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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의 성자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채택한 프란치스코 1세 교황이 8월 14일 한국에 온다. 취임 이후 낮은 행보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최초의 비유럽 출신 교황인 그는 지난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고, 경제지 [포천]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꼽을 정도로 카톨릭 개혁의 구세주로 주목받고 있다.


'예수의 대리자'이자 '서방의 총대주교'를 자임하는 교황의 역사는 2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교황인 예수의 제자 베드로 이래 과거 제정일치 유럽에서 교황은 막강한 권력을 누려왔으나 16세기 종교개혁으로 치명타를 입었다. 19세기엔 교황령이 통일 이탈리아의 일부가 되면서 바티칸시국의 상징적인 군주로 남았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교황의 역할과 그에 대한 평가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랐다. 나치 만행에 침묵한 비오 12세는 공분을 불러일으킨 반면, 1960년대 제2차 바티칸공의회로 교회개혁을 주도한 요한 23세는 지금도 칭송받는다.


2000년간 지속되어온 교황은 특유의 '신성'으로 인해 대중문화가 다루기 어려워했지만 피해가지는 않았던 소재다. 교황의 업적과 전기를 다룬 작품부터 폐쇄적인 바티칸의 음모론까지, 영화 속에 비친 교황의 모습은 위대하거나 혹은 폐쇄적이었다. 그동안 만들어진 영화 속 교황을 살펴봤다.



1. 교황의 자격을 묻는 영화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난 감당 못해요! 난 교황 재목이 아니에요."


영화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에서 이제 막 교황으로 선출된 멜빌 추기경의 갑작스런 선언이다. 프랑스의 대배우 미셸 피콜리가 연기한 멜빌 교황은 바티칸의 발코니로 나아가 손을 흔드는 대신 사복을 입고 몰래 속세로 들어가 자신의 지난 인생을 돌아본다.


이탈리아의 거장 난니 모레티 감독이 2011년에 만든 이 작품은 두 가지가 흥미로운 영화다. 첫째, 교황이라는 위치가 갖는 무게감에 대해 묻는다. 신임 교황은 심리치료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이 과연 전세계에서 모인 이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 갈 수 있을지 자문한다. 그리고는 능력이 안 된다면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결론내린다. 오늘날 권력욕에 사로잡힌 권력자들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이다.


둘째, 교황을 선출하는 절차인 콘클라베가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새로 선출된 교황이 발코니에 나서지 못하자 추기경들은 바티칸 내부에 갇힌다. 교황을 치료하기 위해 도착한 정신과 의사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새로운 교황이 누구인지 아직 세상에 공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니 모레티가 직접 연기한 정신과 의사는 세계 각지에서 온 추기경들과 배구 경기를 하고, 또 도박사들이 교황이 될 확률을 누구에게 더 많이 걸었는지 추기경들과 맞히기 놀이를 하면서 노는데, 영화 속이지만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바티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콘클라베의 43년 전 모습을 볼 수 있는 오래된 영화도 있다. 마이클 앤더슨 감독의 1968년 작품인 <어부의 신발>에는 1960년대 바티칸의 콘클라베가 등장한다. 영화는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정치범으로 20년간 복역한 우크라이나 대주교 키릴이 추기경이 되고 다시 교황이 된다는 이야기다. 폴란드 출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등장하기 전이라 당시 우크라이나 추기경이 교황이 된다는 스토리는 종교계에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때까지 교황은 무려 455년 동안 이탈리아인만이 맡아왔었다. 영화는 콘클라베에서 며칠 간의 고심 끝에 키릴이 추대되고 투표용지가 불태워져 굴뚝으로 하얀 연기가 내뿜어지는 과정을 차분하게 담는다.


어부의 신발


"당신은 이제 고독한 순례의 여정을 떠나는 것입니다. 죽을때까지 평생 그래야 하며 그걸 피할 길이 없습니다."


<어부의 신발>에서 한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된 키릴에게 하는 말이다. 20년 동안 갇혀 있던 러시아 감옥에서 출소한지 얼마 안 된 키릴은 이젠 바티칸이라는 또다른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야 한다. 영화의 제목인 '어부의 신발'은 교황의 자리를 의미하는 단어로 초대 교황인 베드로의 직업이 어부였다는 것에서 유래했다. 어부의 신발을 신는다는 것은 길고 고독한 숙명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라고 한다.


