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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가요제는 2년에 한 번 열릴 때마다 논란을 낳습니다.

"방송의 힘으로 음원 시장을 싹쓸이한다." "대중가요를 획일화시키는 주범이다." "다른 가수들이 묻힌다." 등등이죠.

그런데 재미있는 건 정작 무도 가요제가 차트를 휩쓸고 난 뒤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냥 한바탕 신나게 놀고 그걸로 끝인 거지요.

잔잔한 바다에 고래가 한마리 뛰어들어 물을 휘젓고난 뒤 유유히 사라집니다.

그리곤 이렇게 말하겠죠. "I'll be back in 2 years."


아티스트들은 무도 가요제에 출연하고 싶어서 안달입니다.

어쨌든 차트 점령은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죠.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도 김태호 PD는 무도 가요제를 5회째 하고 있습니다.

2007년 강변북로 가요제, 2009년 올림픽대로 듀엣 가요제, 2011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 2013년 자유로 가요제에 이어 올해도 방송이 한창입니다.

처음엔 약간 장난처럼 시작했지만 이젠 가요계를 쥐락펴락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습니다.

사람들은 김태호 PD와 나영석 PD를 곧잘 비교하곤 하는데 두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이것입니다.

김태호 PD는 논란을 일으키면서도 꿋꿋이 갈 길을 갑니다. 그에 비해 나영석 PD는 논란을 일으킬 일을 만들지 않죠.



그런데 제가 무도 가요제를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대략 6주 동안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에서 창작의 과정을 그대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내로라는 음악인들 6팀이 등장해 콘서트를 위한 음악을 만듭니다.

더구나 팀을 이룬 사람은 음악과 큰 상관이 없는 아저씨들입니다.

당연히 많은 난관에 부딪힐 것이고 그들이 늘 해오던 작업 방식과도 다를 것입니다.

무도는 그 과정에 여러가지 살을 붙여서 재미를 뽑아냅니다.


올해 무도 가요제의 참가자는 아이유, 지디&태양, 박진영, 윤상, 자이언티, 혁오밴드입니다.

여섯 팀이 음악을 만드는 과정을 하나씩 살펴볼까요?

방송을 통해 본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실제 이렇게 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그들의 진짜 모습 중 일부일 것입니다.




1. 박진영 - 3시간에 곡 하나 뚝딱


박진영의 강점은 몰입인 것처럼 보입니다.

몰입하면 어떤 경지에 이를 정도로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밤밤밤'이라는 프레이즈에 꽂힌 그는 그것만으로 곡을 하나 만들어냅니다.


그는 자신에겐 흑인의 피가 흐르고 있어 그루브를 타는 음악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먼저 몸이 반응해야 그 다음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잘 아는 템포와 리듬에 맞춰 마치 숙련된 장인처럼 몸을 흔들고 그 속에서 멜로디를 끄집어냅니다.

따라서 3시간이면 곡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지금껏 능숙하게 해온 이런 과정에 대한 자신감처럼 보입니다.


수십 년간 '몰입'을 연구해온 이 분야의 대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이란 강한 집중과 끈기가 요구되는 도전적인 과제를 수행할 때 깊이 몰두한 상태"라고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몰입은 "과제의 난이도와 인간의 도전이 균형 상태에 있을 때" 나타납니다.

박진영이 줄곧 유재석을 향해 "너의 댄스본능을 일깨워주겠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이런 균형의 상태에 있다는, 즉 몰입하고 있다는 증명입니다.




2. 아이유 - EDM이 싫어요


아이유는 자신이 잘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목소리만 듣고도 누군지 알 수 있는 음감을 갖고 있는데 이는 3단 고음을 넘나드는 목소리와 더불어 반복된 훈련의 결과일 것입니다.


아이유는 서정적인 곡을 하고 싶어하지만 박명수는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 마니아입니다.

아이유에게 댄스곡이 없는 게 아니죠. '마쉬멜로우' '모던 타임즈' '분홍신' 등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이 곡들은 모두 아이유가 작곡한 곡들이 아닙니다.

그녀가 작곡한 곡들은 '금요일에 만나요' '싫은 날' 'Voice Mail' '마음' '복숭아'처럼 통기타 하나로 부를 수 있는 노래들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노래들이 점점 인디밴드의 곡을 닮아가고 있는데 그건 한국 주류음악이 점점 비슷해지고 있는 것과 정반대로 아이유가 다양한 곳에서 음악의 영양분을 섭취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박명수가 고집하는 것처럼 EDM으로 음악적 변신을 하는 것, 그래서 레옹과 마틸다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선 해볼 만한 변신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겠지만 사실 지금까지 아이유의 행적으로 보건데 결코 쉽게 선택할 도전은 아닐 것입니다.

아무리 그녀가 뛰어난 싱어송라이터라고 하더라도 그녀는 자신의 분야에서 계속 발전중인 뮤지션이거든요.

갑자기 지금까지 해오던 것과 전혀 다른 음악을 하는 것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유는 나이는 어리지만 음악을 만드는 방식은 70~80년대 통기타 가수를 연상시킵니다.

통기타를 치면서 하나씩 음을 잡아가는데 펜으로 일일이 악보에 콩나물을 그리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녀가 쓴 가사들 역시 마찬가지죠.

나이에 어울리는 풋풋한 첫사랑을 그리고 있지만 요즘 트렌드에 비춰보면 굉장히 올드합니다.

한편으론 컨트리송을 부르는 테일러 스위프트를 연상시키기도 하네요.


무도 멤버들과 뮤지션들은 아이유에게 EDM을 권했습니다.

