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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똥 같아요. 내 신발보다 더러워요.”


레바논의 가난한 소년 자인은 이렇게 외친다. 그리고는 자신을 낳았다는 이유로 부모를 고소한다. 낳아놓고 방치하고 헐값에 팔아버리는 엄마가 더 이상 동생을 낳지 못하게 해달라고 판사에게 청원한다.



자인이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 이해가 될만큼 영화는 자인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곳에서 자인은 동생 뒷바라지를 하느라 안간힘을 쓴다. 마약 주스를 만들어 팔아 겨우 끼니를 해결한다. 자식을 낳아놓고도 무책임한 엄마는 11살 된 여동생 사히르를 닭 몇 마리에 시집보내 버린다. 이에 격분한 자인은 엄마와 싸우다가 집을 나오고 우연히 찾은 놀이공원에서 아프리카에서 온 불법체류자 라힐을 만난다. 라힐의 어린 아들 요나스를 동생처럼 돌보던 자인은 라힐이 불법체류자로 잡혀가자 요나스를 데리고 라힐을 찾아나선다.



영화는 레바논 아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대로 리얼리티로 가득 차 있다. 2차대전 이후 인물의 내면 묘사를 통해 가난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처럼 ‘가버나움’ 역시 자인의 행동과 생각을 고스란히 보여줌으로써 그가 처해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자인을 비롯해 주요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모두 실제로 영화에서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이들이다. 감독은 비전문 배우들인 이들과 4년 동안 지내면서 최대한 진짜 삶의 모습을 담으려 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자인을 비롯한 아이들이 처한 현실이 황망할 정도로 열악해 가슴이 먹먹해진다. 시리아와 국경을 맞댄 레바논은 전쟁 지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상이 곧 전쟁인 곳이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삶은 지옥과 다름 없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해야 하는 노동의 무게에 찌든 자인은 나이답지 않게 조숙하다.


아쉬운 것은 후반부에 영화가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권선징악의 길을 간다는 것이다. 가난을 리얼하게 전시하고 부모를 고소한 행위 자체만으로도 영화는 할 일을 다했는데 감독은 자인의 심정을 담은 대사를 내레이션으로 삽입해 모든 상황을 정리해버리려 한다. 레바논 아이들이 처한 현실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목적은 달성했지만, 가난의 원인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성찰하게 할 기회는 놓쳐버린 듯하다.



영화는 작년 칸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돼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올해 레바논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배우 출신 나딘 라바키 감독은 이 영화로 아랍계 최초로 아카데미 후보에 지명된 여성 감독이라는 기록을 갖게 됐다.


한국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지난 1월 24일 개봉한 뒤 20일 만에 1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그린 북’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아트버스터의 탄생을 예고했다.


가버나움 ★★★☆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굴레. 경종을 울리는 네오리얼리즘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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