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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어떤 장면인가요?


기우가 학력 증명서를 위조하는 장면, 다혜에게 과외하면서 "시험은 기세야"라고 말하는 장면, 동익이 기택에게 "역시 코너링이 아주 훌륭하시네요"라고 말하는 장면, 비오는 날 문광이 초인종을 누르는 장면, 충숙이 문광을 따라 지하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 문광이 스마트폰에서 동영상 전송 버튼을 누를 거라는 말로 전세를 역전시키는 장면, 집주인 가족이 캠핑을 떠난 사이 기택 식구가 부잣집에서 밤새 수다를 떠는 장면, 충숙이 연교의 전화를 받자마자 짜파구리를 끓이고 식구들이 집안을 청소하는 장면, 기택 식구들이 거실에 숨어있는데 동익과 연교가 거실에서 누워 흥분하는 장면, 폭우가 쏟아지는 와중에 기택 식구들이 침수된 집으로 내려가는 장면, 기택이 기우에게 "넌 다 계획이 있구나"라고 말하는 장면, 파티에서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동익을 기택이 찌르는 장면 등등.



많은 장면이 있지만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진 장면을 꼽으라고 하면 '복숭아 씬'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 초중반, 기우, 기정, 기택이 모두 취업에 성공한 뒤 마지막으로 엄마 충숙을 가정부로 취업시키기 위해 문광을 내쫓는 장면입니다. 문광에게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다혜를 통해 알게 된 기우가 시나리오를 짜고 기택과 기정에게 배역을 맡깁니다. 문광이 병원에 있는 모습을 우연을 가장해 사진 찍은 기택은 연교에게 문광이 결핵 환자라고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이때 기우가 기택에게 연기 지도를 하는 모습이 역할 전복에서 오는 잔재미를 주는데 라이징 스타 최우식이 대배우 송강호에게 연기 지도를 한다는 설정 때문입니다. 기택이 연교와 함께 집으로 들어올 때 기정이 문광의 등에 복숭아 가루를 뿌리고 연교는 문광이 기침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기택은 쓰레기통으로 먼저 가서 준비해온 케찹을 뿌린 휴지를 들어올리고 연교는 쓰러집니다. 이 코믹한 시퀀스는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정재일이 헨델 등 바로크음악 형식으로 작곡한 '믿음의 벨트(The Belt of Faith)'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7분으로 구성된 이 시퀀스는 굉장히 리드미컬하고 구성이 탁월합니다. 왼쪽으로 서서히 움직이는 트래킹 쇼트와 사물을 보여주는 부감 쇼트, 앞으로 전진해오는 인물 등을 반복적으로 활용한 편집은 이야기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면서 동시에 관객이 기우 가족의 기발한 음모에 동참하게끔 유도합니다. 관객은 이들의 행동이 문광을 속이는 나쁜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장면의 리듬감 있는 편집이 주는 경쾌함과 장면이 진행될수록 조금씩 속임수가 밝혀지는 쾌감 덕분에 곧 기우 가족과 한편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이 장면은 러닝타임 7분에 달하지만 실제로 체감 시간은 2~3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만큼 이야기에 필요한 요소와 캐릭터 성격, 복숭아에서 비롯된 사건 등이 정교하게 맞물려 있어 관객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빨려들어갑니다.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필히 이 놀라운 7분을 반복해서 보면서 편집 감각을 익혀야 할 것입니다. 화면의 미세한 움직임이 어떻게 리듬을 만드는지, 내레이션과 대사가 어떻게 치고 빠지면서 스토리를 전달하는지, 앞에 쓰인 컷 전개가 뒤에 그대로 반복될 때 관객이 왜 쉽게 이야기를 내재화시킬 수 있는지 등을 연구해 볼 수 있겠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이 놀라운 7분 몽타주를 감상해 보시죠.



아래는 유튜브에서 찾은 Nerdwriter의 해설 영상입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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