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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개체가 가진 고유의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지문, 홍채, 목소리 등은 외관상 개인을 타인과 구별하게 해주는 수단이죠. 걸음걸이, 팔동작도 사람마다 다르다고 하는데 거기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눈썰미가 여간하지 않으면 구별하지 쉽지 않으니까요.


이 세상에 '나'와 꼭 닮은 도플갱어 혹은 복제인간이 있다면 어떨까요? 그가 내 동작, 목소리 등 나를 고스란히 따라한다면요? 소름 끼치지만 호기심은 들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약 내 목소리와 행동을 흉내내는데 외모는 전혀 다른 존재라면요? 그가 괴물같은 외양을 하고 있다면요? 정말 끔찍하지 않을까요? (너가 바로 그 괴물 아니냐고요?) <장산범>은 이런 상상을 기반으로 한 공포물입니다. 인터넷 괴담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구성했습니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The Mimic, '흉내 내는 자'라는 뜻입니다.



영화는 5년 전 아들 준서를 잃어버린 엄마 희연(염정아)과 아빠 민호(박혁권)가 딸 준희(방유설), 치매 노모(허진)와 함께 조용한 산골마을 장산으로 이사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 동네는 앞 못보는 무당이 살고 있고 실종사건이 계속 일어나는 등 뭔가 심상치 않은 곳입니다. 그러나 희연에겐 실종된 아들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어느 비오는 날, 희연은 집 뒤의 숲속에서 빨간색 드레스를 입은 소녀(신린아)를 발견합니다. 정체는 모르지만 가엾은 소녀가 집으로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소녀는 자기의 이름을 '준희'라고 말합니다. 희연의 딸과 똑같은 이름이죠. 이름만 같은 줄 알았더니 목소리도 비슷합니다. 심지어 계속 흉내를 냅니다. 희연과 민호는 누가 딸인지 헷갈려 합니다. 게다가 여자애의 말투는 실종된 아들을 닮았습니다. 준서와 준희를 섞어놓은 듯한 이 아이가 찜찜하긴 하지만 희연은 소녀를 떼어낼 수가 없습니다. 준서 역시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잘 돌봐주었으면 하는 절박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소녀는 희연의 약한 고리를 파고듭니다.




인간은 몸과 마음이 약해질 때 의지할 곳을 찾게 됩니다. 경제위기에 빠진 사람이나 정신적인 상처를 겪은 사람이 종교에 더 쉽게 빠지는 것은 그 때문이죠. 귀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들렸다'는 사람의 대부분은 어떤 트라우마를 갖고 있습니다. 그 트라우마가 어릴 적부터 계속된 것이라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죠.


영화 속 희연도 비슷합니다. 자신의 잘못 때문에 아들을 잃어버렸다는 자괴감이 5년 동안 그녀의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들을 잃어버릴 당시 희연은 볼 일을 보기 위해 아들을 시어머니의 손에 쥐어주고 나갔다 왔습니다. 하지만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는 손자가 어디로 갔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희연은 혹시나 시어머니가 기억을 되찾을까 싶어 남편이 요양원으로 모시자는 말도 거절합니다. 아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시어머니가 유일하니까요.


정체 모를 소녀는 희연의 이런 심약한 고리를 끝까지 파고듭니다. 희연은 장산범을 조심하라는 동네 무당의 경고를 받습니다만 어떤 경고도 아들을 찾고 싶다는 마음보다 우선일 수 없습니다. 희연은 소녀와 함께 동굴 속으로 들어갑니다. 실종된 사람들이 동굴 속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는 이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곡성>에서 의미심장한 메타포로 쓰였던 동굴은 <장산범>에서도 중요한 무대입니다. 이 영화에서 동굴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 등장하는 그 동굴을 떠올리게 합니다. 어릴 적부터 동굴 안쪽의 벽면만을 바라보고 자란 사람은 자신이 평생 보아 온 것이 동굴 벽면에 비친 그림자일 뿐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들은 소리도 그림자가 내는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들이 실제 사물을 본다고 해도 지금까지 보아온 것이 그 그림자라는 것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 번도 실물을 본 적 없기 때문이죠. 이것이 바로 플라톤이 말하는 '동굴'입니다. 인간은 모두 동굴 속에 살고 있고, 동굴 밖에 참된 세계인 이데아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희연은 동굴 속에서 목소리들을 듣습니다. 목소리들은 희연을 유혹합니다. 준서의 목소리, 준희의 목소리, 시어머니의 목소리, 남편의 목소리가 차례로 동굴에 울려 퍼집니다. 플라톤의 동굴로 말하자면 실체가 사라진 곳에서 그림자들이 계속해서 살아 있는 사람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동굴 속에서 희연의 눈이 멀어가는 것은 벽면만 바라보는 행위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그림자인 목소리밖에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이죠.


두 눈 부릅뜨며 참던 희연은 잃어버린 아들 준서의 목소리를 들을 때 자제력을 잃습니다. 그래서 그 목소리가 나오는 곳을 무작정 따라갑니다.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은 꿈에 그리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목소리만 똑같이 흉내내는 괴물이었습니다. 괴물은 희연의 약한 부분을 정확하게 건드려 그녀를 유혹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영화에서 가장 모호한 지점은 괴물의 목적입니다. 그가 왜 희연을 유혹하는지 영화는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그저 그곳에 괴물이 있다는 식이죠. 신들린 듯한 이준혁의 연기가 대단합니다만 그가 왜 그러는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조금은 막연합니다. 괴물 캐릭터를 조금 더 정교하게 설계했다면 영화의 짜임새가 더 살아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곡성>만 해도 쿠니무라 준이 연기한 악마 캐릭터에 공을 들인 결과 영화가 설득력이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산범>의 완성도는 나쁘지 않습니다. 허정 감독은 <숨바꼭질>(2013)의 성공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숨바꼭질>에 이어 이번에도 인물의 심리를 따라가며 은근슬쩍 놀래키는 솜씨가 좋습니다. 희연의 행동은 다소 도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염정아의 프로페셔널한 연기는 이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허정 감독이 계속 공포영화만 만들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컨저링>의 제임스 완처럼 이 분야의 일가를 이뤄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참, 이 영화는 사운드가 중요한 영화이니만큼 극장에서 봐야 영화의 의도대로 공포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장산범 ★★★☆

동굴 속 목소리 공포는 꽤 참신하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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