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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 칸영화제부터 올해 2월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6개월 이상 계속된 오스카 캠페인에서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기생충팀의 통역사로 활약한 샤론 최가 2월 18일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에 장문의 기고문을 실었습니다.



기고문에서 그녀는 지난 시간에 대한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는데요. 요약해서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 버라이어티 바로가기



"The past six months has been a blur of new cities, microphones and good news, with endless orders of honey lemon tea as I tried to preserve my voice. Driven from one crowd to the next, I shook hands with hundreds of people whose eyes shone with the excitement of having watched a special film. Moments alone were still riddled with the absurdity that I was sharing hand sanitizers with a man whose films I’d organized movie nights for in college. Somehow, despite having only micro-short films to my name, I got sucked into the heart of Hollywood."


지난 6개월은 새로운 도시, 마이크, 좋은 뉴스, 그리고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주문한 허니레몬티와 보낸 시간이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 악수하고 눈을 마주치며 놀라운 영화에 대한 흥분을 나눴다. 난 고작 아주 작은 단편영화 한 편을 만들었을 뿐이지만 할리우드의 중심에 섰다.



"In April of 2019, I received a last-minute email asking me to interpret a phone interview with Bong Joon Ho. I had already missed the interview, thanks to a night spent in crunch mode staring at the blinking cursor on a pilot script. It took every professional fiber in my being to erase all of the exclamation marks and reply with, “I am available for future calls so please let me know.” A few days later, another request came, and soon I was sitting at my desk with my favorite notepad and pen, praying that my nervous bladder would be quiet for the next hour. My interpreting experience prior to this amounted to just a week, mostly with director Lee Chang Dong for his snubbed masterpiece “Burning.” So when I missed an obscure film reference made by director Bong during the call, I was sure another interpreter would get the chance to be afraid of the bathroom."


2019년 4월 봉준호 감독의 전화 인터뷰 통역을 맡아달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당시 나는 각본을 쓰기 위해 깜빡이는 커서를 쳐다보느라 밤을 지새운 뒤여서 그 인터뷰를 놓쳤다. 뒤늦게 나는 "다음 전화는 가능하니 연락 달라"고 답장했다. 며칠 후 제안이 또 왔다. 난 노트패드와 펜을 준비하면서 한 시간 동안 내 방광이 버텨주기를 기도했다. 내 통역 경험은 이창동 감독의 마스터피스 '버닝' 프레스 투어에서 일주일 동안 통역사로 참가한 게 전부였다. 전화 인터뷰 동안 나는 봉 감독이 참조했다고 언급한 영화 몇 편을 놓쳤고 그래서 "다음 인터뷰는 다른 통역사에게 가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Translations are sacred,” Bong once declared, through Steven Yeun’s arm in “Okja.” But the stars seemed to align when I got asked to come to Cannes. Coincidentally, I’d already planned to be in southern France at the time of the festival for vacation. Had I known that I’d be lugging around a backpack full of business attire on my way to witness Korea’s first Palme d’Or, I wouldn’t have booked all those carry-on-only flights and eight-person hostel rooms."


"번역은 신성하다." 영화 '옥자'에서 스티븐 연이 연기한 캐릭터는 이렇게 말했다. 봉 감독의 팀은 칸으로 오라고 부탁했다. 우연이었는지 마침 나는 프랑스 남부에서 휴가를 보낼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칸에서 한국의 첫 황금종려상 수상을 목격하게 될 줄 알았다면 기내용 캐리어와 8명이 묶는 호스텔 방을 예약하지는 않았을 거다.



"There was palpable electricity in the Grand Theater Lumiere when the film premiered at Cannes. It was moving to see a film about my home country touch people from so many different cultures. The two years I spent in the U.S. as a kid had turned me into a strange hybrid — too Korean to be American, too American to be Korean, and not even Korean American. I kept up my English by reading books and watching movies, but I still didn’t know how to respond to the oh-so-casual “What’s up?” when I came back to L.A. for college. I had to come to terms with the fact that I would be able to share only half of myself with most people I met. Likewise, two cultures are usually just one too many for a film to contain. And yet here was this story that seemed to effortlessly break through all barriers. Originally, I was only needed at the festival for two days to do English press, but I ended up backstage at the closing ceremony sweating with anticipation until “Parasite” was the only one left on the list of films to win an award."


'기생충'이 뤼미에르 극장에서 첫 공개될 때 내 모국에서 온 영화가 여러 국가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보고 전율을 느꼈다. 어린 시절 2년 동안 미국에서 산 경험은 나를 이상한 잡종으로 만들었다. 미국인이 되기엔 너무 한국적이고 한국인이 되기엔 너무 미국적이었다. 그렇다고 한국계 미국인도 아니다. 두 개의 문화를 한 영화에 담는 건 어렵다. 그런데 이 영화는 모든 장벽을 무너뜨린다. 원래 나는 칸영화제에서 이틀 동안 일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기생충'이 폐막식에서 마지막으로 남는 영화가 될 때까지 진땀을 흘리면서 백스테이지까지 함께 하게 됐다.