이제 그녀는 조금이라도 자신의 음악에 EDM을 집어넣어야 합니다.


그녀는 완벽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드림하이> <최고다 이순신> <프로듀사>에 출연해 연기에 도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음악과 연기는 다릅니다.

차트를 휩쓸 것이 분명한 무도 가요제에서 커리어의 오점을 남기고 싶은 뮤지션이 어디 있을까요?

아이유가 과연 지금까지 해오지 않던 이질적인 문화를 흡수해 멋진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3. 윤상 - 나도 힙합을 쓰고 싶어


윤상도 일렉트로닉 음악을 했었습니다.

그는 한때 테크노 음악에 경도돼 발라드와 차별화를 시도했었지요.

최근에도 '날 위로하려거든'이라는 곡을 만들었는데요. 참 좋습니다.


무한도전에서 그는 정준하와 함께 힙합에 도전했습니다.

정준하는 열심히 랩을 연습했는데요.

그런데 정작 윤상이 들고 온 곡은 힙합이 아니라 일렉트로닉에 가까웠습니다.


이는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창작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입니다.

윤상은 이미 발라드에선 가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수많은 히트곡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곡은 늘 세련됨의 극치를 달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힙합을 만든 적은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


물론 머리로는 도전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는 성격적으론 조금 까탈스럽긴 하지만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열려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죠.

정장에 힙합모자를 쓰고 도전자의 자세로 새롭게 시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힙합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물은 힙합이 아니었습니다.

힙합과 일렉트로닉의 중간에 있었습니다.


한 장르에서 성공한 창작자가 다른 장르에 도전해서 그 성공을 재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능PD가 드라마를 만들고, 스릴러 영화감독이 로맨틱코미디를 만들고, 소설가가 시를 쓰는 것처럼 넘어야 할 벽이 다른 도전입니다.


어쩌면 윤상은 박명수와 팀을 이뤘다면 둘이 함께 멋진 EDM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정준하는 박진영의 그루브와 잘 맞는 것 같았고요.




4. 자이언티 - 화석 발굴가


음원깡패 자이언티는 방송에 그려진 모습만으로는 전형적인 천재 스타일의 뮤지션처럼 보입니다.

사람, 장소 등에 영감을 받으면 그것이 머릿속에 한 곡의 음악으로 각인되는데 그는 그것을 고스란히 음표로 옮깁니다.


소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소설은 땅 속의 화석처럼 발굴되는 것"이라고 했는데 자이언티의 창작 방식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는 하하에게 "음악은 이미 있어. 나는 다 보여. 걱정하지 마"라고 말합니다.

이미 땅 속에 있는 음악을 꺼내기면 하면 되니 다른 팀이 안절부절할 때도 느긋한 것이죠.


그는 음악을 꺼낼 때도 조심스럽게 살살 파내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확 끄집어냅니다.

이날 방송에서 자이언티는 작곡한 음악의 리듬과 프레이즈를 일부 들려주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이번 가요제의 최대 기대작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5. 오혁 - 노력파


요즘엔 누구나 컴퓨터와 신디사이저만 있으면 음악 한 곡을 뚝딱 만들 수 있습니다.

옥탑방에 홀로 사는 오혁이 음악을 만드는 방식 역시 그렇습니다.

컴퓨터 앞에서 밤을 새가면서 곡을 완성합니다.

옥탑방이기에 방음벽도 필요 없죠.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지하나 옥탑방에 작업실을 두는 이유는 대개 방음 때문입니다.


오혁은 인디밴드 혁오의 리더입니다.

그는 동양적인 느낌이 강한 음악을 하고 싶어합니다.

그들이 해오던 모던 록과 스윙재즈를 결합한 듯한 음악에 몽환적인 느낌을 가미하려는 것이죠.


그런데 오혁은 세번째 곡으로 뜻밖의 음악을 들려주었습니다.

앞소절만 들었을 땐 전형적인 컨트리송이었습니다.

오혁은 이 곡은 다음 앨범에 넣기 위해 준비중인 곡이라고 했죠.

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시도하고 이를 조합해 믹싱하는데서 재미를 찾는 창작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찌보면 이는 아이유가 갖지 못한 능력처럼 보입니다.

아이유가 혁오의 팬이 된 것에는 이런 점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정형돈은 오혁의 곡들 중 컨트리송을 선택했습니다.

그가 들려준 곡들 중 제일 밝기는 했습니다만 컨트리송은 대체로 무대에서 빛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혁을 보고 있으면 <인사이드 르윈>의 르윈이 컨트리송을 부르는 장면이 떠오르는데요.

무도 멤버들이 댄스곡에 대한 강박관념만 덜어낸다면 더 좋은 곡이 나올 수도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제6회 가요제는 가을에 하는 것은 어떨지요?




6. 지디&태양 - 뺄셈의 창작


예능에 집중하느라 방송엔 아직 이들의 창작 과정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유일한 힌트는 지드래곤이 광희에게 말한 이 한마디입니다.


"처음엔 어떻게 할지 막막했어요. 그러나 다음 번 만남에선 뭘 하지 말아야 할지를 알았고, 그 다음엔 방향을 잡았죠."


이는 하나씩 가능성을 줄여가는 창작의 방식입니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픽사의 작가들이 이렇게 한다고 하죠.

이야기를 쓰다가 막히면 앞으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의 리스트들을 만들어보고 하나씩 뺀다고요.


광희를 만난 지드래곤과 태양은 처음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광희를 관찰합니다.

뭐가 가능한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둡니다.

그리고 함께 놀면서 한 가지씩 삭제해갑니다.

그들이 결국 선택한 음악은 어떤 스타일일까요?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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