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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감독의 영화 ‘헌트’는 첫 자막에서 ‘허구’임을 명시하고 있긴 하지만 상당 부분은 실제 사건과 매우 유사하게 겹칩니다. 실제 역사 속에 허구의 인물들을 배치해 리얼리티를 높인 일종의 ‘팩션’입니다.

영화는 첩보 스릴러 장르 공식에 충실하게 캐릭터 사이의 협력과 갈등, 사건과 복선 위주로 빠르게 전개되는데 곳곳에선 관객이 당시 시대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생략하며 넘어가는 장면이 꽤 많습니다. 그래서 만약 전두환 대통령의 광주 학살이나 제5공화국의 안기부 조직, 또 1983년 북한과 연관된 주요 사건들을 잘 알지 못한다면 진입장벽이 꽤 높을 수밖에 없는 영화입니다.

전두환이라는 한국 현대사 최대 빌런의 존재를 체감해본 한국인이라면 정우성이 연기한 안기부 김정도 차장이 북한과 손을 잡고서라도 대통령을 제거하려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지만 만약 사전지식이 없다면 김정도의 행동은 극적 반전을 위한 억지 설정으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칸영화제 공개 당시 외신에서 이 영화에 대한 평이 엇갈렸던 것은 아마도 한국 현대사에 대한 사전지식 여부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 글에서는 당시 안기부라는 조직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요 사건들이 실제로는 어땠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전두환 정권때 안기부 차장은 장관급

영화에 등장하는 안기부는 국가안전기획부의 줄임말로 전두환이 정권을 잡은 뒤인 1981년 출범했습니다. 박정희 정권때 중앙정보부의 후신입니다. 대통령 박정희가 중앙정보부 부장이던 김재규에게 살해당한 이후였기에 전두환은 중앙정보부를 해체시키고 새롭게 안기부를 만든 것입니다. 안기부는 김대중 정권 때 해체되고 이름을 국가정보원으로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영화에는 1차장 박평호(이정재), 2차장 김정도(정우성)만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3차장까지 있습니다. 1차장은 해외 정보, 2차장은 국내 정보와 대공 수사, 3차장은 대북 공작 담당이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 과정에서 자행된 정치공작을 뿌리뽑는 의미에서 담당 부서이던 7국과 8국을 폐지하는 기능 조정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1차장은 해외, 대북 정보, 2차장은 방첩, 3차장은 과학 정보 담당으로 바뀌었습니다.

전두환 정권부터 노태우 정권까지 안기부 차장은 장관급이었고 대통령이 직접 임명했습니다. 김영삼 정권때 차관급으로 내려갔습니다. 안기부장은 부총리급에서 장관급으로 격하됐습니다.

 


영화의 배경인 1983년, 실제 안기부 1차장은 현홍주였고 2차장은 박세직이었습니다. 현홍주는 검사 출신이고 박세직은 육군 소장 출신입니다. 영화 속에서 김정도(정우성)가 군인 출신으로 나오는 것도 얼추 얼개가 비슷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영화는 장르적 재미를 위해 두 사람을 무언가 숨은 동기를 갖고 있는 복합적 내면을 가진 인물로 묘사하고 있지만 실제 인물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박세직은 군 재직 당시 전두환 측에게 신군부 반대 세력이 아닌지 의심받던 전력이 있는 인물인데 오해라는 것이 밝혀진 뒤 예편해 안기부 1차장로 발탁됐고 이후 충성을 다합니다. 그는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테러 사건 당시 조사단장으로 버마(미얀마)에 파견돼 사태를 수습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후 승승장구해 1986년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 1988년 안기부장, 1990년 서울시장, 1992년 국회의원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합니다. 현홍주 역시 1988년 법제처장, 1991년 주미대사, 1993년 김앤장 변호사 등으로 잘 나갔습니다. 영화에서처럼 대통령 암살을 기획하거나 북한 스파이일 확률이 제로에 가까운 인물들로 당시 전두환이 임명한 전두환의 충견들이었습니다.

