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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트> <대학살의 신>처럼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도 유명한 연극을 영화화했습니다. 트레이시 레츠의 퓰리처상 수상작 'August: Osage County'가 원작입니다. 세 영화의 공통점이 있죠. 바로 화려한 캐스팅입니다. 배우들이 탐냈던 연극인 덕에 한 화면에서 보기 힘든 스타들이 너도나도 출연하고 싶어하는 거겠죠. 위 사진을 보세요. 줄리안 니콜슨, 줄리엣 루이스, 더못 멀로니, 베네딕트 컴버배치, 크리스 쿠퍼, 이완 맥그리거, 아비게일 브레슬린, 줄리아 로버츠, 마고 마틴데일(왼쪽부터 시계방향)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네요. 사진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이들의 반대쪽에는 메릴 스트립이 앉아 있습니다. 그녀는 이제 이들에게 웃고 떠들지 말고 장례식 만찬답게 재킷을 입고 예의를 갖추라며 한참 설교를 늘어놓을 예정입니다. 엄마의 비아냥대는 말투에 질려 있는 그녀의 세 딸들은 참지 못하고 이 식탁에서 한바탕 난리를 칠 겁니다. 그런데 누가 죽었냐고요? 그녀의 남편입니다. 남편 역할은 감독 겸 작가이자 배우인 샘 셰퍼드가 맡았습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캐스팅입니다.


"가족은 유전자의 우연한 조합의 결과물일 뿐, 우리가 무슨 공통점이 있어요?" 영화 속에서 둘째 딸 아이비(줄리안 니콜슨)가 하는 말입니다. 그녀는 오십이 다 되도록 부모 곁을 지킨 유일한 딸이죠. 다른 두 딸들은 도시로 나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이들 중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들 문제를 감춘 채 살고 있을 뿐이죠. 첫째 딸은 남편과 별거중이고, 둘째 딸은 사촌과 금지된 사랑에 빠졌고, 셋째 딸은 열살 많은 남자와 약혼했는데 그 남자는 처형의 딸까지 건드리는 바람둥이입니다.


그들이 숨겨왔던 문제들이 이 식탁에서 폭발합니다. 왜냐고요? 공통점이 전혀 없어 보이는 세 딸들을 가족으로 존재하게 해준 엄마 바이올렛(메릴 스트립)의 괴팍한 성격 때문입니다. 그녀는 채식주의자인 손녀딸을 놀리고 인디언 가정부를 인종차별적인 언사까지 해가며 무시하고 막내딸이 데려온 남자는 기억도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엄마가 원래부터 이랬을까요? 큰 딸 바바라(줄리아 로버츠)와 욕설을 주고받는 싸움 끝에 엄마는 옛날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자신이 못된 엄마가 된 것은 그녀의 엄마에게 물려받은 성질이라나요. 그리고 엔딩에 이르러 엄마와 이모 사이에 그동안 꼭꼭 숨겨왔던 또하나의 폭탄 고백이 이어집니다. 비밀의 골이 깊고 그것을 홀로 간직해야 했던 세월이 길수록 마음에 쓰라린 상처가 나겠지요. 엄마의 병은 거기에서 비롯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영화의 광고 카피대로 엔딩으로 갈수록 '막장 같은 스토리'로 치닫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그러나 메릴 스트립과 줄리아 로버츠의 멋진 연기 앙상블에 심취해 있다보면 어느새 러닝타임이 훌쩍 지나가 있습니다. 반전을 거듭하는 각본과 그 스토리라인의 강력함을 불 뿜어내듯 소화해낸 배우들의 연기력이 루즈한 연출을 덮어버립니다.


