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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참사는 오보와 함께 시작됐다.학생 전원 구조.” 416일 아침 출근길에 뉴스를 보면서도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지 이것이 대재앙의 전조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도 뉴스를 접한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망자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점심시간이 지난 후 구조자 숫자는 실종자 숫자로 바뀌었고 이 숫자마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오후 3시경 100여 명이라던 실종자 숫자가 294명으로 바뀌었을 때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점심을 먹고 온 것이 미안할 정도였다.


그 이후 며칠이 지났다. 구조자 숫자는 174명에서 정박해 미동도 하지 않고 있고 실종자 숫자는 사망자 숫자로 속속 전환되고 있다. 배 안에 소중한 사람을 남겨둔 가족들은 실신해 일부는 링거를 꼽고 있기까지 하다.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은 바다 속 선실에 그대로 있는데 배 밖에 있는 우리들은 그들을 구조해 올 방법이 없어 우왕좌왕하는 중이다. 인간은 지난 수십 년 간 발전해왔다고 스스로 자부해왔지만 102년 전 타이타닉호 침몰 때나 21년 전 서해훼리호 침몰 때와 비교해 더 나아진 것이 없는 현실에 망연자실할 뿐이다.

 

이번 참사가 일어난 과정과 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선진국인줄 알았지만 그것은 말뿐이었다. 경제규모는 커졌을지 몰라도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수준은 여전히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책임한 선장, 실종자 가족 요구 묵살하는 정부, 슬픔을 팔아 장사하는 언론, 공감능력 제로인 일베충을 비롯한 꼴통들까지. 세월호는 대한민국호의 총난맥을 그대로 드러내는 거울이다. 문제점을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보자.

 

첫째, 리더십의 부재다. 나는 리더십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 사람들을 이끌고 계몽한다는 개발시대의 구호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상황에서는 일사분란함이 곧 생명줄이다. 인간의 본성이 통제하고 제어해야하는 원칙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침착하고 배려 깊으면 좋겠지만 불행하게도 인간은 생존 앞에서 나약한 포유류 사람종에 속한 동물일 뿐이다. 따라서 급박한 위기상황에서는 상황을 통제할 훈련된 리더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리더가 대한민국엔 드물다.

 

선장이 가장 먼저 탈출한 것을 놓고 임진왜란 때의 선조나 한국전쟁 때 이승만까지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당장 청와대를 보라. 박근혜는 사건 3일 후 진도를 방문해 구조된 5살 여자아이와 사진을 찍었다. 실시간 구조상황을 알려달라는 가족을 향해서는 본인이 직접 전화해드리겠다는 말로 참모들의 박수를 받았으나 정작 현장에서는 대통령의 방문 때문에 몇 시간 동안 공무원들이 대기해야 했다. 대통령은 몇 시간 후 청와대로 돌아갔지만 그 이후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크레인의 사용료를 놓고 대기업과 해양경찰청이 옥신각신 했을 뿐이다. 오죽하면 실종자의 가족들이 직접 콘트롤타워를 맡고 현장을 지휘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올까. 그런데 정부는 진도에 경찰을 투입해 가족들을 관리하고 입단속하기에 여념이 없다. 누구를 위한 사고처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본말이 전도된 정부의 행동에 분통이 터진다.


둘째, 언론의 부재다. 이 땅의 언론이 받아쓰기에 일관한 역사는 길다. 그들은 출입처의 보도자료가 없으면 기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관료들의 말을 받아쓰던 언론은 재벌의 말 받아쓰기도 열심이다. 진실을 파헤치려는 사명감을 가진 기자는 좌천당하고 회사에서 쫓겨나 안정된 생활을 하기 힘들다. 대한민국 언론에 탐사보도가 부족한 이유는 기자들의 실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언론이 그들을 내팽개치기 때문이다. 몇몇 보수 언론사들은 아예 말 잘 들을 것 같은 기자들만 채용한다. 기자들이 평소 재난보도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희생자를 배려하지 못하는 언어들이 넘쳐난다. 종편, 인터넷 등 매체가 늘어나면서 시청률과 클릭 경쟁에 매몰되다보니 재난보도준칙은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다. 여기에 그동안 대안 언론으로 주목받았던 SNS 역시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과 막말로 혼탁해졌다. 일부 언론은 클릭수를 노리고 이런 막말과 거짓 정보의 확대재생산에 기여하기도 했으니 SNS가 언론의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언론이 SNS화되고 있다.

