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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일 런던 영국영화협회(BFI)에서 열린 틸다 스윈튼 회고전에 봉준호 감독이 참석해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설국열차’와 ‘옥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계기, ‘설국열차’와 ‘옥자’에서 틸다 스윈튼 캐릭터를 어떻게 설정했는지, 봉 감독이 두 영화를 만든 첫 아이디어, 그리고 ‘설국열차’ 북미 배급을 담당했던 하비 와인스타인과의 갈등 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있었던 봉 감독과 틸다 스윈튼 이야기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봉준호


Q 만화의 어떤 점을 보고 영화로 만들고 싶으셨나요?


봉준호: 원래 컨셉이 진짜 미쳤어요. 정말 이상한 아이디어죠. 모든 생존자가 달리는 기차 안에 있어요. 부자는 앞에, 가난한 자는 꼬리칸에 있죠. 이게 80년대 중반에 나온 이야기인데 보편적이고 영원한 주제를 우리가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한 벗어날 수 없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차가 1년에 한바퀴 돌아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등 여러가지 설정들은 제가 새로 만들어낸 게 많은데 일단 기본 발상 자체가 위대하고 독특하죠.



Q 두 분은 '옥자'에서도 함께 하셨죠. 두 영화 모두 지구 종말을 다루고 있어요.


봉준호: 동물보호운동하는 제 사촌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세계에 깊게 빠져들게 됐는데요. 그런 주제적인 것도 있지만 사실 틸다와 다시 작업한다는 것, 특히 틸다가 1인 2역 쌍둥이로 나온다는 게 더 저를 자극했죠. 그런 영화적 욕심 때문에 만들게 된 것 같아요. '옥자'도. '옥자'는 처음 창작하는 과정부터 함께 했거든요. 영화 크레딧에도 공동 프로듀서로 올라가 계시죠.


틸다 스윈튼: 처음 우리가 알게 됐을 때 굉장히 빨리 꽂혔죠.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처럼 좋아하는 영화를 늘어놓고요. 우리는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특히 '이웃집 토토로'에 대해서요. 봉 감독이 '설국열차' 서울 시사회가 끝나고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사진 한 장을 보여줬어요. '이웃집 토토로'에서 커다란 토토로와 소녀가 나오는 사진이에요. 전 그 자리에서 바로 매료됐죠. 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쌍둥이 자매에 대해서도 많이 얘기했어요. 그래서 미란다 자매도 쌍둥이로 설정했죠.


봉준호, 틸다 스윈튼, 통역사 노세현


Q 두 분 처음에 어떻게 만나셨나요?


봉준호: 2011년 칸영화제에서 처음 만났어요. 저는 신인감독상 카메라도르의 심사위원이었고 틸다는 린 램지 감독의 '케빈에 대하여'로 초청받아 왔어요. 자연스럽게 만나서 아침 식사를 먹었죠.


저는 당연히 오래 전부터 팬이었고 서울에 있는 작은 극장에서 '올란도'가 개봉했을 때 생생한 기억이 있었죠. 틸다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틸다 스윈튼: 저는 특별하게 기억나는 게 있는데요. 뉴욕에서 누군가와 함께 아침을 먹으러 갔는데 카페 화장실 앞에서 문 열리길 기다리고 있는데 뉴요커 매거진이 있더라고요. 거기서 앤서니 레인이 쓴 '괴물' 리뷰를 읽었어요. 대단한 평론이었죠. 그래서 이 영화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고 바로 봤죠. 그 다음에 저는 당신이 만든 영화를 다 봤어요. '플란다스의 개'를 포함해서요. '살인의 추억' '마더' 등 모든 영화가 마스터피스예요.



Q '설국열차' 메이슨 장관 캐릭터를 어떻게 만드셨나요?


틸다 스윈튼: 이건 판타지로 가는 프리패스예요. 악한 권위자를 그릴 때 뭐든 할 수 있는 거죠. 콜로넬 가다피, 이디 아민 같은 독재자를 생각했어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도 있었고 마거릿 대처도 있었죠.


독재자를 찾는 사회에는 어떤 경향이 있어요. 오히려 웃기고 즐겁게 보죠. 광대처럼요. 메이슨 캐릭터는 그런 구조물이에요. 가짜 치아, 우스꽝스런 안경, 고정되지 않고 움직이는 가발... 재미있죠.


