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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정보없이 ‘악질경찰’을 보다가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주인공 조필호 형사가 근무하는 경찰서가 하필 안산 단원구일 때부터 뭔가 의도가 있나 싶었는데 영화는 기어이 중반부터 세월호를 향해 방향을 돌렸다. 세월호 희생자의 친구인 장미나 역의 전소니가 핵심 역할을 하면서 후반부는 모든 설정이 세월호에 대한 은유와 직유로 가득했다. 진짜 악질경찰을 다룰 줄 알았던 제목과의 언밸런스가 오히려 영화에 대한 잔상을 오래 남겼다.


영화 '악질경찰'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5년이 지났다. 광화문의 세월호 분향소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유가족과 참사를 기억하는 이들의 트라우마가 아물기에 5년은 아주 긴 시간은 아니다.


그동안 세월호를 영화 속에 담으려는 시도는 몇 차례 있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를 제외한 극영화에선 세월호를 직접 언급하기보다는 에둘러 우회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곤 했다. 예컨대 영화 ‘터널’은 바다가 아닌 터널에 갇힌 운전자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당국의 무능을 꼬집는 형식으로 세월호 참사를 은유했다.



원전사고를 담은 영화 '판도라' 속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시 무능했던 정부를 연상시켰고, 영화 ‘청년경찰'에선 '크리티컬 아워'를 7시간으로 제시했는데 이는 세월호 당시 잃어버린 7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소녀들을 구출하려는 경찰대 학생들에게 교수가 “학교로 돌아가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장면도 명백한 은유였다. 또 영화 ‘살아남은 아이’는 물에 빠져 죽은 아이의 유가족인 부모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세월호를 연상시켰다.


이 영화들에 비해 세월호를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소재로 사용한 첫 영화인 ‘악질경찰’은 기습적인 방법으로 유가족의 이야기를 한다. 보기에 따라서 억지로 욱여 넣었다고 볼 수도 있고, 자연스럽게 흘러간다고 볼 수도 있다.


영화 '스카우트'


이 영화가 세월호를 소재로 사용하는 방식은 김현석 감독의 2007년 영화 ‘스카우트’를 닮았다. ‘스카우트’는 전설적인 투수 선동열 스카웃 경쟁을 그리고 있지만 영화 속 배경이 1980년 5월 광주라는 점에서 명백히 5.18 영화다. 당시 영화는 한국판 ‘제리 맥과이어’라고 스스로 홍보했지만 극장을 나선 관객은 눈물 없이는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악질경찰’은 제목과 소재에서 아벨 페라라 감독의 저예산 영화 ‘배드 캅’(1992)을 떠오르게 한다. 영화에서 하비 케이틀이 연기한 나쁜 형사는 도박, 마약거래에 빠진 부패한 경찰이지만 수녀가 윤간당한 사건을 맡으면서 참회하고 점점 변화해간다.


영화 '배드 캅'


‘악질경찰’은 ‘배드 캅’에서 종교적인 부분을 세월호 참사로 대치시켰다. 이선균이 연기한 조필호 형사는 돈 때문에 경찰서 창고까지 터는 부패한 형사지만 장미나를 알게 되면서 점점 달라져간다. 영화 ‘아저씨’의 핏빛 복수극,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세대차를 넘는 소통이 후반부에 함께 담겨 있다.



세월호를 의외의 소재로 사용한 ‘악질경찰’의 시도는 성공적일까? 관점에 따라 다를 듯하다. 4월 3일 개봉을 앞둔 영화 ‘생일’처럼 세월호가 소재임을 드러낸 영화와 달리 이 영화는 세월호 사건을 담고 있음을 홍보 과정에서 철저히 감췄기 때문에 준비가 안된 관객은 당황할 수 있다. 그래서 제대로 된 평가는 불가능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조필호가 관 모양의 욕조에 갇히는 장면을 보는 게 불편했다. 조필호는 물속에서 홀로 사투를 벌이다가 빠져나오는데 맥락상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서였다. 그런데 어쩌면 이것이 바로 이정범 감독의 노림수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년이 지나 이제 상처는 어느 정도 아물어가는 듯해도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고통을 잊지 말자는 메시지 말이다.


이정범 감독


이정범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세월호를 소재로 삼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세월호에 대한 감정이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치열하고 처절하게 찍었다. 우리 영화에서 나오는 방식이 어떻게 다가갈지 모르겠지만 세월호가 잊혀지는 게 두렵다는 유가족의 말씀 때문에 이렇게라도 말하는 게 침묵하는 것보다 낫겠다 생각했다.”


영화는 루시드 폴의 세월호 추모곡 ‘아직, 있다’가 흘러나오며 끝난다. 영화에서 조필호가 응징하는 대기업 회장은 장미나를 비롯한 소년 소녀들이 닮고 싶지 않은 양심없고 파렴치한 어른을 대표한다. 전작 ‘아저씨’에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소녀를 지키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는 남자를 그렸던 이정범 감독은 ‘악질경찰’에서도 이선균에게 속옷만 입고 싸우게 하며 비슷한 뉘앙스로 마무리한다.


영화 '악질경찰'에서 장미나를 연기한 전소니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오면서 기대와 전혀 다른 영화가 뇌리에 남게 됐다. 누구도 세월호라고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더 강렬하게 남았다. 겉으로는 이정범의 ‘아저씨’와 이선균의 ‘나의 아저씨’를 합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어디서 많이 봐왔던 그런 플롯과 액션이야 금세 잊혀질 게 뻔하다. 그 대신 영화에서 뒷걸음질 치며 스스로 죽음을 택하던 장미나의 모습과 물속에 갇혀서도 끝까지 살기 위해 애쓰던 조필호의 모습이 주는 대비는 아마도 오래 기억될 듯하다.


악질경찰 ★★★

‘아저씨’와 ‘나의 아저씨’ 사이에 놓인 세월호. 위험한 시도 절반의 성공.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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