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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BBB] 2019년 봄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대세는 대세다. 어느 순간부터 주위에서 넷플릭스를 본다는 말들이 심심찮게 들린다. TV를 끊고 넷플릭스만 본다는 후배도 있고, 보고 싶은 작품이 있어서 일부러 넷플릭스에 가입했다는 지인도 있다.


나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화제가 된 2017년 초 처음 계정을 만들었는데 최근 몇 달 새 넷플릭스 시청 시간이 부쩍 늘었다. 처음엔 인기 미드와 다큐멘터리 위주로 시청하다가 이젠 ‘킹덤’ ‘로마’처럼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보기 위해 넷플릭스를 찾는다. ‘스카이캐슬’ 같은 한국 드라마도 본방사수가 힘들어 아예 넷플릭스로 본다.



넷플릭스의 힘은 오리지널


한국의 넷플릭스 가입자 수는 계속 증가해 지난해 12월 127만명(안드로이드 앱 이용자 기준, 와이즈앱 조사. 실제 이용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으로 늘었다. 이는 작년 1월 34만명 대비 무려 274% 급증한 수치로 넷플릭스가 빠르게 한국인의 영상 콘텐츠 시청 습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넷플릭스를 보려면 한 달에 1만2000원(3가지 요금제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요금제 기준)을 결제해야 한다. 커피 세 잔 정도 마신다고 생각하면 큰 금액은 아니지만 매달 꼬박 나간다고 생각하면 부담이 되기도 하는 금액이다. 한국인이 평균 극장에 가는 횟수가 1년에 4~5회인 것을 감안하면 12번 더 극장에 가는 셈이니 만만하게 볼 수만은 없다.



2016년 1월 한국에 진출한 넷플릭스가 여느 VOD 서비스나 IPTV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편리한 시청환경과 오리지널 콘텐츠다. 우선, 넷플릭스에 가입하면 계정을 4개까지 만들어 가족이나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고, TV로 보다가 스마트폰으로 바꿔도 멈춘 부분부터 다시 시작하기 때문에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 또 광고가 없어 쾌적하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넷플릭스의 힘은 오리지널 콘텐츠에서 나온다. 워너브라더스 등 유수의 스튜디오들이 콘텐츠 제공료를 큰 폭으로 올리자 당황한 넷플릭스는 독점 콘텐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직접 제작에 나섰고, 2013년 ‘하우스 오브 카드’를 시작으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오고 있다. 2017년 칸영화제에서 초청작 자격 논란을 빚은 ‘옥자’ 사태에서 보듯 기존 영화업계와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최근엔 미국영화협회(MPAA)에 가입하며 거대 스튜디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했다.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 붓는다. 넷플릭스의 2018년 매출액은 157억7000만달러(약 17조8000억원), 순이익은 12억달러(약 1조3400억원)였는데, 2019년 오리지널 콘텐츠에 투자 책정한 비용은 무려 130억달러(약 14조5600억원)에 달한다. 순이익의 10배가 넘고 매출액에 맞먹는 금액을 콘텐츠에 그야말로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아마존프라임, 훌루, 디즈니플러스 등 미국 내 경쟁이 격화되자 넷플릭스는 해외로 눈을 돌려 글로벌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덕분에 한국영화와 드라마도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만들어지는 중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다양한 콘텐츠를 볼 수 있어서 좋고, 콘텐츠 제작자 입장에선 기존 투자자보다 평균 1.5배의 제작비를 지원하는 넷플릭스의 진입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동안 열악한 제작환경에 시달리던 한국 제작사들은 이제 기획안이 나오면 넷플릭스로 가장 먼저 달려가고 있다.



그렇게 지난 5년 간 만들어진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이제 상당한 분량이 쌓였다. ‘오렌지 이스 더 뉴 블랙’ '아이언 피스트' '리버데일' '마인드 헌터' ‘나르코스’ ‘센스8’ ‘기묘한 이야기’ ‘루머의 루머의 루머’ 등 오늘날 넷플릭스를 콘텐츠 강자로 만들어준 드라마부터 ‘버드박스’ ‘카우보이의 노래’ ‘아웃로 킹’ ‘로마’ 등 호평 받은 영화, ‘킹덤’ ‘YG전자’(이상 한국) ‘엘리트’ ‘꽃의 집’(이상 스페인) ‘서버라’(이탈리아) ‘다크’(독일) ‘셀렉션 데이’(인도) ‘불꽃의 전교생’(일본) 등 국가별로 공략한 시리즈, ‘셰프의 테이블’ ‘쿡’ ‘로마제국’ 등 다큐멘터리까지 수백 편에 달한다(넷플릭스는 자체 투자, 제작한 콘텐츠뿐만 아니라 독점 배급권을 확보한 작품까지 모두 ‘오리지널’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있다).



