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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나이. 전통과 현대를 잇는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밴드. 2010년 데뷔한 올해 8년차 중견 밴드.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가 많은 밴드. 2016년 18개국 39개 도시에서 50회 공연을 했고, 2017년엔 20개국 44개 도시에서 역시 50회 공연을 했다.


2016년 미국 국영 라디오 NPR은 '올해 최고 음악 100선'에 잠비나이의 '그들은 말이 없다'를 올렸고, 그해 미국 대중문화 격주간지 '롤링스톤'은 잠비나이 2집 ‘A Hermitage’를 '당신이 못 들어봤을 15개 대단한 앨범' 중 하나로 꼽았다.


잠비나이의 멤버는 다섯 명이다. 이일우가 기타, 피리, 태평소를 연주할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곡을 작곡한다. 김보미는 해금, 심은용은 거문고를 연주한다. 이들 셋이 한예종 전통예술원 01학번으로 원년 멤버다. 2017년 드럼의 최재혁과 베이스의 유병구가 합류했다. 폭염이 물러가고 폭우가 쏟아진 지난 28일 충무로에서 이일우와 김보미를 만났다.


잠비나이의 이일우와 김보미 ©Youchang


Q 8년차 밴드지만 잠비나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잠비나이는 어떤 밴드인가요?

보미) 잠비나이는 국악기 해금, 피리, 태평소, 거문고와 서양 악기 드럼, 베이스를 사용해 저희가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드는 밴드입니다.


Q 원래 멤버가 3명이었다가 지금은 5명입니다.

보미) 초기 멤버 3명은 한예종 전통예술원 01학번 동기입니다. 하지만 학교 다닐 때 친한 사이는 아니었어요. 졸업하고 어떤 음악을 할까 고민하다가 셋이 의견이 맞아서 시작했어요. 이후 해외 투어를 다니면서 사운드 보강 필요성을 느껴 2017년 드럼(최재혁)과 베이스(유병구)를 세션으로 모셨습니다.


Q 잠비나이는 무슨 뜻인가요?

보미) 특정한 뜻은 없고요. 그냥 네 개의 음절로 이뤄진 소리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듣는 사람들이 각자 여러가지 이미지들을 생각해 주시더라고요. (뜻을 정해두는 것보다) 그게 더 좋다는 생각을 했어요.



Q 마음에 들었던 해석 있나요?

일우) 어떤 분이 ‘잠비’가 순우리말로 ‘여름에 내리는 비’라면서 잠비나이는 거기서 따온 이름이라고 해석했는데 그게 최악인 것 같아요.


Q 왜요?

일우) 그런 뜻으로 지은 게 전혀 아니었으니까요.


Q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해도 된다면서요?

일우) 하지만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닌데 ‘그건 이렇다’ 라고 규정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한 기자분이 그분 해석을 어디서 검색해서 발견하셨는지 아예 “잠비나이는 여름에 내리는 비라는 뜻”이라고 기사에 적으셨는데 그것 때문에 그 해석이 기정사실화됐어요.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지만 절대 그런 뜻이 아니에요.


이 사람들 까다롭다. 그리고 고집있다. 하긴 이만한 고집이 없으면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 음악을 8년 동안 붙잡고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고집 있다. 도대체 잠비나이가 무슨 뜻이란 말인가. 어떤 이름이든 제3자가 아닌 자신들이 지어놨으면 책임을 져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계속 물어봤다.


Q ‘나이’는 일본어로 ‘아닙니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름에 내리는 비가 아니다’라는 뜻도 되겠네요.

보미) 그런 게 아니에요.


두 사람 침묵하며 순간 정적이 감돈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반전시켜야겠기에 다른 방식으로 질문을 던졌다.


잠비나이의 이일우와 김보미 ©Youchang


Q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만 하지 마시고, 차라리 이렇게 해석해달라고 해주시면 좀더 받아들이기 편할 거 같은데요?

