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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가장 어린 디에고 리카도가 18년 4개월 2일 16시간 8분을 일기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2006년에 세상에 나온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은 뉴스 아나운서의 담담한 목소리로 시작한다. 디에고가 태어난 뒤 18년 동안 지구에서 태어난 아이는 한 명도 없다. 영화 속 배경인 2027년 현재 인류는 서서히 다가올 멸종을 기다리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정부가 붕괴된 가운데 아직 정부 기능이 남아 있는 영국으로 이민자들이 몰려든다. 도시 곳곳이 난민 캠프화 되어가고 억압적인 정부에 맞서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한 반군이 게릴라 전투를 펼치고 있다.

 

테오 역할의 클라이브 오웬

 

클라이브 오웬이 연기한 주인공 테오는 한때 반체제주의자였으나 2008년 독감 팬데믹(코로나 예언?)으로 아이를 잃은 뒤 체념해 공무원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는 반체제 집단 리더인 별거중인 아내 줄리안(줄리안 무어)을 통해 불법 이민자 흑인 여성 키(클레어 호프 애쉬티)를 알게 되는데 키는 임신 8개월째다. 테오는 줄리안의 부탁을 받고 인류 희망의 열쇠일지도 모를 키와 아이를 불임을 연구하는 비밀 과학단체 ‘휴먼 프로젝트’로 인계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지구의 지배자가 된 인간이 언젠가 모두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역설적으로 인간 진화를 이끈 추진력이었다. 인간은 자기보다 덩치가 큰 동물을 거의 전부 멸종시켰고 전쟁 대신 평화가 지속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수천 년간 시행착오를 겪어왔는데 그 바탕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두려움을 기반으로 인간은 다양한 종말론을 만들어왔는데 후세를 남기지 못해 멸종한다는 ‘칠드런 오브 맨’의 설정은 신선하다. 1798년에 인구폭증을 경고하며 ‘인구론’을 쓴 멜서스가 봤다면 어안이 벙벙했을 이 이야기는 그러나 전 세계 인구 상승곡선이 점점 완만해지고(유엔은 전 세계 인구가 2100년 110억 명에서 정점을 찍고 줄어들 것으로 예측한다) 환경오염, 스트레스 등 규명되지 않은 여러 이유들로 인해 많은 국가에서 불임과 난임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예언적인 미래로 보이기도 한다. 저출산이 장기화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출산율이 2020년 여성 1명당 0.84명(통계청 자료)까지 떨어졌기에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영화에서 불임의 원인은 제시되지 않는다. 어느 날부터 갑자기 여성들이 임신하지 않았다. 키를 돌보는 조산사 미리암은 산부인과에서 일할 때 임신부들의 유산이 늘어나더니 산모가 뚝 끊겨 일자리를 잃었다고 말한다. 환경 호르몬의 영향일 수도 있고 전염병 탓일 수도 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음으로서 관객이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를 남기는 것을 좋아하는 감독이다. 영화의 원작인 1992년 영국 작가 필리스 도로시 제임스가 쓴 동명 소설에도 불임의 원인은 명확히 나오지 않는다. 다만 남성의 정액에서 정자 수가 갑자기 0이 되며 임신이 사라졌다는 묘사는 있다.

 

 

 

종말이 예고되어 있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소설과 영화는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그리고 있다. 재산이나 권력을 물려줄 후손이 없으니 자연파괴와 새로운 개발, 탐욕을 멈추고 각자 행복하게 늙어 죽는 아름다운 멸종은 나이브한 환상이라는 듯 소설과 영화 속 인간군상은 남은 시간 동안에도 서로 짓밟고 대결한다.

 

특히 세대 갈등과 난민 문제가 심각하게 묘사된다. 사회에서 영원한 막내인 젊은 사람들은 나이 든 사람들을 무시하고 노인들은 사회에서 짐으로 여겨져 철저히 소외당한다. 2021년(공교롭게도 현재!)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 출생 가능했던 마지막 해인 1995년에 태어난 사람들은 ‘오메가’라고 불리는데 이들은 사치스럽게 살고 폭력적이고 불안정하지만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기 때문에 모든 처벌을 면제받는다. 반면 60세가 넘어 더 이상 노동력을 제공할 수 없는 사람들은 ‘Quietus’라는 합법적 정부 기관에서 자살하기를 강요당한다. 노인을 돌볼 인구가 절대 부족해 요양원은 극소수 특권 계층만 이용할 수 있다.

