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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뒤집어 쓰면 ‘굳’. 누구나 갖고 싶어하지만 누구에게도 쉽게 욕망을 충족시켜주지 않는 것. 사회 시스템을 굴러가게 하는 혈액이자 인간과 인간을 구분짓는 계급체계의 잣대. 사람들을 일하게 만드는 동력이자 희로애락의 원인. 군더더기를 제거한 이 영화의 제목은 많은 함의를 담고 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돈으로 돈을 벌고,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남의 돈을 불려주며 수수료를 챙긴다. 증권사가 몰려 있는 여의도는 욕망의 용광로 같은 곳이다. 매일 약 10조원의 거래대금이 이곳을 오간다. 증권맨들은 10조원을 대리해주느라 한바탕 전쟁 같은 낮을 치른 뒤 승자와 패자로 갈려 잠 못드는 밤을 보낸다.



영화는 어느 증권브로커의 돈에 대한 욕망을 그린다. 동명증권에 갓 입사한 조일현(류준열)은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으로 가득하다. 어리숙한 그는 실적이 0에 가깝지만 선배 유민준(김민재)의 소개로 작전 설계자 번호표(유지태)를 만나면서 순식간에 큰돈을 번다. 한 번 돈맛을 본 그는 계속해서 번호표와 접선하지만 별명이 사냥개인 금감원 과장 한지철(조우진)이 그를 쫓으면서 막다른 골목에 몰린다.


영화는 ‘월 스트리트’ ‘보일러 룸’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등 불법투자에 가담하는 증권맨을 그린 영화들의 익숙한 플롯을 따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의문의 실력자가 있고 주인공은 그에 이끌려가다가 점점 현실에 눈을 뜬다.



제목이 주는 야심에 비하면 영화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 이야기 구조가 헐거워 주제에 밀착하는 밀도가 약하고, 조일현 캐릭터에 주제만큼의 광기가 드러나지 않아 집중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힘을 빼고 보면 감독의 의도를 알아차리는데는 무리가 없다.


영화에는 증권 관련 용어가 꽤 등장한다. 몰라도 영화를 이해하는데 지장이 없지만 알고 보면 더 잘 보이는 법. 그래서 영화 속 장면들과 그때 등장하는 증권용어들을 정리했다.



여의도 증권가


영화 초반 여의도 증권가가 소개된다. 하루 7조원이 오가는 욕망의 산실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 수치는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다. 실제 규모는 더 커서 하루 거래대금은 10조원을 넘어섰다. 증시 개장시간은 오전 9시, 폐장시간은 오후 3시 30분이다. 영화에선 오후 3시에 폐장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2016년 8월 1일부터 폐장시간이 30분 연장됐다.



트리플위칭 데이


영화에서 번호표는 트리플위칭 데이에 맞춰 작전을 개시한다. ‘트리플위칭 데이(세 마녀의 날)’란 주가지수 선물, 주가지수 옵션, 개별주식 옵션 만기가 동시에 겹치는 날로 3,6,9,12월 둘째주 목요일이다. 2002년 말 개별주식 선물이 상장된 이후 4가지 만기가 동시에 겹치게 돼 ‘쿼드러플위칭 데이(네 마녀의 날)’로도 불린다. 이날 파생 상품과 현물 주식이 청산되고 또 새롭게 설정되기 때문에 시장 변동성이 커진다. ‘위칭 데이(Witching Day)’는 1980년대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말로 이날 마녀가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것처럼 증시가 어지럽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시장 변동성이 심하기 때문에 작전을 해도 눈에 띄지 않을 수 있고, 거래한 파생상품을 바로 청산해버릴 수 있어 이날을 D데이로 잡은 듯하다.



스프레드 거래


영화에서 번호표가 조일현에게 주는 첫 번째 임무는 트리플위칭 데이 하루 전날 스프레드 거래를 쓸어담는 것이다. 조일현은 장 막판 쏟아진 스프레드 주문 실수를 8000계약 매수하며 작전에 가담한다. 스프레드 거래란 선물 거래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고안된 투자 전략이다. 두 가지 상품 간의 가격 차이를 ‘스프레드’라고 하는데 매수 혹은 매도 중 어느 한 가지 포지션을 취하는 것보다 두 가지 포지션을 동시에 취하면서 그 가격 차이를 노리면 더 안정적으로 이익을 취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 착안했다.



동일한 기초자산의 선물과 현물, 동일한 자산이지만 결제월이나 결제시장이 다른 종목, 만기가 같은 대체 상품 등이 스프레드 거래의 대상이다. 저평가된 종목을 사고 고평가된 종목을 팔면 한쪽은 이익이 발생하고 한쪽은 손실이 발생하는데 이때 이익을 손실보다 늘려 수익을 확정한다. 파생상품 거래 중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투자전략이기 때문에 증거금도 단순거래보다 낮게 책정돼 있다. 하지만 두 선물 가격이 서로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면 단순거래보다 더 위험해질 수도 있다.


영화 속에서 한 직원이 스프레드 주문 실수를 해 회사에 큰 손해를 입히는데 실제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2010년 미래에셋증권의 한 직원은 미국 달러화 선물 스프레드 거래 도중 주문가격을 100배 높은 금액으로 입력하는 주문실수로 회사에 120억원의 손해를 입혔다. 물량이 나온지 15초 만에 다른 증권사에서 1만5000계약을 쓸어담았다. 그러나 미래에셋증권은 단순실수였다는 양해를 얻어 이 계약을 대부분 돌려받았고, 돌려주지 않겠다고 버틴 회사에겐 소송을 걸어 결국 승소했다.



프로그램 매매


번호표의 두 번째 작전은 프로그램 매매를 이용하는 것이다. 조일현은 같은 증권사 동료 박시은(원진아)에게 프로그램 매매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프로그램 매매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수십 개의 종목을 묶어서 거래하는 것이다. 매수, 매도 결정은 사람이 하지만 그외 모든 과정은 컴퓨터가 한다. 실행 과정에서 사람의 감정이 개입할 여지를 차단해 효율성을 높이고 대량 물량을 단기간에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프로그램 매매에는 차익 거래와 비차익 거래가 있다. 차익 거래는 서로 다른 두 시장에서 가격 차이가 발생할 때 싼 곳에서 사서 비싼 곳에서 팔아 차익을 내는 거래이고, 비차익 거래는 단지 현물만을 대량 매매하는 거래다.


프로그램 매매는 워낙 단위가 크기 때문에 주가지수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또 만약 컴퓨터가 오작동을 일으키면 영문도 모른 채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실제로 이런 경우가 있었다. 2013년 12월 쿼드러플위칭 데이 당시 한맥투자증권은 옵션시장에서 현저하게 낮거나 높은 가격으로 물량을 내놓는 프로그램 매매 오류로 460억원의 손실을 입어 결국 파산했다.



공매도


번호표와 조일현은 금감원 한지철에게 추적당하는 와중에도 다음 작전을 계획한다. 가장 큰 판이라는 마지막 작전은 공매도를 통해 수익을 얻는 것이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없는 주식을 빌려서 팔고 나중에 갚는 거래다. 공매도로 판 주식을 다시 사는 것을 환매수(숏커버링)라고 한다.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버블과 침체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지만, 공매도가 대규모로 일어나면 주가가 인위적으로 하락할 수 있기 때문에 주가조작의 원흉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한국에선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제한된 거래에서만 허용하고 있다.


돈 ★★☆

돈에 대한 욕망을 그리고 있지만 정작 돈에 대한 집착이 약하다.



*매일경제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http://premium.mk.co.kr/view.php?no=25103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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