일우) 꼭 이름을 정의해야 하나요? 잠비나이를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이 나라는 중국의 속국이라고 소문낸 거나 마찬가지예요. 틀린 사실을 퍼뜨린 거죠.


Q 뭐든지 해석하는 걸 싫어하는 것 같군요?

보미) 그것에 규정받게 되니까요.


한국을 중국의 속국으로 소문내는 것과 잠비나이가 여름 비가 아니라는 것이 같은 맥락에 놓이게 될 줄은 몰랐다. 하긴 한국이라는 국가나 잠비나이라는 밴드나 규모의 차이일 뿐이지 결국 눈에 보이는 실체가 없는, 신뢰에 근거한 공동체인 것은 매한가지니까. 더 길어지면 음악 이야기를 못할 것 같아서 화제를 돌렸다.


Q 이제 음악 이야기를 해보죠. 잠비나이의 음악은 ‘터프한 국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국악에 메탈을 접목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일우) 국악은 옛것, 노인의 것이라는 생각이 있는데, 국악에도 강한 게 많죠. 무엇보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들이어서 시도하게 됐어요.


Q 다른 멤버들도 메탈을 좋아하시나요?

일우) 아니요. 그런데 다른 멤버들은 곡을 써오지 않아요. 다른 멤버들이 잠비나이를 위해 곡을 써오면 다른 성향의 곡이 나오겠죠.



Q 잠비나이의 음악은 매번 다릅니다. 어떤 곡은 강렬하고 어떤 곡은 슬며시 파고들죠. 잠비나이의 음악을 뭐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요?

보미) 애초에 어떤 장르의 음악을 하자고 모이지 않았기 때문에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메탈이 섞인 음악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모르는 거거든요. 정확히 어떤 장르라고 규정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현대 대중음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Q 국악을 기반으로 한 대중음악이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보미) 국악이 기반인지도 잘 모르겠는데요. 저희가 국악의 어법을 가지고 와서 음악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못 드려요. 장단 안에서 뭘 하거나, 규칙을 철저히 지키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저희가 그렇게 말할 수 없어요. 하지만 저희가 할 수 있는 악기가 국악기뿐이고, 저희가 배워왔던 음악을 가지고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음악적 색채가 나올 수밖에 없는 거죠.


Q 그럼 국악기를 사용한 대중음악이라고 정의하면 되겠네요?

보미) 네, 그렇게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힘들게 의견 일치를 이뤘다. 어떤 뜻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잠비나이의 음악은 국악기를 사용한 대중음악이다. 이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지금까지 문답이 오갔다. 굉장히 비효율적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잠비나이라는 밴드의 구성원들에 대해 많이 알게 된 계기도 됐다.


세상 어디에도 없던 음악을 하면서 자신들의 음악을 소개하느라 이들은 오해도 받아왔을테고, 뜬구름 잡는 칭찬도 받아왔을 터다. 질문을 던지면 한참동안 침묵하다가 대답이 돌아오는데 그 길지 않은 시간 속에 공허함이 가득차 있다. 잘 모른다는 게 문제다. 음악을 들어도 무슨 음악을 듣고 있는건지 모르겠는데 심지어 뭘 모르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없던 음악이라서 그렇다.


Q 국악기로 이토록 강렬한 연주를 만들어내는 비결이 있나요?

일우) 국악기로 창작한 곡들은 대부분 거문고를 배제해요. 거문고를 스틱으로 치다 보면 나무의 탁한 소리가 나니깐 이지리스닝에 방해가 된다는 건데요. 저는 오히려 거문고는 탁탁 치는 소리가 있기 때문에 리듬과 가락 두 가지 역할을 한꺼번에 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거문고도 멋있게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잠비나이의 이일우와 김보미 ©Youchang


Q 지난 8년 동안 활동하면서 힘든 시간이 있었을 것 같은데...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언제였나요?