 

영화는 소설보다 난민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국가 기능이 마비된 곳에서 탈출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영국에선 반체제 테러집단이 기승을 부린다. 20세기 말에 쓰인 소설은 전제군주처럼 행세하는 총통이 이민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마음먹으면 언제든 추방할 수 있는 것으로 묘사했지만 21세기 초에 만들어진 영화는 유럽의 사회 문제가 된 이민자 문제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재구성해 정부군과 테러집단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

 

 

인류의 희망이 될 새로 태어난 아기를 누가 임신해 어디로 데려가는지도 소설과 영화가 전혀 다르다. 소설에선 백인 여성 줄리안이 임신해 아들을 낳지만 영화에선 흑인 이민자인 키가 딸을 낳는다. 줄리안의 아기는 총통의 독재 체제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줄리안과 함께 총통에 맞서 싸운 테오는 아기에게 세례를 내려주며 새로운 아담의 탄생을 알린다. 반면 영화는 체제 전복에는 관심이 없다. 지옥 같은 전쟁터를 빠져나가 비밀 과학단체에 키와 아기를 인계하는 것이 테오의 임무다. 영화 속 테오와 줄리안은 인간 멸종위기를 불러온 불임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과학뿐이라고 믿고 있다. 험난한 길을 뚫고 과학자에게 도달하는 과정에 기독교의 예수 탄생 스토리가 후광처럼 암시된다.

 

줄리안 역할의 줄리안 무어

 

영화에서 키는 마굿간처럼 허름한 아파트에서 아기를 낳더니 테오에게 “처녀인 것 몰랐어요?”라고 농담한다. 21세기 성모 마리아가 흑인인 것은 고정관념을 깬 시도다. 정부군과 반군의 전투가 한창인 빌딩에 테오와 키가 고립돼 빠져나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 때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자 모두들 총을 내려놓는 영화의 명장면 역시 매우 종교적이다. 그들은 메시아를 본 듯 감격스런 표정으로 아기를 향해 성호를 긋고는 나지막이 ‘지저스’를 외친다. 키는 미켈란젤로가 빚은 피에타 조각상의 성모 마리아처럼 아기를 품에 안고는 기적적으로 전쟁터를 빠져나와 ‘투머로우호’를 찾아간다.

 

키 역할의 클레어 호프 애쉬티 

 

소설과 영화는 제각각 작품이 태어날 때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소설을 쓴 제임스는 2014년 작고하기 전 영화를 보고 자신이 만든 세계와 너무 달랐지만 만족스러웠다는 평을 남겼다. 소설은 2019년 BBC가 ‘역대 가장 영향력 있는 영어권 소설 100편’에 선정할 정도의 명저로 평가받고 있고 영화 역시 롤링스톤의 피터 트래버스을 비롯한 많은 평론가들이 2000년대 최고의 걸작 중 한 편으로 꼽고 있다.

 

소설과 영화는 절망적인 미래에서 한줄기 희망의 빛을 남기며 마무리된다. 그 빛은 갓 태어난 아기에게서 나온다. 사람들은 더 이상 아무도 태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해 갈등을 일으키고 곪아버린 사회문제를 방치해버렸지만 극한으로 치달은 갈등을 기적적으로 멈추게 하는 것은 결국 새로운 생명 그 자체다.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걸려있는 식탁

 

정치 경제 사회 윤리 문화 등 우리가 만들고 유지하는 거의 모든 것들은 세대가 계승된다는 가정 하에서만 가치가 있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는 테오가 반달리즘으로부터 문화재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사촌을 만날 때였다. 그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피카소의 ‘게르니카’, 뱅크시의 ‘키스하는 경찰’ 등을 넓은 저택에 보관하고 있다. 그는 사명의식이 있어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공무원으로서 맡은 업무일 뿐이다. 그래서 미술관이 아닌 커다란 식탁 뒤에 배경으로 ‘게르니카’가 걸린 장면은 고려청자에 물을 따라 마시는 상상만큼이나 조마조마하게 다가온다.

 

 

 

인류가 수천 년간 쌓아온 놀라운 문화유산은 그러나 인간이 사라지고 나면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된다. 설사 훗날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작품들을 발견한다고 해도 의미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왜 중요한지 모를 것이다. 결국 지난 수천 년간 인간이 만들고 지켜온 것들은 인간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서만 가치가 있다. 아무리 미워하고 대립해 죽고 못 살 것 같아도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

 

저출산이 장기화되는 시대에 인류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적정한 수의 인구를 유지해야 한다. 영화에서처럼 총성을 뚫고 울려 퍼지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곧 희망이다. 출산율이 매년 뚝뚝 떨어져가는 한국에도 희망의 ‘투머로우호’가 기적처럼 찾아오기를 기대해본다.