"The rest of my year is all on YouTube. Truth is, there is no time to reminisce when you’re interpreting. It’s all about the moment that exists now, and I have to wipe away each memory to make room for the next. I had to rely on the films I’d watched my whole life to soothe my insomnia, to maintain my grasp on Eastern and Western cultures, and on the clarity of director Bong’s articulate words. My job was made easy by his consideration, and it helped that I was already familiar with his language as a filmmaker and a thinker, having written college papers about him. Yet I was constantly battling impostor syndrome, and an anxiety that I might misrepresent the words of someone so beloved in front of people I’d grown up admiring. The only cures for stage fright were ten-second meditations backstage, and knowing that I was not who they were seeing."


나머지 나의 모든 한 해는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통역하고 있을 때는 추억에 잠길 시간이 없다. 모든 순간이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다음을 위해 내 기억을 지워야 한다. 봉 감독의 명료한 단어를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지난 시간 동안 불면증을 덜기 위해, 또 내 안의 동서양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 봐온 영화들에 의존했다. 봉 감독의 배려 덕분에 나는 쉽게 일할 수 있었다. 난 이미 감독, 사상가로서 그의 언어에 친숙했는데 대학에서 그에 관한 페이퍼를 쓴 적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중에게 사랑받고 내가 자라면서 존경해온 그의 말을 혹시라도 잘못 전달할까봐 끊임없이 불안했다. 무대 뒤에서 10초 동안 명상하면서 그들이 보는 것은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나의 유일한 치유법이었다.



"But above all, the true gifts are the private conversations and one-on-one relationships I got to form with team members and artists I saw on a daily basis during this job. I will spend the next years of my life doing my best to earn the chance to work with these people again. It will take a while."


무엇보다 진정한 선물은 기생충 팀과 개별적으로 나눈 친분과 대화였다. 나는 매일 아티스트들을 만났다. 나는 내 인생의 다음 시간들도 이들과 함께 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시간이 조금 걸릴 테지만.


"Switching back and forth between languages has never been my job; it’s the only way of life I know. I’ve been my own interpreter for 20 years. A psychologist specializing in bilingual children once told me that most people have a similar brain capacity — if a monolingual knows 10,000 words, a bilingual would only know 5,000 in each language. All my life I’ve been frustrated by having to choose one of the two. This is why I fell in love with cinema’s visual language. Filmmaking is a similar process of translating my interior into a language that can communicate with the outside world, but I didn’t have to search for equivalents that were only approximations of the original."


언어 사이를 오가는 것이 내 직업인 적은 없었다. 지난 20년 동안 나는 나 자신의 통역사였을 뿐이다. 심리학자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두뇌 용량은 비슷해서 1개의 언어만 쓰는 사람은 1만개의 단어를 알지만 2개 언어를 쓰는 사람은 각각 5000개씩의 단어를 안다고 한다. 지금까지 내 인생은 두 개 중 하나를 고르면서 좌절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영화의 영상언어와 사랑에 빠졌다. 영화만들기는 나의 내면을 세상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The psychologist also added that switching languages involves not the language part of the brain, but the part that controls flexibility in thought. It’s a muscle that gains skill with practice. Flexibility is what brought “Parasite” to where it is now. It fosters understanding and empathy. Empathy bridges the gap between the perpetual “others.” And to feel a little less lonely is why I want to be a storyteller. And no, I am not writing a feature on the awards season. This is a deeply personal experience I’ve yet to process, and it will find another time to seep into my stories. The one I am writing about is a small story set in Korea that’s close to my heart because, as director Bong quoted the sincere words of Martin Scorsese, “the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


심리학자들은 언어를 변환하는 작업에는 두뇌의 언어영역뿐만 아니라 사고의 유연성을 조종하는 부분까지 관여한다고 말한다. 이는 연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근육이다. 유연성은 '기생충'을 지금 이 자리에 갖다 놓았다. 이해와 공감이 있기에 가능했다. 공감은 끊임없이 타자와의 간극을 잇는 것이다. 덜 외롭게 느끼기 위해 난 스토리텔러가 되려고 한다. 나는 시상식 시즌에 관한 장편을 쓰고 있지 않다. 이건 아주 개인적인 경험이고 아직 진행할 준비가 안됐다. 다음 기회에 내 이야기에 묻어나올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작은 이야기다. 내 마음이 한국에 가깝기 때문이다. 봉 감독이 마틴 스콜세지를 인용해 말했듯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Seeing my face on my social media feed has been so bizarre. I realized this was my 15 minutes of fame when I found a string of bot tweets that looped my name into the hashtag for Viagra ads. I hear there’s even an offer for a beauty commercial. I’m grateful for people who’ve spread their warmth for the film to me, and I wouldn’t be surprised if the Korean government declares February 9 as National Parasite Day. But I can’t wait for my minutes to end so that next time my name pops up with a spam ad, it’s with my own story. It’ll just be me and my laptop for a while, and the only translating job I have now is between myself and the language of cinema."


내 얼굴을 소셜미디어에서 보는 것은 이상한 경험이다. 난 트윗봇이 내 이름이 들어간 해쉬태그와 비아그라 광고를 함께 보여줄 때 이것이 15분 동안 지속될 유명세라는 것을 깨달았다. 화장품 광고 모델 제안도 있었다고 들었다. 영화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나에게 쏟아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한국 정부가 2월 9일을 '기생충의 날'로 지정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번엔 스팸 광고 옆에 쓰여질 내 이름이 내 영화와 함께 나왔으면 좋겠다. 당분간 노트북으로 시나리오를 쓰는데 전념할 것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유일한 일은 나 자신과 영화 언어 사이의 번역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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