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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은 1920년대 무성영화 시대 스타가 1929년 유성영화 등장 이후 몰락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그 시절 스타들은 퇴폐적인 광란의 파티를 즐기고 다음 날 새벽부터 세트장에서 동작과 표정 연기만으로 영화를 찍어냈지만 사운드의 등장 이후 더 이상 그런 방식의 작업은 통하지 않게 되었다. 세트장의 소음은 통제되고 배우들은 대사를 암기해야 했다. 몇 번씩 리테이크를 해야 했고 나중엔 리허설도 해야 했다. 당연히 촬영기간은 늘어났고 돈도 더 많이 투입됐다. 그 시절 스타들은 새로 바뀐 시스템에 적응하기 힘들어했고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고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무성영화 시대 톱스타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 분)는 어느날 극장에 갔다가 관객들이 영화 속 자신을 비웃는 것을 보고 충격에 빠진다. 그는 자신을 혹평한 가십 기자를 찾아가 왜 그런 기사를 썼는지 묻는다. 그와 20년 동안 알고 지냈던 노년의 여기자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잘못한 건 없어.
당신이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그냥 당신의 시대가 이미 끝난 거야.

 

가혹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말에 콘래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쓸쓸이 퇴장한다.

 


스타라는 꽃은 피었다가 순식간에 시들어간다. 스타는 재능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그 시대가 그런 스타를 원하기도 한다. 그래서 꽃을 오랫동안 시들지않게 길러내는 건 재능 외 또다른 능력을 필요로한다.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변화에 능하더라도 톱스타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많은 스타들이 그렇게 사라져갔고 또 새로운 스타가 시대의 부름을 받고 탄생했다.

한달 전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정이’라는 SF영화가 있다. 과도한 신파로 혹평받았는데 이 작품은 고 강수연 배우의 유작이기도 했다. 강수연은 8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였다. 한국 최초로 유럽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그녀다. TV사극에서도 독보적인 카리스마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데 ‘정이’에서 강수연의 연기는 어색하다는 평이 많다. 강수연은 분명 한국 최고의 여배우이자 톱스타였고 그녀의 연기 실력이 줄어서 그렇게 된 건 아니다. 바뀐 건 그녀의 연기가 아니라 시대다. 그렇게 과장된 표정과 동작 연기가 80년대에는 최고로 통했지만 시대가 흘러 요즘엔 맞지 않고 오히려 어색하게 보이게 된 것이다.

 



콘래드에게 냉혹한 현실을 알려주었던 기자는 그가 떠나가기 전 이렇게 덧붙인다.

 

먼훗날 50년쯤 뒤 당신이 죽은 후에
당신이 얼굴도 모르는 미래 아이들이
당신 영화를 꺼내보고 재발견할 거야.
그러니까 당신의 그 재능에 감사해.

 

이 대사는 바빌론을 만든 데미안 셔젤이 자기 자신을 포함한 영화인들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다. 지금 만들고 있는 영화들이 비록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먼훗날 누군가에게 재발견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혹은 희망. 그런 긍정적 마인드가 아마도 계속해서 창작의 수레바퀴를 돌리게 하는 힘 아닐까.

 


데미안 셔젤에게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다. 인생은 짧고 짧은 인생 동안 대단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말이다.

셔젤은 음악을 하다가 영화를 만드는 일을 택했다. 그가 만든 영화들을 보라. 위플래시, 라라랜드, 바빌론 등 모두 창작에 관한 영화들인데 하나 같이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위플래시는 죽어라 드럼 연습하는 영화이고, 라라랜드는 재즈와 영화를 위해서라면 사랑도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영화다.

바빌론은 어떤가. 그는 이번엔 아예 작정하고 영화에 관한 영화, 즉 메타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할리우드를 바빌론에 비유한다. 고대 바빌로니아 최대 도시 바빌론은 휘황찬란한 역사를 자랑했지만 하늘에 닿으려는 인간의 욕심으로 바벨탑을 쌓다가 멸망해버렸다.

