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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20년대 미국 오클라호마, 오세이지족이 소유한 땅에서 ‘킹’이라 불리며 권력자로 행세하는 윌리엄 헤일은, 겉으로는 인디언의 후견인을 자처하면서도 뒤로는 그들의 오일머니를 노리고 있는 백발의 백인이다. 그는 조카 어니스트가 1차 세계대전 참전 후 돌아오자 그를 오세이지족 여성과 결혼시켜 인디언들의 오일머니를 가로챌 계획을 세운다.

 


“나는 돈을 사랑해. 몰리도 사랑해. 둘 다 진심으로 사랑해.”

어니스트는 삼촌인 ‘킹’의 제안으로 택시마차 운전을 하다가 오세이지족 몰리를 태운다. 기품 있는 그녀에게 관심이 생겼는데 마침 킹이 그녀와 정략결혼을 하라고 부추긴다. 몰리의 노쇠한 엄마가 죽으면 오일머니 상속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백인들은 다 우리 재산을 노리니까 조심해야 돼. 아무도 믿을 수 없어. 그런데… 그 남자가 잘생기긴 했어. 코요테 같아.”

몰리와 자매들은 돈을 노리고 접근하는 백인들을 경계한다. 하지만 애나는 이미 백인 남자를 만나고 있고 몰리도 어니스트가 싫지 않다. 침묵의 가치를 숭상하는 오세이지족인 몰리는 말 많은 남자는 질색인데 어니스트는 스스로 자신이 과묵한 남자라고 말한다.

엄마와 단둘이 살던 몰리는 누군가를 필요로하고 있었고 결국 어니스트의 구애를 받아들인다. 두 사람의 결혼식이 열리고 화사한 분위기 속에 오세이지족과 백인들이 축제를 벌인다. 그리고 이 날이 두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밝은 날이 된다. 이 날을 기점으로 영화는 급격하게 어두워진다.

 


킹은 몰리의 남편이 된 어니스트에게 인디언 머니의 상속자가 되기 위해선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다그친다. 그러기 위해선 몰리의 경쟁자들을 제거해야 한다. 야만과 법치의 경계가 모호하던 시대, 킹은 사람 좀 죽여봤다고 소문난 자들을 고용해 몰리의 자매들을 처치하려고 한다. 어니스트에게도 폭탄 전문가를 고용해 몰리의 언니 안나를 없애라고 시킨다.

“내가 누군지 알아? 난 프리메이슨 32번째 서열이야. 판사? 검사? 다 내 돈 받아먹고 사는데 감히 누가 날 건드려! 연방정부? 여기는 인디언 땅이야.”
(*프리메이슨은 33번째가 최고 서열이다.)

세상 무서울 것 없는 무법자인 윌리엄 헤일은 그의 말마따나 ‘킹’으로 행세한다. 오세이지족은 인디언에 대한 무차별 살인이 계속되자 부족회의를 소집해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데 이 자리에서도 킹은 태연하게 인디언들의 후원자를 자처하며 범인을 잡을 단서를 가져오는 자에게 큰돈을 내놓겠다고 공언한다.

그러나 킹은 뒤로는 서서히 몰리까지 없앨 계획을 세우고 있다. 어니스트에게 몰리의 당뇨병을 치료하기 위한 인슐린에 약을 타라고 시킨다. 약의 정체가 정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몰리가 중독과 환각 작용을 일으키며 쇠약해지는 것으로 봐서는 마약의 일종으로 보인다. 어니스트는 별다른 의심 없이 몰리에게 약을 준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언니와 동생의 의문사 진실을 밝히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던 몰리는 워싱턴으로 가서 캘빈 쿨리지 미국 대통령을 만난다. 오세이지족에게서 2만 달러라는 당시로선 꽤 큰돈을 정치자금으로 받았던 쿨리지 대통령은 오세이지족 살인사건 수사를 지시하고 당시 FBI 창설을 구상하고 있던 에드거 J 후버는 수사관들을 오클라호마로 보낸다.