옥자부터 킹덤까지… 나의 넷플릭스 체험기


나는 ‘옥자’ 열풍이 지나간 이후 넷플릭스를 해지한 적 있는데 몇 달 후 너무 궁금한 작품이 있어서 다시 결제해버리고 말았다. 그 작품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일대기를 사실적으로 재현했다며 극찬 받은 드라마 ‘더 크라운’이다. 회당 15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해 영국 왕실을 완벽하게 고증한 것뿐만 아니라 사생활까지 그대로 담아내 실제 왕실이 불편해 했다는 말에 더 호기심이 일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스티븐 달드리 감독이 총연출을 맡은 것도 믿음을 더했다.



실제로 작품을 보니 아주 밀도 높고 세련된 사극이었다. 26세로 갑작스레 왕위에 오른 여왕과 노련한 정치인 윈스턴 처칠의 갈등을 비롯한 영국 현대사가 꼼꼼하게 재현돼 있어 순식간에 10회를 몰아보기 했다. 정치 사극을 이 정도 고퀄리티로 만들어낸 것은 넷플릭스의 전폭적인 투자 결정이 없었다면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그만큼 모험심 강한 선택이었고 결과도 성공적이었다.


‘더 크라운’에 만족한 뒤 다른 볼거리를 찾고 있을 때 넷플릭스는 내게 ‘블랙 미러’를 추천해줬다. ‘블랙 미러’는 영국에서 제작했다는 것 외에 ‘더 크라운’과 공통점은 없지만 이 독특한 상상력의 옴니버스 시리즈는 나의 기호에 정확히 들어맞았다.


어릴 적 본 '환상특급'을 떠올리게 하는 SF인 '블랙미러'는 2011년 영국 방송국 채널4에서 첫 선을 보인 시리즈를 2016년 넷플릭스에서 새롭게 제작한 것이다. 소셜미디어, 가상현실, 인공지능 등 최첨단 과학기술을 소재로 삼아 디스토피아를 제시하는 스토리가 '블랙미러'의 컨셉트다. 가상현실 시스템에 접속해 시간여행을 하는 노인, 뇌파로 군인의 감정을 통제해 살인병기로 둔갑시키는 용역 회사, 드론을 살인 병기로 만든 기업 등 기술을 주제로 생각할 거리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 마치 단편소설을 읽는 듯 에피소드마다 긴 여운이 남는다.



‘블랙미러’는 최근 영화 버전 ‘밴더스내치’를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인터랙티브 영화를 표방한 ‘밴더스내치’는 넷플릭스를 PC 혹은 모바일로 보는 시청자에게만 서비스되는데 영화가 전개되는 중간에 시청자가 직접 주인공의 다음 행동을 선택해야만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어떤 음악을 듣게 할지, 게임회사의 제안을 거절할지 승낙할지 등을 골라 마우스로 클릭하나 손가락으로 터치하는 것이다. 이런 선택에 따라 영화에는 10개 이상의 엔딩이 있어서 보는 사람마다 스토리를 다르게 기억하게 된다. 영화도 개인 맞춤형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후에도 틈틈이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감상했다. 화제작이라고 해서 모두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어서 ‘기묘한 이야기’ ‘센스8’ 등은 내 취향에 맞지 않았다. ‘너의 모든 것’ ‘빌리언스’ ‘지정생존자’ 등은 흥미로웠지만 진행될수록 피로감이 쌓여 끝까지 보게 되지는 않았다. 무거운 이야기에 지쳐 가볍게 머리 식힐 영상물을 찾고 있을 때 발견한 작품은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이었다.


