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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후 일주일 동안 4500만개 이상의 계정에서 영화 '버드박스'를 관람했다. 영화 러닝타임을 70% 이상 시청한 계정만 집계한 것이다. 한 계정으로 두 명 이상 본 경우도 있으니 실제 관객은 더 많을 것이다."


2018년 12월 28일 트위터를 통해 '버드박스' 관객 수를 공개한 넷플릭스.


넷플릭스가 지난해 12월 28일 트위터에 밝힌 내용이다. 그동안 시청률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던 넷플릭스는 이례적으로 '버드박스'의 일주일 성적표를 발표했다. 다른 영화와의 비교 없이 오직 '버드박스'에 대해서만 공개한 이 수치에 대해 할리우드에선 검증이 불가능하다며 의구심을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하게 되는 것은 4500만 계정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다. 지난해 10월 기준 넷플릭스 총 가입자가 1억 3700만명이었으니 계정 보유자의 3분의 1이 해당 영화를 본 것이다.


이는 북미 영화 박스오피스와 비교해도 월등한 성적이다. 지난해 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영화 '아쿠아맨'이 같은 기간 동안 1억 3200만달러를 벌어들였는데 이를 관객 수로 환산(평균 티켓 가격 8.8달러)하면 대략 1550만명이다. '버드박스'는 '아쿠아맨'보다 3배 넘는 관객 수를 확보한 셈이다. 넷플릭스라는 단일 기업의 영향력이 할리우드 전체를 긴장하게 할만큼 막강해졌다.



넷플릭스 영화흥행 방식 어떻게 다른가


일반적으로 영화 산업의 수익화 전략은 극장-VOD-셀스루(블루레이)-케이블-지상파 순서로 이어지는 유통망을 홀드백 기간을 두며 돌면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넷플릭스 영화는 이 모든 과정을 홀드백 기간 없이 한 번에 끝내버린다. 따라서 '아쿠아맨' 입장에선 나중에 얻게 될 부가 수입을 따져봐야 정당한 비교가 가능하다는 변명이 성립할 것이다.


하지만 영상 콘텐츠가 일상화하면서 콘텐츠의 생명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기존 영화 산업의 수익화 전략은 낡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 케이블, 지상파 등 기존 TV 시장의 규모가 줄어들고 있는 현 상황도 홀드백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는 요인이다. 조만간 넷플릭스식 콘텐츠 전략이 이를 대체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의 성장이 계속돼 극장의 영향력이 줄어들면 장기적으로 현재의 박스오피스 차트는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넷플릭스의 이번 발표는 훗날 영화흥행 집계 방식을 바꿔놓은 전조로 기록될 수도 있다.



한 사람당 연간 영화 관람횟수는 평균 3~4회 정도다. 하지만 넷플릭스에 가입해 회원을 유지하면 연간 12회분의 금액을 결제하게 된다. 넷플릭스 월 이용료가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는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가입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화 관람 횟수가 평균의 3배 가까이 증가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헤비 유저만 가입자가 되겠지만 규모가 커질수록 관람횟수는 평균에 수렴할 것이다. 물론 넷플릭스 이용료에는 영화뿐만 아니라 시리즈물,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콘텐츠에 대한 지출 비용도 포함돼 있기에 단순 비교는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넷플릭스는 할리우드보다 많은 관객을 확보할 잠재력을 바탕으로 할리우드와 경쟁하고 있는 셈이다.



넷플릭스의 콘텐츠 전략은


폐쇄형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인 넷플릭스는 철저히 규모의 경제에 좌우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다. 더 많은 유료 가입자를 확보할수록 이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이에 따라 투자 여력도 커진다. 극장이 매출을 예측하기 힘든 골목식당이라면 넷플릭스는 매출과 이익이 예측 가능한 구내식당이다. 정해진 손님을 오랫동안 붙잡아 두기 위한 관건은 맛있는 음식을 내는 것이기에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넷플릭스 주가 역시 유료 가입자의 증가폭에 따라 오르내린다.


넷플릭스 입장에서 좋은 콘텐츠는 가입자들을 오랫동안 붙잡아 둘 수 있는 콘텐츠다. 오래 붙잡으려면 오래 기억에 남을 만큼 화제가 되어야 한다. 넷플릭스는 다양한 구색을 갖추는 롱테일 전략보다는 확실한 콘텐츠에 올인하는 파레토 전략을 쓴다. 가입자 맞춤형 추천 시스템을 정교화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도 조회수가 떨어지는 콘텐츠에 비용을 낭비하지 않기 위함이다.