‘헌트’처럼 측근이 독재자를 암살하려는 영화 중 하나인 영화 ‘작전명 발키리’에선 히틀러의 직속 부하인 폰 슈타펜버그 대령이 히틀러 암살 음모를 꾸미는데 이는 실화에 기반한 것이었죠. 하지만 ‘헌트’에서 두 안기부 차장이 대통령 암살 시도와 연관되어 있다는 설정은 완벽한 허구입니다. 그럼에도 주인공으로 안기부의 두 실세를 상정한 것은 안기부가 비밀에 쌓인 조직이었기에 오히려 더 자유로운 상상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귀순한 북한군 조종사를 취조하는 김정도 차장

 

짧지만 강렬했던 북한군 조종사 이웅평의 등장

영화에서 깜짝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는 탈북민 이웅평을 모티프로 한 북한군 조종사입니다. 황정민이 카메오 출연했는데 미친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황정민을 비롯해 이성민 허성태 등 영화에는 얼굴이 잘 알려진 배우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양날의 검입니다. 관객들에게 친밀감과 안도감을 주는 반면, 배우와 역할을 혼동해 관객이 극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황정민이 등장할 때 스토리를 따라가던 흐름이 살짝 깨진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연기는 너무 실감나게 잘했지만 실제라기보다는 너무나 영화처럼 보였다고 할까요? 황정민을 취조하는 사람이 정우성이 아닌 이정재였다면 곧바로 ‘신세계’ 속편처럼 보였을 것 같기도 합니다. 가뜩이나 안기부 투톱이 이정재, 정우성이라는 비현실적 외모를 가진 인물들인데 황정민을 이렇게 쓴 것은 과하지 않았나 생각이 드네요.

영화에서 북한군 조종사는 김정도에게 간첩을 색출할 수 있는 암호가 담긴 중요한 단서를 건네준 뒤 퇴장합니다. 박평호와 김정도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시점에서 중요한 돌파구를 열어준 장면이고, 한편으로는 후반부에 전쟁 위협이 고조되고 있다는 설정을 뒷받침해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러닝타임으로는 매우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장면이었습니다.

 

수원비행장에 착륙해 미그기에서 내린 이웅평


실제로 이웅평은 1983년 2월 소련제 미그 19기를 몰고 귀순했습니다. 귀순 당시 북한군 공군 상위(대위)였습니다. 북한에서 남한 방송을 청취하면서 남한 사회를 동경해왔고 1982년 10월 중공 미그 19기의 대만 망명을 위한 남한 귀순 사건을 보면서 자신도 남한으로 귀순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영화 속에서 황정민은 귀순 동기로 라면 봉지에 적힌 유통기한 이야기를 꺼내는데요. 이는 이웅평의 증언 기록에서 따온 것입니다. 그는 함경북도 바닷가에서 주은 삼양라면 봉지를 보면서 “남한은 이런 세세한 것까지도 신경쓰는데 지상낙원이라 선전하는 북한은 무엇이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이 귀순하게 된 결정적 동기라고 말했다는 기록입니다. 하지만 이웅평은 훗날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삼양라면 이야기는 안기부에서 꾸며낸 이야기일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이웅평이 귀순한 날 마침 한미 연합훈련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오전 10시 30분 북한 공군 편대를 이탈한 이웅평의 미그 19기가 북한군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저공비행으로 남하해 연평도 상공으로 내려오자 한국의 F-5 편대가 출동했습니다. 이때 이웅평은 미그기 날개를 좌우로 흔들어 귀순 의사를 밝혔고 F-5 조종사 박종헌 소령은 미그기를 수원비행장으로 유도해 착륙시켰습니다. 이때 민방위 관계자가 “북한 전투기가 인천을 폭격하고 있다”며 수도권에 경계경보를 발령해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영화에는 이 장면이 실감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귀순한 이웅평의 기자회견


이웅평은 자신이 가져온 미그 19기의 대가로 15억 6천만원을 받았습니다. 현재로는 60억원의 가치가 있는 돈입니다. 이 전투기 기체는 현재 용산 전쟁기념관에 전시돼 있습니다.

그는 귀순한 뒤 한국 공군 소령으로 특별임관돼 군생활을 계속했고 1984년엔 공군사관학교 교수의 딸과 재혼도 했습니다. 한국은 북한에 체제 우위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이웅평을 환대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 남아있던 그의 가족은 수용소에 수감되었고 부모는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이웅평은 평생 이를 괴로워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공군 대령까지 진급한 뒤 공군대학 교관으로 활동하다가 간기능부전증으로 2002년 사망했습니다. 북한에 남은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언제 북한이 자신에게 보복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던 그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폭음했는데 이것이 건강 악화의 원인입니다. 그의 시신은 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습니다.