 


영화 속 1920년대 할리우드는 소돔과 고모라처럼 퇴폐적인 광란에 휩싸여있다. 서커스 같은 영화 세트장을 보고 있으면 영화의 뿌리가 이런 곳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그 당시를 경험해본 사람들이 실제가 영화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동안 초기 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이 어쩌면 꽤 미화된 채 남아 있었는지 모른다. ‘바빌론’은 그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난장판 같던 할리우드는 점점 시스템을 구축해 간다. 시스템은 스타를 만들고 버리고 또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낸다.

결정적 계기는 항상 새로운 기술의 출현과 관계가 있다. 이건 비단 영화산업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할리우드만큼 그 최전선에 있는 산업도 없을 듯하다.

테크놀로지는 매번 영화산업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유성영화, 테크니컬러, 소형 카메라의 등장, 촬영기술의 혁신, 초대형 스크린, TV의 등장, 터미네이터와 아바타의 CG혁명 등 변화가 있을 때마다 이전까지의 영화는 구닥다리가 되었다.

 

배우들은 더 디테일하게 연기해야 했고, 연기라는 걸 모를 정도로 더 리얼해져야 했고, 심지어 배경도 없는 블루스크린에서 상대 배우를 상상하면서 연기하는 식으로 변화해야 했다. 또 감독은 기술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미디어에 익숙해지면서 촬영과 편집의 리듬을 새로 익혀야 했다.

 


 

라라랜드의 커플처럼, 바빌론의 주인공 남녀는 할리우드에서 성공을 꿈꾼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성공을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그들의 꿈은 전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산산조각난다. 여자의 꿈은 기술의 발전에 가로막히고, 남자의 꿈은 사랑에 저당잡힌다.

무성영화 시대 섹시한 몸놀림으로 깜짝 스타덤에 오른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 분, 실존 배우 클레라 보를 모델로 한 캐릭터라고 한다)는 유성영화 시대가 되자 대사 연기에 적응하지 못해 스타의 자리에서 밀려나게 되고, 콘래드의 로드 매니저로 발탁된 마누엘(디에고 칼바 분)은 영화사 중역의 자리에 오를 정도로 성공가도를 달리지만 라로이를 지키려다가 위기에 처한다.

 

 

테크놀로지의 변화는 그 시절 자신만만하던 인물들을 단숨에 시대의 뒤편으로 휩쓸어가버렸고 그렇게 밀려난 이들은 패배감에 적응 못하고 죽어버리거나 술과 도박에 빠지거나 혹은 업계를 떠난다. 영화는 그 과정을 노스탤지어를 가득 담아 매우 극적으로 보여준다.

할리우드는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흡수하고 또다른 라이징 스타를 키워내고, 관객은 신기술에 흥분하고 새로운 스타를 소비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순간, 버리기를 반복하면서 바빌론의 아성은 유지된다.

 



영화는 3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다. 잭 콘래드, 넬리 라로이, 마누엘 토레스, 레이디 페이 주 등은 모두 당시 실존 인물들에서 따온 캐릭터들이어서 비교해보면서 보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걸작이라고 하기에는 무척 아쉽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는 겉돌고 캐릭터들은 익숙한 길을 간다.

결정적으로 마지막 장면, 마누엘이 한참 세월이 흐른 뒤 영화관에 들러 ‘사랑은 비를 타고’를 보는 장면은 ‘라라랜드’의 마지막 장면에서 미아가 셉스 바에 들르는 장면과 비교하게 되는데 이번엔 지나치게 자의식 과잉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아주 의도적으로 직접적으로 드러내주는 장면인데 지금까지 서사를 무시하고 갑자기 현실로 튀어나가는 장면이어서 상당히 당황스럽다.

데미안 셔젤은 이 마지막 장면을 통해 관객에게 몽타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뤽 고다르가 되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의욕 과잉이어서 2시간 40분동안 쌓아온 캐릭터와 이야기 플롯을 한 방에 무너뜨린다. 이 마지막 장면 때문에 마고 로비의 신들린 듯한 연기도, 브래드 피트의 중후한 매력도, 신예 디에고 칼바의 신선한 모습도 미처 극장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모두 다 거품처럼 사라져버린다. 어쩌면 전부 붕괴시키기 때문에 제목이 바빌론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건 영화를 기억하고 싶은 관객으로서는 너무 실망스러운 엔딩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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