배우 인생 절정기의 안소니 퀸이 연기한 키릴은 "나는 재능에 비해 너무 높이 앉아있는 낮은 자"라며 자신을 낮춘다.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에서도 콘클라베에 참가한 추기경들은 모두 "저는 아니라고 해 주소서"라고 기도하며 교황직의 압박을 피하려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2013년 스스로 물러난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떠오르게 한다.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선출될 당시 "제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활기차고 강력하게 큰 과업을 맡을 젊고 나은 후보들이 있습니다"라는 기도를 했다고 고백한 바 있는데, 이 말은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의 모티프가 됐다.



2. 실제 교황을 다룬 영화


프란체스코와 교황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재임시절 직접 등장한 영화도 있다. 2011년 다큐멘터리 영화 <프란체스코와 교황>이다. 이 영화에서 교황은 프란체스코라는 어린이의 시점에서 보여진다. 교황이 직접 거주하는 공간인 시스티나 예배당에는 초등학교 수준의 교육기관이 있는데 프란체스코는 초등학교 3년생으로 성가대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교황 앞에서 솔로를 부르기 위해 열심히 연습한다. 베네딕토 16세는 아프리카와 중동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오고 마침내 프란체스코는 교황 앞에 선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밋밋하지만 교황의 전용기 옆에 전투기가 따라다니고 바티칸 통제실에 3천여 개의 CCTV가 설치돼 있는 것 등 그동안 바티칸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실제 교황에 관한 영화로 1981년 작품 <먼 나라에서 온 성자>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도 두 번이나 방문한 적 있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일대기를 다룬 이탈리아-폴란드 합작영화로 크지쉬토프 자누쉬가 연출하고 샘 닐이 출연했다. 폴란드 청년 카롤 보이티야는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배우가 되고 싶던 꿈을 버리고 교회에 헌신한다. 전후 공산주의 정권에서 교회탄압이 이어지지만 카롤은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주교가 되고 결국 455년만에 첫 비이탈리아계 교황이자 역사상 첫 슬라브계 교황이 된다. 한국에서는 1990년 뒤늦게 개봉했다.


아빠와 화장실


2007년 우루과이 영화 <아빠의 화장실>은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가 우루과이를 찾았을 때 작은 마을에서 일어났던 소동에 픽션을 가미했다. 가진 거라곤 자전거 한 대 뿐인 철부지 아빠는 교황이 오면 관광객도 많이 올 거라는 생각에 유료 화장실을 짓기로 한다. 딸 학비까지 털어 변기를 사서 화장실을 짓지만 교황의 방문은 허탈한 퍼포먼스로 끝나버린다. 대통령은 교황의 남미 첫 방문이라는 성과를 자랑하기에 급급하고, 교황은 마을 주민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한 채 다음 순방지로 이동한다. 영화는 교황 방문을 자신의 홍보에 이용하는 정치인들과 가십거리만 양산하는 언론을 비꼰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격언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이밖에 1951년 머빈 르로이 감독의 <쿼바디스>에는 핀레이 큐리가 첫번째 교황 베드로 역으로 등장한다. 1965년작 <고통과 환희>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을 받아 시스티나 예배당에 천정화를 그리는 미켈란젤로 이야기로 <제3의 사나이>로 유명한 영국 감독 캐롤 리드가 연출하고 찰튼 헤스턴이 미켈란젤로로 출연했다.



3. 감추고 싶은 역사 속 교황


보르히아


논란 속 과거의 교황을 그린 영화도 있다. 2006년작 <보르히아>는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초까지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모델이 된 체사레 보르자를 그린 스페인 영화로 사생아인 체사레의 부친이 바로 스페인 발렌시아 출신 교황 알렉산드로 6세다. 알렉산드로 6세는 전쟁을 부추기고, 정략결혼, 근친상간, 살인, 고문 등을 자행해 역사상 최악의 교황으로 평가받는데 결국 독살당한다. 그의 아들이자 교황 군대 사령관인 체사레도 이탈리아를 정복할 뻔하다가 쫓겨나 죽고, 그의 딸 루크레치아는 역사에 팜므파탈로 기록되며 수많은 소설과 그림, 영화의 모델이 된다. 알렉산드로 6세는 이후 종교개혁의 빌미가 됐는데 그의 뒤를 이은 율리우스 2세는 그가 쓰던 방을 모두 폐쇄해버리기까지 했다.