한국계 캐나다인 인스 최가 2011년 자전적인 경험담을 바탕으로 집필한 연극을 원작으로 하는 ‘김씨네 편의점’은 2016년 10월 캐나다 국영방송 CBC에서 방송돼 큰 인기를 얻은 뒤 넷플릭스에 입성한 작품이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고 있는 토론토에서 한국계 교포 가족이 운영하는 편의점을 무대로 가부장적인 아빠, 억척스런 살림꾼 엄마, 집 나간 오빠, 사진가를 꿈꾸는 딸의 이야기가 알콩달콩 펼쳐진다.



시트콤이 웃음폭탄을 만들어내는 무기는 서로 다른 문화에서 오는 호기심과 소소한 갈등이다. 동성애자를 도둑 취급하다 손님이 항의하자 동성애자들만 15% 할인해준다고 선언하는 아빠, 백인 여성 상사의 막무가내 대시를 물리치느라 진땀 빼는 오빠, 백인 흑인 주부들 사이에서도 아들 자랑을 늘어놓는 엄마 등 드라마는 글로벌 도시에서 어울리며 살아가는 한국계 가족을 보여준다. 모든 문화권 사람들이 편하게 즐기도록 제작됐지만 고스톱, 태권도 등 한국문화가 소재로 쓰이기에 한국 사람이면 더 공감하며 웃을 수 있다. 편당 러닝타임도 20분에 불과해 가볍게 즐기기에 좋다.


‘김씨네 편의점’이 잔잔하게 화제를 모을 무렵 할리우드에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서치’ 등 아시아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이에 발맞춰 넷플릭스에서도 한국계 여성이 주인공인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가 또 다른 히트작으로 떠올랐다. 이제 넷플릭스가 할리우드 전체 흐름과 함께 하게 되면서 넷플릭스를 보지 않으면 트렌드의 한 축을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킹덤’은 바로 이 시점에 등장한 한국판 좀비 역사극이다. 아시아 특히 한국에 대한 관심과 ‘워킹데드’ 등 미드의 인기 장르가 결합해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반응이 좋다. 나도 앉은 자리에서 6회를 몰아봤는데 김은희 작가의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와 금수강산을 담은 자연미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시즌1이 갑작스럽게 마무리된 게 아쉬울 정도였다.


나의 넷플릭스 경험에서 보듯, 오늘날 넷플릭스가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새로운 트렌드로 만들어낸 배경에는 영상 콘텐츠에 대한 엄청난 투자에서 비롯된 자신감이 자리잡고 있다. 넷플릭스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규모 화제작으로 시선을 잡아끈 뒤 그 작품에 만족한 회원이 관심을 가질 만한 작품을 계속해서 추천해준다. 드라마, 영화뿐만 아니라 가벼운 코미디와 묵직한 다큐멘터리도 갖추고 있어서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 정도로 몰아붙인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넷플릭스가 서비스하고 있는 작품의 절대적인 숫자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검색해보면 웬만한 영화는 없는 경우가 더 많다. 넷플릭스는 영화의 편수를 무작정 늘리는 대신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영화만 저작권을 확보해 서비스한다. IMDB 평점이 높은 영화, 기존 넷플릭스 회원들이 집중적으로 본 콘텐츠와 비슷한 영화들이 그 대상이다. 덕분에 '노트북'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나를 찾아줘' 같은 영화들은 넷플릭스에서 더 많은 시청자를 갖게 됐다.



넷플릭스는 아무도 보지 않을 영화들의 판권을 구입하는 대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확실한 작품에만 돈을 쓴다. 어차피 넷플릭스의 경쟁력은 오리지널에 있기 때문에 기존 작품들은 가입자들이 이탈하지 않을 정도로 구색 맞추기만 해도 된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런 계산은 정교하게 짜인 넷플릭스 알고리즘의 결과물이다. 넷플릭스는 가입자의 시청 행위를 꼼꼼하게 모니터해 회원이 오랫동안 넷플릭스 플랫폼에 남아 있도록 유도한다. 회원이 머무는 경우와 떠나는 경우를 가상으로 실험하는 ‘A/B 테스트’를 끊임없이 반복해 최적의 시청환경을 만들어낸다. 오프닝을 건너뛰는 버튼의 위치, 에피소드가 끝나면 다음 회로 넘어가는 시간 등을 가입자가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방식으로 구현하고, 보다가 멈추면 왜 멈췄는지를 다각도로 분석한다. 그래서 한 번 넷플릭스를 보기 시작하면 좀처럼 멈출 수 없다. 나는 최근 ‘그레이트 뉴스’ 시리즈를 보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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