연방수사국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영원할 것 같았던 킹의 권세는 점점 위축된다. 수사관들은 청부살인자들을 체포한 뒤 어니스트와 대질심문 끝에 범행 자백을 받아낸다. 위기감을 느낀 킹은 죄가 없다며 당당하게 자수한다. 증인들을 이미 매수했기에 법정에서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낼 자신이 있었는데 문제는 어니스트였다. 언제 팽당할지 몰라 위기감을 느끼던 어니스트는 아내 몰리와 자식들을 위해 킹을 배신하기로 결심하면서 재판은 반전을 맞는다.

러닝타임 3시간 26분에 달하는 영화는 킹과 어니스트가 핍박과 차별에 시달리던 인디언 오세이지족에게 접근해 돈을 빼앗기 위해 살인행각을 벌이다가 붙잡혀 법의 심판을 받는 권선징악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주면서 세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오세이지족과 백인의 대비.

영화의 오프닝은 침략자인 백인들 때문에 생존이 위태로워진 오세이지족이 자신들의 관습을 버리고 백인들의 양식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의식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그들은 용맹하지만 힘이 없었고 소유지에서 나오는 기름으로 부를 거머쥐었지만 호시탐탐 유전을 노리는 백인들로 인해 생명에 위협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분명히 그들 소유의 돈인데도 어딘가에 사용하려면 백인 관리인을 찾아가 허락을 받아야 하는 차별 속에서 살고 있었다(몰리가 사설탐정을 고용하는 장면에서 돈을 쓰기 위해 백인 관리자를 찾아가는데 그는 심지어 KKK 단원이다).

항상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있어서인지 오세이지족은 매사에 신중하다. 자기 주관이 명확하고, 떠들썩함을 경계하고, 침묵을 미덕으로 여긴다. 몰리는 집에서 어니스트와 대화를 나누다가 폭풍우가 몰아치자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한다. 조용해지자 비로소 평화로운 자연의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데 이 소리는 백인들이 마차 경주에서 내던 인공적인 굉음과 대비를 이룬다.

백인들은 오세이지족과 정반대다. 도로의 청년들은 마차 경주를 한다며 시끌벅적하고 마을 사람들은 킹에게 휩쓸리면서 막연하게 한탕을 꿈꾼다.

약하지만 신중한 오세이지족과 야만적이고 생각없는 백인의 대비 속에서 관객은 당하기만 하는 오세이지족에게 감정이입되어 영화를 보는 내내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된다.

 


둘째, 악인 ‘킹’ 윌리엄 헤일과 그의 생각없는 동조자 어니스트의 관계.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한 킹 윌리엄 헤일은 시종일관 나쁘다. 겉으로는 인디언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인자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뒤로는 그들의 돈을 빼앗으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위선자다.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말하며 자신의 권세를 과시하는 뻔뻔한 권력자이기도 하다.

반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어니스트는 킹의 동조자이지만 몰리에게 정략적으로 접근한 것만은 아니다. 그는 킹이 시키는대로 몰리의 자매를 죽이기 위해 킬러를 고용하고 몰리의 인슐린에 약을 탔지만 그 일이 불러올 결과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는 단지 큰돈을 갖고 싶었고 또 그 돈으로 몰리와 아이들과 함께 잘 살고 싶었을 뿐이다.

두 사람은 돈독한 혈연관계로 만났고 킹은 어니스트에게 혈연을 계속 강조하지만, 실상은 이익집단의 보스와 하수인 관계와 다를 바 없다. 킹은 몰리를 죽이려는 것도 모자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어니스트에게 상속권을 포기하라고 종용하기까지 한다. 몰리의 자매들에 이어 몰리까지 죽으면 다음 차례는 자신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들자 어니스트는 법정에서 킹을 배신하기로 마음먹는다. 두 사람 사이 신뢰의 기반은 ‘돈’이었는데 돈을 나눠가질 수 있다는 믿음이 흔들리자 어니스트에겐 더 이상 킹이 삼촌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니스트는 우유부단함을 넘어, 자신이 하는 행동과 그 행동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는 타입의 남자다. 행동이 책임으로 다가올 때가 되자 그는 든든한 뒷배였던 킹에게 의지하려 했다. 하지만 킹이 자신을 겨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비로소 그는 고민 끝에 자신만의 길을 가려고 한다. 몰리가 부족을 지키기 위해 병중에도 사설탐정을 고용하고 워싱턴으로 가서 대통령을 만나며 고군분투하는, 자기 주관이 뚜렷한 여성이라면, 어니스트는 반대로 주관 없이 휩쓸리는 남성의 전형이다.