'헌트'의 아웅산 국립묘지 폭탄테러 장면

 

태국으로 바뀐 아웅산 국립묘지 테러사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태국에서 벌어집니다. 실제로는 한국에 세트를 지어놓고 촬영한 이 장면에서 박평호와 김정도는 서로 다른 동기와 목적을 갖고 대통령을 맞이합니다. 김정도는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북한의 첩보를 입수하고 이를 묵인해 독재자를 제거하려 하는 반면, 박평호는 대통령 암살 뒤 북한이 남침할 거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전쟁을 막기 위해 대통령을 경호하기 위해 사력을 다합니다.

이 사건은 1983년 실제로 있었던 미얀마(버마) 아웅산 국립묘소 폭탄테러 사건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장소를 태국으로 바꾸었을 뿐 숲속에서 기폭장치로 폭탄을 터뜨린 것이나 애국가가 나온 뒤 테러를 감행한 설정 등은 실제와 매우 유사합니다. (참고로 영화 속 태국 장면은 모두 한국에 세트를 짓고 촬영한 것이라고 합니다.)

1983년 10월 9일 전두환은 동남아 순방 첫 번째 일정으로 미얀마 양곤을 찾았고 버마의 독립 영웅 아웅산 국립묘지를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북한 공작원들은 전두환 방문 보름 전 미얀마에 도착해 테러 3일 전 묘소 건물 천장에 폭탄을 설치했습니다. 인근 숲속 먼거리에서 원격으로 터뜨릴 수 있는 폭탄이었습니다. 10시 30분에 태극기를 휘날리는 벤츠 차량이 들어가고 애국가가 나오자 테러범 신기철은 전두환이 도착한 걸로 착각해 폭탄 3개를 터뜨렸습니다.

전두환은 현장에 4분 늦게 도착해 화를 면했는데 이는 동행하기로 한 미얀마 외무장관의 차가 고장나 지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현장에 먼저 도착한 이계철 대사가 마침 전두환과 비슷한 대머리에 안경까지 쓰고 있었기에 테러범들이 오인한 측면도 있습니다. 폭탄이 터지면서 한국인 17명과 미얀마인 4명이 사망합니다. 서석준 경제부총리,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 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등이 즉사했습니다. 폭탄테러 이후 전두환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곧바로 귀국합니다.

 

당시 폭탄 테러로 사망한 고위 관료들의 마지막 모습


범인이 북한 공작원들이라는 사실은 미얀마 정부의 추척 끝에 밝혀졌습니다. 당시 북한은 그들의 소행이 아니라 남한의 자작극이라며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하지만 김정일이 김일성의 허락을 받아 일으켰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미얀마는 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과 국교를 단절하고 북한 외교관들을 추방합니다.

테러범 3명 중 신기철은 체포된 후 도주하다가 총격으로 사망했고, 김진수는 사형을 선고받고 집행됐으며, 강민철은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수사에 협조해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25년간 수감생활을 하다 2008년 간암으로 사망했습니다.

 

폭탄 폭발로 폐허가 된 아웅산 국립묘지


강민철이 수사에 협조해 감형된 과정에는 석연치 않은 의문점이 남아 있습니다. 강민철은 초기 진술에서 자신이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안기부 직원을 만난 뒤 개성 출신으로 진술한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 의문은 북한이 이들을 남한의 북파 공작원이라고 주장하게 된 빌미가 됐습니다.

미얀마에서 전두환이 살아남은 것은 천운이었습니다. 그가 4분 지각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에 대통령 유고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영화에서처럼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1983년 10월 당시는 냉전 시대였고 미국은 그레나다 공산화를 막기 위해 침공을 준비하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겨우 살아남은 전두환이 귀국한 이후 북한에 보복 응징해야 한다는 주장이 들끓었습니다. 이때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감돌며 데프콘 3단계까지 발령됐는데 이는 한국전쟁 이후 단 두 번밖에 없던 일입니다. (첫 번째는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입니다.) 하지만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유치해놓고 있던 전두환 입장에서 전쟁은 자폭행위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는 국민 담화를 통해 "마지막 인내"라고 말했고 다행히 전쟁 위기는 가라앉았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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