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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그거 반미 빨갱이들이 설치는 거 아냐?"
"... 네, 맞습니다."

"어제 집회서 폭력사태가 났다며? 그거 쎄게 조저 버려"
"네."

"걔네들 쇠고기 문제만 하는게 아니라 공기업 민영화 반대나 뭐 그런것 가지고 시위를 하고 그러데... 그런 걸로도 시위가 되는거야? 그게 말이 돼? 개혁 하자는걸 다 반대하고 그러면... 걔네들은 한국 사람 아니야? 사회부장, 그거 묶어서 조질 방법 없는지 알아봐"
"확인해 보겠습니다."


지난주 데스크 회의 시간에 나온 이야기다.

우리 신문사 편집회의 시간은 늘 이렇다. 한 명이 말을 하고 다른 사람들은 받아적는다.
그리고 그 사람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칠세라 다른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일을 벌린다.
상명하달식으로 그 일은 아래로 내려오고 취재 오더가 떨어진다.


"기자 정신이 부족해!"

정치부장이 호통을 친다.
하지만 이 말은 '진실을 보는 눈'을 뜻하는 기자정신이 아니다.
어떻게든 사건을 만들어내고 원하는 방향으로 해석해서 기사를 쓰는 능력이
정치부장이 말하는 기자 정신이다.


언론이 사주의 소유물이 된 지 오래되었고
이제는 기자도 역시 사주의 소유물처럼 취급당하고 있다.

회사의 정책과 방향은 사주가 정하고
그 방향에 따르지 않는 기자나 기사는 바로 '킬'이다.


<스포트라이트>의 서우진 기자처럼
열심히 취재해놓은 언론사주의 비리 같은 아이템은
언론사간 딜에 의해 '킬' 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런 경우는 특히 대기업들에서 더 심하다.
대기업의 비리, 고발 같은 기사들은 신문에서 찾아 볼 수조차 없지만
(정말 어쩔 수 없이 싣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큰 사건의 경우)
1판에 실리자마자 바로 전화통에 불이 난다.
어떤 곳은 1판에 실리기도 전에 정보를 어떻게 알았는지 바로 전화가 온다.

전화로 해결이 안되면 4판이 나오기 전에 대기업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리고는 다음 판에서 귀신같이 기사가 사라지거나 축소되거나 혹은 제목이 바뀐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 신문에는 그 대기업의 전면광고가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걸로 우리 회장 차 좀 바꾸려나..."

이런 생각을 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비참하다.


점점 더 고착화되는 신문사의 일방적인 의제 설정.
편집권에 전혀 영향력이 없는 신문 기자들.

이대로 나가다간 점점 더 신문은 설 땅을 잃을 것이다.
신문이 우리나라 부자들과 대기업만을 위해서 존재하기에는
'신문'이라는 두 글자가 너무 거창하다.


물론 개중에는 자발적으로 나서서 일을 벌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도 기자라고 불러야 할 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오늘도 조선일보가 불러주기만을 기다리며 이직을 꿈꾼다.


내가 원하던 기자생활이 이런 거였나?
요즘은 매일같이 자괴감이 몰려온다.

"나는 그런 기사 안썼으니 괜찮아..."

하지만 나도 신문 만들기에 일조하고 있다는 것은 큰 죄책감이다.

오늘도 퇴근 후 청계천 광장의 촛불집회에 참석하며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려 애써본다.


신문사 내부에도 균형잡힌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많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작아서 잘 들리지 않는다.
말로는 말도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다는 거다.

이게 현실이다.

경향이나 한겨레처럼 편집권이 독립되지 않은 족벌언론의 한계이다.


신문사 내부로부터의 개혁?
내가 지금까지 6년간 회사를 다녀본 바로는 그것은 절대 불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이 회사에 다니고 있는 한,
나는 오늘도 그 변화를 꿈꿔야 한다.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서 언젠가는 큰 파도가 될 거라고.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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