가입자를 붙잡아둘 화제성 콘텐츠로는 프랜차이즈 블록버스터와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아트영화들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프랜차이즈 블록버스터는 콧대가 높다. 월트 디즈니는 넷플릭스와 경쟁할 자체 플랫폼을 만든다며 마블 콘텐츠를 넷플릭스에서 철수시켰다. HBO도 '왕좌의 게임' 등 인기 TV시리즈를 경쟁사인 훌루에만 서비스한다. 넷플릭스가 유명 감독과 작가를 끌어들여 자체 블록버스터를 만드는데 돈을 쏟아붓고, 또 유수 영화제의 문을 계속해서 두드리고 있는 이유다. 미국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자 넷플릭스는 국외로 눈을 돌려 한국, 일본, 영국, 중남미 등에서 활발하게 제휴 콘텐츠를 만들고 있기도 하다.


2017년 '옥자'의 봉준호 감독을 기폭제로 스티븐 스필버그, 마이클 베이, 기예르모 델 토로 등 많은 거장들이 넷플릭스와 손을 잡았다. 기대 이하의 작품도 있지만 탁월한 성과를 올린 작품도 많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는 넷플릭스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각종 영화제 트로피를 수집하는 중이고,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7월 22일', 코엔 형제의 '카우보이의 노래', 알렉스 가랜드 감독,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서던 리치: 소멸의 땅', 치웨텔 에지오포 주연의 '그날이 오면' 등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버드박스'는 어떤 영화인가


'버드박스'도 이런 맥락에서 기획된 작품이다. '블라인드 사이드'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산드라 블록이 주연 겸 기획을 맡았고, '인 어 베러 월드'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덴마크의 명감독 수사네 비르가 연출자로 합류했다. 예산은 2000만달러로 '눈먼자들의 도시'(2008, 2500만달러), '콰이어트 플레이스'(2018, 약 2000만달러) 등 유사 영화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영화는 눈으로 전염되는 자살병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가상의 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다. 조쉬 말레르만이 2014년 출간한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SF영화 '그래비티'에서 우주에서 조난당한 뒤 살아돌아오는 캐릭터를 연기했던 산드라 블록은 '버드박스'에서도 모성애를 발휘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약속의 땅을 찾아나선다.



영화는 인간집단을 공포의 대상으로 삼는 좀비영화의 서사를 뼈대로,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해프닝'에서 무자비하게 시각화한 전염되는 집단 자살병, '눈먼자들의 도시' '콰이어트 플레이스' 등 주인공에게 시청각 핸디캡을 주고 빠져나가게 하는 탈출 플롯을 접목했다. 신체 접촉이 아닌 단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병에 감염돼 죽을 수 있다는 설정은 매우 충격적이어서 영화는 첫 장면부터 몰입감이 상당하다. 산드라 블록은 한 순간도 방심하지 못하게 할만큼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고, 현재와 과거의 교차편집을 통해 긴장을 유지하는 연출력도 좋다.


영화가 일주일 새 4500만명 이상이 관람할 정도로 단숨에 인기를 얻자 영화를 본 시청자들 사이에서 눈을 가리고 게임을 하거나 거리로 나서는 '버드박스 챌린지'가 유행하고 있다. 모건 애덤스 등 인기 유튜버까지 가세하자 넷플릭스는 부상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서기까지 했다. 극장에서 개봉했다면 영화가 대중에게 받아들여져 놀잇감이 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을 테지만 시청과 함께 곧바로 공유 가능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의 특성상 영화가 놀이 유행으로 번지는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는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트위터를 통해 '버드박스 챌린지'의 부상 위험을 경고한 넷플릭스.


넷플릭스가 '버드박스'의 첫주 관람 계정 수를 밝힌 것처럼 향후에도 비슷한 정보를 공개할 지는 앞으로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 현재는 맞춤형 추천시스템에 의해 콘텐츠를 노출하고 있지만 언제든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특히 한국처럼 실시간 순위 시스템이 일상화된 곳에선) 콘텐츠간 경쟁 전략을 택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가 되면 지금 '북미 박스오피스 1위'라는 홍보 문구 만큼이나 '넷플릭스 시청 계정 수 1위'라는 홍보 문구를 쉽게 보게 될 것이다. 넷플릭스가 영화흥행 방식을 바꿔놓고 있다.



*매일경제에 실린 글의 풀 버전입니다.

출처: http://premium.mk.co.kr/view.php?no=24471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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