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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클루니가 감독, 주연한 <킹 메이커>의 원제는 The Ides of March이다. 고대 로마 달력에서 3월 15일을 가리키는 이 날은 시저가 부르투스에게 암살당한 날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는 깨끗한 정치인으로 이미지메이킹 되어 있던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모리스와 그의 전 참모 스티븐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날을 상징적으로 뜻하고 있다.

조지 클루니의 전작 <굿 나잇 앤 굿 럭>을 심각하지만 밍숭밍숭한 영화라고 기억하고 있는 필자에게 <킹 메이커>는 전작과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는 이번에도 비슷한 영화를 만들었다. 아마도 이것은 그의 취향 때문일까? 심플한 것은 분명히 미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너무 밋밋하다. 시원한 맥주를 한 모금만 마신 뒤 바로 버리는 것과 같다. 문제의식은 대단히 심각하고 주제도 확실하지만 영화는 무척이나 단순해서 정작 영화가 끝난 뒤에는 영화에 대해 더이상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마지막에 "설마 여기서 영화가 끝나는 건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정말 영화가 끝나버렸다. "이것 만으로는 부족해, 더 보여줘야 할 얘기가 한참 남아 있을 것 같아" 라고 외쳐보지만 많이 남은 맥주의 김은 이미 확 빠진 뒤다.

이것은 그동안 멋진 영화들이 결말을 맺지 않은 채 여운을 남기며 끝냈던 것과는 다른 문제다. 정치인의 이중성이라는 궁금한 소재를 던져놓고는 그냥 한 가지 얘기만 하다가 끝맺고 있다. 더구나 이 영화에는 그럴듯한 복선이나 미학적 장치들도 없다. 그저 단순하게 일직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보니 한 보좌관의 정치적 위기탈출이 이야기의 전부다.

영화 속 타임지 기자는 너무 도식적인 역할만을 하고 있고,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인턴 몰리는 뭔가 큰 역할을 할 것 같더니 그저 희생양으로만 그려지고 있다. 스티븐의 상관 폴은 허무하게 물러가며, 스티브가 해고됐을때 그 장면을 목격하고 또 스티브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좋아하던 벤은 이후 아무런 역할이 없어서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이처럼 이 영화에선 캐릭터에 대한 연구가 소홀하다. 배역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면 분명히 더 풍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풍부한 이야기라는 것은 그날 이후 경선의 결과를 보여주었어야 한다는 식의 주문이 아니다. 인턴 몰리의 사망에 대한 재구성이라든지 폴과 스티븐의 관계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정보를 보여준다든지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었어야 했다.

조지 클루니가 미국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모리스 역으로 주연을 맡고 있지만 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모리스 캠페인에 참가하고 있는 유능하고 젊은 홍보맨 스티븐 역을 맡은 라이언 고슬링이다. 컨설턴트로서 거액 연봉을 마다하고 정치에 뛰어든 스티븐은 그가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모리스를 위해 뛰고 있다. 스무살이 채 안된 여자 인턴과 하룻밤을 보낼 때도 캠페인에 흠집이 가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그는 어느날 모리스의 치명적 약점을 알게 되고, 그런 와중에 상대편 후보 보좌관의 스카웃 제의를 받는다. 이를 눈치챈 상관에게서 해고당한 뒤 모리스를 찾아가 빅딜을 제안하는데, 그것은 이 영화의 포스터에 상징적으로 그려진 것처럼 언론에 보여지기 위한 타협이다.

영화 초반엔 충성스러워 보이다가도 후반부로 갈수록 매사에 걱정 많고 예민해 보이는 스티븐 역을 맡은 라이언 고슬링은 <노트북>의 순정파 이미지 보다는 <드라이브>의 냉혈적인 모습에 더 가깝다. 그밖에도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마리사 토메이, 폴 지아매티 등 추억의 연기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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