 차라리 <케빈에 대하여>를 한 번 더 보는 편이 낫겠습니다. 아니면 비슷한 느낌의 <로스트 룸>처럼 미드로 만들어보는 편은 어땠을까요? 미래에서 죽기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오는 남자의 이야기에 살을 붙여 TV드라마로 만들면 제법 그럴듯한 시리즈가 될 것도 같습니다.


<토탈 리콜>은 원작에 멋진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필립 K. 딕의 소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는 기억이 그 사람을 말해주는 것인지를 묻는 단편입니다. 실제로 그 일을 했든 안했든 기억이 있다면 그 사람의 정체성도 확립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짜 기억을 주입하는 도매상이 있고 사람들은 기억을 사고 팝니다. 이렇게 되면 자신이 누구인지 혼란스럽게 됩니다. <블레이드 러너> <마이너리티 리포트> <페이첵> <넥스트> <임포스터> <컨트롤러> 등 필립 K. 딕 원작 영화의 일관된 주제이기도 하죠. 그런데 영화 <토탈 리콜>은 전통적인 필립 K. 딕의 아이디어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보입니다. 사실 요즘에는 그게 맞는 방향인 것도 같습니다. 이런 주제의 영화는 지금까지 너무 많이 나왔고 또 아류도 많았죠. 비슷한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블레이드 러너>나 1990년 <토탈 리콜>을 뛰어 넘을 수 없겠죠.


주인공의 정체성 대신 영화가 집중하기로 한 지점은 배경의 정치적 함의와 SFX 특수효과입니다. 브리튼 연방과 식민지. 원작에서는 지구와 화성이었는데 이것을 현재의 권력구도에 맞게 살짝 비틀었습니다. 크게 보면 서양과 동양, 혹은 미국과 테러리스트들로 대입해 볼 수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거기에 17초 만에 지구를 관통하는 고속열차 The Fall, 자기부상 자동차, 손바닥에 칩을 넣는 통신기, 얼굴이 자유자재로 변하는 헬멧, 또 모니터를 대체하는 유리까지 (개인적으로 유리를 활용하는 장면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눈을 즐겁게 하는 장치들이 암울한 디스토피아 속에 담겨 있습니다. 다만 신기한 기기들에 신경쓰느라 액션에는 소홀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콜린 파렐의 자동차 추격신은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본 것 같고, 케이트 베킨세일이 등장하는 액션은 <언더월드>를 보는 듯합니다. 또 마지막에 연방의 지배자 코하젠이 왜 굳이 하우저를 찾아와 친절하게 죽어주는 지도 모르겠군요. 그저 구성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장면들처럼 보입니다.


결론으로 넘어가자면, 두 영화 모두 한 가지씩 기발하거나 혹은 기억해둘 부분은 있지만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서는 만족하기 힘든 영화들입니다. 그것은 이 영화들의 장르가 SF라는 것에 너무 집착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볼거리 이전에 스토리. 결국 이것이 모든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의 진리가 아닐까요?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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