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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82년생 김지영’은 한국사회의 분기점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82년생 김지영’ 이전 한국사회엔 젠더 감수성이란 단어의 존재감이 매우 약했고 젠더 갈등도 지금처럼 표면화되지 않았다. 강남역 살인사건 등으로 ‘여혐’ 논쟁이 극심하던 2016년 출간된 이 책은 임금차별, 성희롱, 몰래카메라, 남아선호, 안전이별, 독박육아와 경력단절 등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남성은 거의 겪지 않는) 고통과 관련한 거의 모든 영역을 다루며 의도와 상관없이 페미니즘 운동의 최전선에 섰다.


그 결과 무려 100만부 이상 팔려나갔지만 공인이 된 여성들에겐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용기를 상징하는 일이 됐다. 이 책을 읽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성 연예인들은 페미니스트로 낙인 찍히며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 독재정권 시대에나 있었던 ‘금서’가 지금 대한민국 여성들에겐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영화 제작 계획이 발표되면서 ‘82년생 김지영’은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일부 극단적인 남성들은 만들어지지도 않은 영화에 평점 테러를 가하고 출연 배우들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긴 우여곡절 끝에 영화는 10월 23일 마침내 세상에 나왔고, 오랜 관심을 상징하듯 개봉하자마자 박스오피스 1위로 올라섰다.


개봉 첫날 극장엔 여성 관객이 대부분이었다. 예매 관객 성별 집계에서도 여성이 75%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CGV 집계에서는 이 숫자가 더 올라 84%가 여성이었다. 소설책의 구매자도 7:3의 비율로 여성이 많았던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젠더 갈등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하다.



영화로 만들어진 ‘82년생 김지영’은 소설의 이야기를 거의 대부분 그대로 영상으로 옮겨놓았다. 고된 육아 노동에 시달리는 경력단절 여성 김지영은 엄마, 할머니 등으로 빙의해 전세대 여성이 겪어왔던 일상의 고통을 소환한다. 정유미는 대한민국 보통의 30대 여성 김지영의 얼굴을 무리없이 소화한다.



영화에는 소설과 다른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조남주 작가의 소설은 남성을 “나 정도면 괜찮은 젠더 감수성의 소유자”라고 생각하면서도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위선자로 그렸는데 어쩌면 이 지점이 젠더 갈등에 기름을 부었을 수 있다. 소설의 화자는 40대 남성 정신과 의사였는데 책의 맨마지막 문장에서 그는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라고 말하며 한계를 드러냈다. 또 남편 정대현 역시 아내에게 다정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김지영의 고통에 무감한 남성이었다.



영화는 정신과 의사를 여성으로 교체하면서 위선자가 될 가능성을 차단한다. 또 공유가 연기한 남편 정대현은 아내와 고통을 나누며 진심으로 울어준다. 김지영의 남동생 지석(김성철)은 뒤늦게 자신이 받아온 무언의 혜택을 떠올리며 누나를 챙긴다. 친정아버지(이얼)와 양이사 등은 악역이라기보다는 각각 가부장제와 직장 내 남성 위주 문화 등 우리 사회 관습적인 '구악'을 상징하기 위해 배치된 젠더 감수성이 떨어지는 인물이다. 김지영을 구박하는 시어머니도 이들과 비슷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처럼 영화는 젠더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피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이는 김지영이 살아오면서 겪어온 여러 문제들의 책임이 단순히 남성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우리 사회 관습적인 시스템에 있다고 말하기 위함일 것이다. 김지영은 남편보다 임금을 더 받을 수 없는 현실 때문에 복직을 망설이고, 정대현은 회사가 육아휴직자를 승진에서 누락시켜왔기 때문에 휴직을 망설인다. 김지영이 만나는 다른 엄마들은 고학력에도 불구하고 능력을 발휘할 곳이 없고, 김지영의 상사인 김팀장(박성연)은 직장에서 살아남는 동안 엄마로서는 실패한 고충을 털어놓는다.



유리천장에 갇힌 채 살아가는 김지영은 낯선 사람들로부터 2차 피해를 받는다. 공원과 카페에서 김지영은 아이를 데려왔다는 이유로 ‘팔자 좋은 여자’ ‘맘충’ 소리를 듣는다. 비난에는 남녀가 따로 없어서 직장인 여성도 김지영을 보며 “나도 시집이나 갈까”라고 반정거린다. 마지막 장면에서 김지영은 이들에게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상처주는 말을 하느냐”고 맞받아치는데 이는 이 영화를 둘러싼 이유없는 공격에 대한 영화의 반격이자 영화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로 보인다. 소설에서 김지영이 조용히 커피를 엎고 카페를 나왔던 것과 대비되는 장면이다.


이처럼 영화는 소설을 건설적으로 재구성했다. ‘82년생 김지영’이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차별과 고통을 제기한 이유는 남성을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처주지 않으면서 공감을 통해 함께 개선해 나아가자는 것이라는 점을 소설보다 더 분명히 하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에 무조건 낙인을 찍고 영화를 보지도 않고 사이버 테러를 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한국사회에 불행한 일이다. 그들이 '90년생 김지훈' 같은 패러디 소설을 써내려가며 누가 더 불행한가 레이스를 펼치려고 할수록 본질은 왜곡된다. 우리가 사회를 구성하며 함께 살아가는 이유는 조금씩이라도 더 행복해질 방법을 찾기 위해서일 것이다. 과거에 그랬으니 지금도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건 사회의 진보를 부정하는 일이다.


영화 속에 등장한 '맘충'을 비롯해 '한남충' '급식충' '틀딱충' 등 성별과 세대를 갈라 서로를 비아냥거리는 말들이 늘어나는 '혐오의 시대'다. 서로에 대해 무지할수록 혐오는 증폭된다. 갈등은 방치할수록 더 커진다. '82년생 김지영'이 제기하는 문제들은 사실 많은 남성들이 알면서도 짐짓 별것 아니라며 모르는 척했던 문제들이다. 더 많은 남자들이 '82년생 김지영'을 만나기를 기대한다.



*매일경제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https://www.mk.co.kr/premium/life/view/2019/10/26949/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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