영화의 배경은 미국 중부 지방인 오클라호마 오세지 카운티입니다. 영화의 제목처럼 8월에 일어난 일이죠. 앵무새를 키우기 위해 에어컨도 달지 않은 엄마의 집에 모인 가족들은 더위로 인해 계속해서 땀을 흘립니다. 무더위는 이들을 더 열받게 하고 결국 그들은 폭발해 자기 성질을 드러내고 맙니다. 그런데 영화는 왜 이 시골 한복판에서 뜨거운 한여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바이올렛의 대사 중 돈과 혈통에 관한 이야기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오세지 인디안 학살' 사건이 벌어진 것은 1921년~1925년이었습니다. 60명이 넘는 오세지 원주민들이 원유를 노린 탐욕스런 백인들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원래 오세지 지역은 원주민들의 세력이 강한 곳이었습니다. 이곳의 대표도시가 파우허스카(Pawhuska)라는 원주민식 지명을 갖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1897년 오세지 카운티에서 원유가 발견됐고 1921년 이전에는 기름이 나는 땅을 백인과 원주민들이 나눠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21년 법이 제정되면서 원주민 혈통이 절반이 넘는 자들은 법적인 후견인을 세우도록 하였습니다. 혈통이 절반이란 말은 부모 중 한쪽이 원주민인 것을 뜻할 것입니다. 후견인은 대부분 백인 변호사나 사업가들이 맡았고 여기서 문제가 터집니다. 이들이 원주민을 죽이고 땅을 빼앗은 것이죠. FBI가 출범한 초기에 에드가 후버가 이 사건을 수사했는데 윌리암 헤일 갱단이 연루되었다는 것을 밝혀냈지만 큰 성과는 없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처벌받은 자는 고작 3명에 불과했고 대부분 미제사건으로 남았습니다. 훗날 20세기말에 한 언론인이 사후감식 탐사보도를 통해 백인들이 이 사건을 덮으려는 집단적 부패가 있었다는 것을 밝혀내면서 오세지 카운티 원주민들의 억울한 죽음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1925년 의회는 원주민의 재산을 비원주민에게 상속할 수 없다는 법을 새로 제정해 악명높은 1921년 법을 막았지만 이미 많은 원주민들이 공포에 떨며 이 지역을 버리고 떠난 뒤였죠.



식탁에서 찰스(크리스 쿠퍼)는 동물이 느꼈을 공포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조카손녀에게 난 평생을 육식만 먹고 살았는데 그동안 공포를 먹어왔다는 말이냐며 비아냥거립니다. 그 말에 바이올렛을 비롯해 식탁에 앉은 많은 이들이 웃으며 동조합니다. 이 장면은 오세지 카운티 백인 후예들의 야만성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보입니다.


영화 속에서 바이올렛은 가족들이 떠나고 난 뒤 가정부인 원주민 조나(미스티 업햄)에게 안깁니다. 영화 속에서 조나는 오세지 카운티를 지키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백인들에게 음식을 차려주는 그녀는 미성년자를 희롱하는 남자를 보고 나서는 그를 삽으로 내려치며 마치 보안관처럼 행동합니다. 조나에게 그들은 모두 이방인입니다. 그래서 한 번도 식탁에 함께 앉지 않습니다. 바이올렛이 "인디안이 원주민이면 이 땅의 원주민은 공룡 아니냐"고 비아냥댈 때도 묵묵히 참고 있던 그녀는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이룩한 백인들의 가족 공동체가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지를 영화 내내 똑똑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난 뒤 이제 그들이 언제 다시 모이게 될 지 아무런 기약도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유전자의 우연한 조합일 뿐 아무런 공통점도 없기 때문입니다. 바이올렛은 세 딸들에게 남편과의 돈 약속에 대해 털어놓습니다. 혼자 남는 쪽이 돈을 갖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 옛날 오세지 원주민의 후견인을 자처했던 백인들이 돈 욕심에 원주민을 살해했던 것처럼 남편의 자살은 이제 미궁 속으로 빠져듭니다. 남편은 정말 자살한 것일까요? 루즈한 연출이 못내 아쉬웠던 이유는 감독이 이 부분을 좀더 부각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원작 연극이 더 보고 싶어지는군요.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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