교황제가 2000년이 넘게 지속되어 오는 동안 교황은 늘 남자였다. 그런데 1265년 도미니코회의 수사 마르티니는 '교황과 황제 연대기'에서 중세시대에 여성 교황 조안이 있었다고 썼다. 조안은 여성임을 숨기고 교황이 됐는데 심지어 그녀는 동료 수사와 잠자리를 갖고 임신, 출산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에 격분한 교회는 조안을 죽게 하고 그를 공식 교황의 이름에서 제외했다. 이후 교황이 되려면 수임식 중 가운데가 뚫린 의자에 앉아 생식기를 확인하는 '의자 시험' 절차가 생겼다고 한다.


여교황 조안


카톨릭계와 역사학자들이 여성 교황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긴 하지만, 영화가 이런 흥미로운 소재를 놓칠리 없다. 1972년 영국 감독 마이클 앤더슨과 2009년 독일 감독 죈케 보르트만이 각각 영화로 만들었다. 그중 최근작인 2009년 <여교황 조안>은 1996년 발표된 도나 울포크 크로스의 소설을 바탕으로, 9세기 배움을 통해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된 조안이 전직 교황의 묵인 아래 남자로 변장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극적으로 그렸다. 영화는 교황 조안이 재임 기간 중 아기를 출산하면서 성난 군중에 의해 찢겨 죽은 장면을 담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4. 그밖의 영화 속 교황들


천사와 악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도 교황과 바티칸은 곧잘 논란 속에 등장했다. 교황의 인기가 바닥이고 바티칸의 폐쇄적 운영으로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가 인기를 얻고 있을 때 만들어진 영화들이다. 2006년 <미션 임파서블 3>에서는 교황청이 극중 납치사건의 무대가 됐고, 2009년 <천사와 악마>에서는 교황이 살해당하면서 이를 둘러싼 음모론이 그려져 당시 카톨릭계가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다.


교황청과 마피아의 커넥션을 다룬 영화도 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1990년작 <대부 3>에는 마피아가 바티칸 은행을 통해 돈세탁을 하는 장면이 나오고, 신임 교황이 마피아에 의해 암살당했다는 대사가 등장해 1978년 즉위한 지 33일 만에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의 독살설을 암시하기도 했다.


보석상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배우 지망생이던 1960년대에 쓴 연극을 <포프 조안>을 만든 마이클 앤더슨 감독이 1989년 <보석상점>이라는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버트 랭카스터와 올리비아 허세가 주연한 이 영화는 사랑과 결혼의 의미에 대해 탐구하며 남녀간의 진정한 사랑은 대물림된다고 이야기한다.


한편, 13세기 교황이 타락했을 때 교황보다 더 존경받았던 성자이자 교황 프란치스코의 롤모델인 성 프란시스를 다룬 영화도 있다.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1950년작 <성 프란시스의 꽃>, 마이클 커티즈의 1961년작 <아씨시의 프란시스>, 프랑코 제피렐리의 1972년작 <브라더 선 시스터 문> 등이다.



이 글에 등장하는 영화들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We Have a Pope/Habemus Papam) (2011)

어부의 신발 (The Shoes of Fisherman) (1968)

먼 나라에서 온 성자 (From a Far Country) (1981)

아빠의 화장실 (The Pope's Toilet) (2007)

프란체스코와 교황 (Francesco and the Pope) (2011)

여교황 조안 (Pope Joan) (2009)

포프 조안 (Pope Joan) (1972)

보르히아 (The Borgia) (2006)

천사와 악마 (Angels & Demons) (2009)

미션 임파서블 3 (Mission: Impossible III) (2006)

고통과 환희 (Agony and the Ecstasy)(1965)

쿼바디스 (Quo Vadis) (1951)

보석상점 (The Jeweller’s Shop/La bottega dell'orefice) (1989)

대부 3 (The Godfather : Part III) (1990)

성 프란시스의 꽃 (The Flowers of St. Francis) (1950)

아씨시의 프란시스 (Francis of Assisi) (1961)

브라더 선 시스터 문 (Brother Sun, Sister Moon) (1972)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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