봉준호: 시작점이 있었잖아요. 기억해요? 독특한 메이슨 장관 외모의 레퍼런스가 있었어요. 새 박물관에서 일하는 여자 분의 사진이었어요. 그분 가발, 안경, 얼굴 느낌이 되게 독특했어요. 거기서 출발해서 저랑 프로듀서랑 캐서린 조지(의상 디자이너)랑 같이 틸다의 집에 가서 하루종일 온갖 걸 다 해본 거죠. 일종의 라이브 쇼 같은 느낌이었어요.


틸다 스윈튼


틸다 스윈튼: 우리는 집에서 점심을 함께 먹고 거실에서 계속 차려 입어봤죠. 8살짜리 아이처럼 놀이를 했어요. 그런데 꽤 진지하게 아이디어를 찾으려 했어요. 예를 들어 가짜 훈장 같은 거죠. 그런데 사실 그들은 그들 자신에게 훈장을 주잖아요. 가다피는 자신에게 명예훈장을 줘서 제복에 덕지덕지 붙이고 다니죠.


봉준호: 그런데 이 인물의 출신은 노동자 계층일 것이다. 아마 저 뒤쪽 칸에서 청소하던 사람이었는데 윌포드의 눈에 띄어서 계속 신분 상승을 했을 것이라고 정의했죠.


틸다 스윈튼: 메이슨은 대처가 연설을 하거나 머리를 매만지기 전에 했을 만한 것들을 하고 있죠. 아주 미숙한 것들이요. 당신은 그걸 편집하지 않았어요. 하고 싶은 만큼 과장했어요.


봉준호: 영화에서 그녀의 첫 이미지가 굉장히 중요했어요. 영화는 꼬리칸에서 시작하는데 그땐 앞칸 부자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죠. 그런데 메이슨의 모습 자체가 앞칸의 모습을 연상케 해주죠. 크리스 에반스가 전진하는 만큼만 우리가 기차칸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메이슨의 외모가 중요했어요. 앞쪽 세계를 상징하는 거니까요.



Q 권위자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하비 와인스타인과 일한 적 있으시죠. 어떤 곳에서는 이 영화를 보기 어려웠던 이유가 그가 25분을 잘라내려 했다면서요?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처음에 나오는 생선 장면을 반대했다던데요?


봉준호: 아주 오래 전인데요. 저와 촬영감독은 큰 물고기가 나오는 장면을 아주 좋아했어요. 냄새가 너무 세서 촬영 현장에선 힘들었지만 그 이미지 자체를 좋아했는데 와인스타인이 그걸 자르려고 했죠. 그뿐 아니라 많은 곳을 자르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그에게 이건 개인적인 장면이라고 했죠. 이건 내 아버지에게 바치는 장면이라고요. 아버지가 어부였다. 근데 그건 젠장 거짓말이었어요. 제 아버지는 사실 그래픽 디자이너였어요. 어쨌든 죄송하네요.


그가 "왜 빨리 말하지 그랬냐, 가족이 제일 중요한 거니까 절대 자르면 안 된다" 라고 이야기를 하셨죠.


봉준호, 틸다 스윈튼, 통역사 노세현


틸다 스윈튼: 하지만 나중에 몇 년 후에 발견했는데 그가 결국 20분을 잘라냈어요.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을 위한 스크리너가 편집돼 있더라고요.


봉준호: 당시 25분 편집된 버전의 상영이 있었어요. 뉴저지 파라무스 극장에서 '설국열차' 축소판을 테스트 상영 해본거죠. 200명 이상의 관객이 영화를 평가했어요. 그런데 다행히 점수가 낮게 나오더라고요. 아주 많이 잘려나가서 전체 이야기를 이해하기 어려웠거든요. 점수가 낮아서 저와 프로듀서는 아주 행복했어요. (감독판으로 개봉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와인스타인 씨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오, 점수가 낮군. 더 자르자."


하지만 어쨌든 결국 해피엔딩이었어요. 소규모 개봉을 하게 됐지만 어쨌든 감독판으로 개봉을 했으니까요. 그분 입장에선 그게 처벌이었을 수 있겠지만 우리 입장에선 되게 기쁜 거였죠.


틸다 스윈튼: 이게 정말 해피엔딩이 되려면 영화가 이 나라에서 제대로 개봉해야죠. 언젠가는요. 그러길 바래요.



‘설국열차’는 미국에서 소규모 개봉했고 영국에서는 개봉하지 않았습니다. 하비 와인스타인이 25분 이상 편집을 주장할 때 틸다 스윈튼과 존 허트는 감독판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와인스타인은 영화를 감독판으로 개봉하는 조건으로 소규모 제한 상영만 하기로 결정합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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