영화는 생각없는 동조자 어니스트를 용서하지 않는다. 어니스트는 법정에서 자신은 몰리의 상속권 때문에 결혼한 것이 아니라 마차택시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결혼한 것이었다고 강변한다. 영화 내내 어니스트는 킹이 시키는 나쁜 짓들을 다 하면서도 몰리와 아이들만큼은 지키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몰리에 대한 사랑만큼은 진심이라고 말하는 그를 어느 정도는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진심이었든 아니든 어니스트의 결말은 행복할 수 없다.

법정 진술이 끝난 후 몰리는 어니스트에게 모든 진실을 말했는지 묻는다. 그렇다고 하며 이제 속 시원하다는 어니스트에게 몰리는 한방을 날린다.

“나를 사랑한다면서 나를 죽이려고 인슐린에 약을 탔어?”

침묵을 금처럼 생각하던 몰리가 날린 묵직한 한방에 모든 뜻이 담겨 있다. 어니스트는 할 말을 찾지 못해 비참해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어니스트는 아내와 아이 품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게 됐다.

악이 행해지고 있을 때 그것이 악인 줄 알면서도 생각없이 동조한 사람이 어쩌면 악인보다 더 나쁘다. 악은 동조자를 숙주 삼아 더 퍼지기 때문이다.

 


셋째,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는 핍진성.

핍진성은 개연성보다는 유사 현실성에 가까운 개념이다. 영화 속 오세이지족 연쇄 살인사건은 실제로 1920년대 오클라호마에서 있었던 팩트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당시 극장에서 상영했을 만한 뉴스클립들을 정교하게 따로 만들어 영화 곳곳에 삽입시킨다. 관객은 오세이지족의 비극적인 상황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고 있는데 뉴스클립들은 이야기에 현장감을 더한다.

영화는 후반부에 지금까지의 스토리가 라디오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무대 위에서 펼져지는 한 편의 쇼로 보여준다. 관객인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기록되어 지난 100년 동안 후대에 전달되었는지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다. 이 시퀀스의 마지막에는 스콜세지 감독이 직접 출연해 쇼를 마무리하는데 60년 동안 영화를 만들며 이야기의 전달방식을 고민해왔을 노장 감독의 등장은 영화에 진정성을 더한다.

인디언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면 먼 옛날 같지만 고작 100년 전이다. 같은 땅이지만 지금과 그때는 아주 다른 세상이다. 연방정부를 무시할 정도의 지역 권력자가 판치던 시대, 금주법이라는 희한한 법이 살아 있고, 눈에 보이는 온갖 인종차별이 버젓이 존재하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법치든 민주주의든 아직 온전한 체계를 갖추기 전이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1920년대 시대상의 다양한 디테일과 정성스런 연출에 감탄하게 되는데, 이는 영화의 메시지를 진정성 있게 전달하는데 훌륭하게 기여한다.

그 메시지란 바로, 1920년대 미국 땅에서 실제 있었던,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 일방적으로 핍박받으며 살고 있는 약소 민족을 노린 백인들의 계략과 음모, 그리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연방 수사관들의 노력 - 를 잊지 말자는 것이다. 특히 희생자인 오세이지족의 신중함과 지금은 보기 힘든 그들의 아름다운 문화와 이를 계승하려는 노력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에필로그처럼 보여지는, 꽃들이 보름달처럼 만발하는(Flower Moon) 군무는 메시지의 화룡점정이다.

80세가 넘어선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는 점점 더 완벽성을 추구하고 있다. 전작 ‘아이리시맨’도 그랬지만, 긴 호흡으로 관객을 그 시대와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만들고, 그 속에서 한참 머물게 한다.

영화 ‘플라워 킬링 문’은 러닝타임이 길지만, 시대상황의 디테일한 고증, 인물들의 촘촘한 관계, 개연성을 잃지 않는 탄탄한 플롯 등 풍부한 레이어로 인해 전혀 지루하지 않게 즐길 수 있고, 영화가 끝난 후엔 긴 여운을 남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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