 

** BBB에 기고한 글입니다.

 

 

 

PS-1)

‘칠드런 오브 맨’은 구약성서 시편 90장 3절에서 가져온 제목이다. 영어로는 “Thou turnest man to destruction; and sayest, Return, ye children of men. 인간을 티끌로 만들고는 말하기를, 인간의 아이들로 돌아가라.”

 

PS-2)

영화의 클라이막스인 롱테이크 장면은 엄청난 노력의 산물이다. 테오가 빌딩을 수색하고 키와 함께 빠져나오는 이 장면을 찍기 위해 제작진은 14일 동안 현장을 준비했고 재촬영할 때마다 5시간동안 재정비했다. 한 번은 카메라 렌즈에 피가 튀어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롱테이크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촬영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5개의 테이크를 기술적으로 한 개의 숏처럼 감쪽같이 이어붙인 것이다.

 

PS-3)

키의 출산 장면에서 아이의 머리가 질을 빠져나오는 사실적인 묘사는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장면이다. 처음에 쿠아론 감독은 아기 인형과 키의 다리 모형을 만들어 촬영을 끝냈으나 CG 효과가 더 만족스러워서 후반작업 때 대체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

 

PS-4)

영화에는 기독교적인 색채가 상징적으로 녹아들어있다. 반체제 난민 테러리스트 이름이 ‘피쉬’인 것, 헛간에서 키가 임신을 테오에게 밝히는 것, 테오가 키에게 아빠가 누구냐고 물을 때 처녀라고 농담하는 것, 싸우던 사람들이 일제히 총을 내려놓고 ‘지저스 크라이스트’를 외치거나 손가락으로 성호를 긋는 것, 대천사 가브리엘이 버스 장면에 나타나는 것 등이다.

 

쿠아론 감독은 작곡가 존 타브너에게 음악을 맡기면서 신의 눈으로 본 모성, 출생, 부활, 구원에 맞춰 테마를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다. 그래서 매우 성스러운 음악이 탄생했다. 가사에는 라틴어와 산스크리트어로 “어머니를 보호하소서" 같은 내용을 담았다.

 

테오의 친구 재스퍼 역할을 맡은 마이클 케인

 

PS-5)

테오의 나이 든 절친 재스퍼는 테오와 키가 찾아왔을때 이렇게 말한다. "샨티, 샨티, 샨티" 이는 '평화'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로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 마지막 줄에 나오는 문구다. 우파니샤드 힌두 철학에 등장해 힌두교도들이 기도할때 시작과 끝에 낭송하기도 한다.

 

쿠아론 감독은 키가 아이를 안고 전쟁터를 빠져나가는 장면을 발칸 전쟁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의 사진을 모티프로 했다고 밝혔다.

 

난민 캠프 장면과 전투 장면에선 시네마 베리떼 형식을 차용했다. 감독은 ‘알제리 전투’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특히 난민캠프 장면은 이라크 전쟁과 나찌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받았다.

 

PS-6)

 

쿠아론 감독은 런던 이외의 장소를 고려하지 않았다. 제작 준비 기간에 런던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제작에 차질을 빚을 뻔했지만 감독은 촬영 계획을 바꾸지 않았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런던 중심 플리트 스트리트 커피숍 폭탄 테러 장면은 실제 테러 발생 후 한달 반만에 촬영한 것이다.

 

영화에는 트라팔가 스퀘어처럼 런던의 명소들이 디스토피아 버전으로 등장한다. 테이트 모던을 참고해 만든 배터시 화력발전소는 영화에서 멋지게 디스토피아를 구현한다. 감독은 2027년 런던을 구현하기 위해 ‘시계태엽 오렌지’를 참고했다. 영화에 거대한 돼지 풍선이 떠다니는 장면은 핑크 플로이드의 '애니멀' 음반에 오마주를 바친 장면이다.

 

엠마누엘 루베즈키 촬영감독

 

PS-7)

영화에서 극찬을 받은 장면 중 하나는 자동차 추격신이다. 엠마누엘 루베즈키 촬영감독은 줄리안과 테오, 루크, 키, 미리암이 차에 타고 있을 때 갱단의 습격을 받는 이 장면은 기존 액션 문법과 다른 각도로 촬영해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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