 

셋째, 직업윤리의 부재다. 최근 <행복한 사전>이라는 일본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 속 주인공은 사전 한 권을 만들기 위해 15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한다. 본인이 만족할 때까지 3천 만 개의 단어를 수집해 다섯 번의 교정을 거친다. 전자사전이 넘쳐나는 시대에 누가 볼지 알 수 없는 종이사전에 젊음을 바친 것이다. 이는 본인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직업윤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영화를 보면서 과연 대한민국에 이런 직업윤리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묻고 싶어졌다. 이 땅에서 직업이라는 것이 연봉 순으로 정렬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 적이 있던가? 어떤 직업이 잘 나가고 돈을 많이 버는지는 궁금해 했어도 그 직업이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본 사람은 얼마나 있나?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말은 판사, 검사와 의사가 최고의 직업이라는 것이었다. 또 요즘 대학 도서관은 공무원과 대기업 입사 시험 준비를 위해 불야성이다. 돈과 안정성만이 오늘날의 직업윤리를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장인은 은퇴하면 곧장 치킨집 자영업으로 내쳐져 생활고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장인정신을 가져야 할 고참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없는 사회인 것이다. 장인정신을 갖지 못한 선배를 보는 후배에게 직업윤리를 기대할 수 있을까? 당장 나부터도 신문사에 입사할 때 사내에서 한 번도 기자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형식적으로 언론재단 연수가 있었을 뿐이다. 그러곤 당장 기사를 작성해내거나 좋은 지면을 만들 것을 강요받았다. 직업윤리가 없는 사회는 먼저 도망가는 선장과 승조원, 구조 골든타임을 놓친 해양경찰, 이들을 감독하지 못한 안전행정부, 대통령만 바라보는 해양수산부, 뒤늦게 사과하고 잠적해버린 청해진해운, 무엇을 보도해야 하는지 모르는 언론을 낳았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세월호를 운항하는 청해진해운이라는 회사의 실체다.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세월호는 일본에서 18년 간 운행하다가 퇴역한 것을 중고로 사온 것이다. 한국에서 여객선의 운항 수명은 20년이었다. 이를 규제완화라는 명목으로 30년으로 늘린 것이 이명박 정부였다. 지난 200911월 일본에서도 세월호와 비슷한 종류의 배가 침몰했던 사고가 있었다. 당시 일본 아리아케호는 인명피해 없이 사고를 수습했는데 그때도 원인으로 지목됐던 것은 카페리호의 구조적 위험이었다. 자동차를 싣는 특성상 1, 2층에 넓은 공간이 필요하고 여기에 물이 차게 되면 배가 균형을 쉽게 잃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의 사고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청해진해운의 모기업을 거슬러 올라가면 1987년 여름을 떠들썩하게 했던 오대양사건과 선이 닿는다. 오대양사건의 교주와 연관 있던 세모그룹의 회장 유병운의 두 아들이 바로 청해진해운 모기업 아이원아이홀딩스의 최대주주다. 32명 집단자살이라는 극단적 사건으로 당시 한국사회에 충격을 안겼던 이단 종교집단과 밀접하게 연결된 자의 후손이 여객선회사를 운영해온 것이다. 당시 파산했던 세모그룹이 어떤 과정으로 세월호를 운영하게 됐는지 이런 팩트야말로 탐사보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동안 대한민국이 정보기술(IT) 강국이고 조선 강국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을 통해 그런 자화자찬이 얼마나 허울뿐인 구호였는지 실체를 뼈저리게 알게 됐다. 물론 이 땅에는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같은 거대한 조선회사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거대한 배를 만들 뿐 여객선 사업은 하지 않는다. 한진그룹과 금호그룹이 항공기 여객 사업을 하고 있고 대기업이 야금야금 KTX 민영화를 노리고 있는 것에 비교해보면 의아할 만도 한데 그만큼 여객선은 수지가 맞지 않는 사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동네 빵집까지 하려고 덤벼드는 대기업이 돈만 된다면 당장 한강이든 서해든 배를 띄웠을 것이다. 이는 그만큼 여객선이 왜 열악할 수밖에 없는지를 반증한다. 출항 전 안전점검에 소홀했고 구명정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으며 선장은 68세로 여느 직장이었으면 이미 은퇴할 나이였다. 크루즈라고 하며 라이브 쇼나 불꽃놀이를 기획해 놓았지만 겉만 번지르르할 뿐 돈 안 되는 이 사업에서 흑자를 내기 위한 최우선은 비용절감이었을 테고 그 결과는 세월호 참사라는 대형 사고로 나타났다.

 

정말 우리에게 정보기술이 없고 조선 기술이 없고 구조 기술이 없는 것일까? 배를 번쩍 들어 올려줄 슈퍼맨이나 아이언맨이 없는 것을 한탄만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안전에 필요한 기술은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우선순위가 뒷전으로 밀린 것이다. IT에서는 보안이 찬밥 신세고, 운송에서는 안전이 귀찮은 것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꼭 사고가 난 뒤에야 이런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 그런데 교훈을 얻었다고 과연 그것이 고쳐지기는 할까? 돈이 지배하는 논리를 무시하고 꿋꿋이 밀어부칠 수 있을 만큼 인간이 돈보다 더 센 권력을 갖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훗날 또 이런 사고가 반복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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