일우) 개인적으로는 되게 힘든 건 몰랐거든요. 원래 팀이라는 게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고 그렇잖아요. 안 좋은 일이 힘들게까지 간 경우는 아직 없어요. 다른 팀 같은 경우에는 금전적 문제나 위기 요소 등이 힘든 요소가 되는데 저희 같은 경우는 그런 게 힘들다기보다는 짜증나는 정도였죠. 저는 잠비나이라는 팀이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메탈과 국악을 둘다 하잖아요. 애초 그렇게 시작해서인지 힘들다고 느끼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Q 잠비나이는 국내보다 해외에 팬이 많죠. 해외에서 처음 반응이 있다고 느낀 것은 언제였나요?

보미) 첫 해외 공연이 2013년 5월이었어요. 그전까지는 정말로 한국에서 아무 인지도가 없었어요. 그때 멤버가 3명이었는데 관객이 2명인 적도 있어요. 첫 해외 공연이 핀란드 헬싱키였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서 놀랐어요.


Q 헬싱키에서 어떻게 잠비나이를 알고 초청했나요?

보미) 페스티벌 프로그램을 짜는 분이 유튜브에서 우리 뮤직비디오를 보고 좋다면서 연락을 주셨어요.



Q 유튜브를 통해 스타가 된 셈이네요?

일우) 그렇죠. 유튜브가 키운 거죠(웃음).


Q 헬싱키 이후에는요?

보미) 그해 가을 영국 웨일스의 카디프에서 열린 워멕스(WOMEX: World Music Expo)라는 마켓에 가게 됐는데 거기에서도 호응이 좋았어요. 이후부터는 지금과 같은 투어 스케줄이 만들어졌습니다.

일우) 2년 전부터 해외에서 인지도가 생긴 것 같아요. 당시에는 공연에 왔다가 저희를 발견한 사람이 많았다면 재작년부터는 잠비나이를 보러 오는 팬들이 생겼어요.


2016년 체코 프라하 공연 / 사진제공=TheTellTaleHeart

2017년 프랑스 헬페스트(Hellfest) 공연장에서 / 사진제공=TheTellTaleHeart


Q 유럽 페스티벌 가면 알아보는 사람도 있나요?

일우) 동양에서 온 팀이 거의 유일하니까 눈에 띄죠. 가끔은 어떤 분이 잠비나이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거나 가방을 메고 있을 때도 있어요.


Q 굉장히 뿌듯했을 것 같네요. 해외에서 들은 말 중에 인상적인 평이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보미) “라이브를 너무 잘하는 팀”이라는 말이 듣기 좋았고요.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공기를 바꾼다”는 이야기도 좋았어요. “흐름이나 트렌드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만들어간다”는 평도 마음에 들어요.


Q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공기를 바꾼다"니 그만큼 무대가 독보적이라는 거네요. 평창올림픽 폐막식 ‘소멸의 시간’ 공연을 통해 잠비나이를 알게 됐다는 팬들도 많더라고요.

일우) 올림픽 폐막식의 원일 음악감독이 저희가 학교 다닐 때 교수님이셨어요. 원 감독님이 저희를 추천해주셔서 가게 됐죠. 굉장히 기뻤고, 영광이었어요. 국악 명인이 많은데 국악 바깥에 있는 저희를 대한민국 대표 뮤지션으로 세웠다는 게 짜릿한 경험이었습니다.


Q 그래도 아직까지 잠비나이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입덕’할 만한 곡을 꼽아주세요.

일우) 소멸의 시간, 커넥션, 그들은 말이 없다, 에코 오브 크리에이션, 그대가 잃어버린 그 모든 것들…


Q 그 중 두 곡을 소개해주신다면요?

일우) ‘그들은 말이 없다’는 세월호 사건 터졌을 때 많은 뮤지션들이 추모하는 곡을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음악을 통해 슬픔보다는 화를 내고 싶었어요. 화내는 뮤지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소멸의 시간’이라는 곡은 데뷔곡인데요. 국악은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편견을 깨부수기 위해서 만든 곡이거든요. 거문고도 개방현만을 이용해 강렬한 소리를 냈어요. 일렉트릭 기타 소리에 꿀리지 않는 밴드 사운드를 만들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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